주간 한지영 2 호: 정당한 요구 vs. 갑질
캐런 Karen을 아시는지. 한마디로 갑질하는 미국 중산층 백인 여성을 가리키는 슬랭이다. 당연히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고, 오히려 나는 어쩌다 실제로나 동영상으로나 이런 여성을 보게 되면 한껏 눈살을 찌푸리는 쪽이다. 이 부류의 여인들로 오해받기에는 목소리가 터무니없이 작고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분들에게 대체적으로 상냥하고 친절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어느 날 식당에서 싸가지 없는 웨이트리스의 태도에 좀 따졌기로서니 딸들이 엄마 모습 “캐런 같아!”라고 하지 않는가!
주문한 음식이 늦게 나온다거나 종업원이 불친절하다거나 하는 일은 종종 있지만 이날은 특히 심했다. 내가 주문한 음식이 다른 식구들이 주문한 거 다 먹을 때까지도 안 나왔다. 딱 봐도 키친에서 잊어버린 게 분명한데 웨이트리스가 지금 너무 바빠서 그렇다며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한다. 분주한 저녁시간은 맞았다. 우리도 이미 오래 기다려서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우리보다 훨씬 더 늦게 와서 앉은 옆 테이블 사람들이 다 먹고 일어나 나가고 새로운 팀들의 음식이 나올 때까지도 내가 주문한 음식은 안 나왔다. 두 어번 더 웨이트리스를 불러 물어보았으나 알아보겠다고 하고 가서는 함흥차사다. 내가 계속 물어볼까 봐 피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와서 정중히 사과를 하고 키친에서 깜박해서 그랬나 보다고 솔직히 얘기를 했더라면 기분이 안 좋아도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말걸 끝까지 쏘리 한마디 안 하면서 슬슬 피하는 게 얼마나 얄미운가. 결국 이미 나온 음식들 다 나누어 먹고 배부를 때 나오긴 했지만 그때도 사과 한마디 안하고 이제 음식을 가져왔으니 되지 않았냐는 식이다. (사실 주문 취소하고 그냥 가고 싶은 거 식구들이 말려서 참았다) 이건 도저히 그냥 넘어간 선 안된다 싶어 매니저 불러 일러바치고 조목조목 따지며 분개했다.
내가 웨이트리스 불러 음식 언제 나오냐고 물어볼 때부터 눈을 내리 깔고 불편한 기색을 보이던 아이들이 식당을 나서면서도 계속 열나 있는 엄마가 캐런처럼 보였다고 앞으로는 그러지 말라고 하지 않는가. 충격이었다. 엄마는 갑질이 아니고 부당한 처우를 바로잡으려 한 것이라고 결백을 주장했지만 예민한 틴에이저 딸들 눈엔 이유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 말이 다 맞는 줄은 알겠는데 그래도 안그랬음 좋겠단다. 사람들 많은 공공장소에서 호기심 어린 남의 시선을 받는 자체가 창피한 게다. 생각해 보면 나도 그 나이 때 엄마가 시장에서 단순히 가격 흥정만 하는데도 창피하고 그랬었다. 아이들 눈에 비친 내 모습이 내가 평소에 경멸하던 모습이라면 보통 큰일이 아니다.
나는 유난히 부당함이나 불평등한 처사에 예민하고 못 참는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언어 때문에 뻔히 알면서도 당하기만 하던 그때의 치욕이 쌓여 한이 맺혀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말이 어느 정도 트였을 때부터는 참지 않게 되었다. 꼭 짚고 넘어가며 사과를 받아야 직성이 풀린다. 웃기는 게 어딜 가나 무시를 하다가도 이쪽에서 강하게 나가면 깨개갱 하고 태도가 확 바뀌는 부류들이 있으니 할 수 없다. 참으면 더 무시하고 바보 취급 한다. 나만 손해 본다. 상대가 바로 실수를 인정하고 시정을 할 때는 나도 괜찮아요~ 하고 다시 친절 모드로 가지만 눈 동그랗게 뜨고 싸가지 없이 잘했다고 끝까지 대들 때는 매니저나, 윗사람 누구든 다 불러 사과를 받을 때까지 조목조목 따지며 버틴다. 바로 이 모습이 사춘기 딸들에겐 캐런과 다를 바 없이 보인 게다. 단지 그 식당에서의 그 사건 한 번뿐만이 아니었으리라. 그렇다고 부당한 상황에서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며 넘어갈 수는 없지 않은가. 아이들에게도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무조건 피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고 불의나 부당함을 볼 때는 꼭 내가 당하는 게 아니라도 맞설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알려주어야 했다.
내가 생각한 방법은 일단 이러한 상황에 처했을 때 이걸 따질 것인가 그냥 넘어가도 될 정도인가, 아이들과 의논을 한다. 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후 조용히 차분한 톤으로 얘기하고 엄마의 태도가 괜찮았는지 검증을 받는다. 나는 나름 차분히 좋게 얘기한다고 하는데도 아이들은 엄마 목소리에 벌써 화가 묻어난다고 지적할 때가 많다. 나도 안다. 내가 옳다고 믿고 화를 내도 된다고 은연중에 정당화시켰을 것이다. 정당한 요구와 주장을 웃으며 우아하게 기분 나쁘지 않게 하는 법을 익히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열받은 상황에서. 나는 당당한 모습이라고 생각한 것이 내가 평소 경멸하던 모습으로 비치어질 수도 있다는 것. 딸들 덕분에 나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된다. 따진다 해서 꼭 캐런처럼 되어야 할 필요는 없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법도 생각하게 된다.
말을 할 때와 말을 아껴야 할 때, 어떤 말을 어떤 톤으로 표현할지의 중요함을 다시금 되새겨 본다.
나이 들수록 더 조심하고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