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한지영 3 화: 몸짱 할머니로 늙고 싶다
얼마 전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작년에 개봉한 탑 건 2 ‘Top Gun: Maverick’ 이 뜨길래 문득 오리지널 탑 건을 보았던 옛날 생각이 나 향수에 젖어 틀어 보았다. 액션 영화는 내 취향이 아니라 최근에 톰 크루즈가 등장하는 영화를 본 적이 없어서 나이 든 톰 크루즈의 모습은 상상이 안 갔다. 톰 크루즈가 첫 등장하는 영화의 도입 부분- 몸에 딱 맞는 청바지와 흰 티를 입고 뒷모습을 보이며 터프한 걸음으로 걸어 나온다. 역시 터프하게 오른쪽 다리를 반 바퀴 돌려 의자 앞으로 가 앉은 다음 들고 나온 접시의 음식을 시크한 자세로 먹는다. 그때까지도 별로 유심히 보지 않다가 얼굴이 클로즈업되며 그가 톰 크루즈 란 걸 알고 “오 마이 갓”을 외치고 벌떡 일어나 리와인드해서 여러 번 다시 볼 만큼 믿기지 않았다. 요즘에야 육십이라도 노인이라 할 수는 없지만 장년의 몸도 아니고 내가 방금 본 것은 건장한 이십 대 청년의 몸이다. 맨살이 보이는 팔뚝만 보아도 군살 하나 없이 누르면 내 손가락 정도는 쉽게 똑 부러질 것 같은 땐땐한 근육으로 울퉁 불퉁하다. 톰 크루즈의 몸에서는 세월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얼굴은 뭐 최첨단 시술의 도움을 받은 듯해 보인다. 젊은것도 늙은것도 아닌 이상한 느낌을 주는게 거부감이 들지만 어쨌든 내 관심 밖이다. 나는 오로지 근육질의 몸에만 경악할 뿐이다. 나이 많은 분의 단단한 몸을 첨 본 것도 아닌데 내가 생각해도 오버한다 싶을 만큼 크게 놀란 것은 아마도 ‘톰 크루즈’ 이기 때문에, 너무너무 멋있기 때문이겠지.
그날 이후로 우리 식구들은 툭하면 시작하는 나의 톰 크루즈 타령을 들어줘야 했다. “Have you seen 60-year old Tom Cruise’s body? It is unbelievable! ”로 시작해서 “ You know what? If he can do it, why can’t I do it?” 하며 ‘엄마 또 시작이야’ 하는 표정의 딸들 앞에서 혼자 결기 충만하다. 남편에게는 노력해서 육십 전에 바디 프로필을 함께 찍어보자고 꼬신다. 당연히 농담인 줄 아는 남편은 무조건 오케이! 하고 사설이 길어지는 걸 막는다. 설마 하니 내가 근육질의 육체를 탐하겠는가. 내가 운동에 할애하는 시간으로는 (일주일에 5일 달리기와 약간의 근육운동을 한다) 택도 없는 줄 안다.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하다. 아니 가능하게끔 하기 위해 선택해야 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닭가슴살만 먹으면서 매일 하루 몇 시간씩 gym에서 트레이너 감시하에 운동을 할 수도 없지만 하고 싶지도 않다. (설사 일도 안 하고 시간이 많다고 해도) 게다가 나같이 웬만해선 근육이 안 생기는 사람은 남성 호르몬 주사도 맞아 주어야 한단다.
그러니 오해는 하지 마시라 내가 꼭 식스 팩의 앱이나 근육질의 몸, 연예인 같이 날씬한 몸매를 추구하는 게 아니다. 중년이 되면서 배가 나오는 것을 시작으로 점점 더 나이들 수록 살이 처져 철렁거리고 어깨는 구부정하고 등이 휘고 허리와 엉덩이는 사라지고 다리는 가느다란 ET 같은 몸을 거부할 뿐이다. 톰 크루즈의 몸을 보며 몸은 나이와 무관하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육십 세가 넘어서도 이십 대의 신체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바로 눈앞에서 보았다. 뻔히 보고 있는데 노력을 안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갱년기 때 살이 찌고 배가 나오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야’, ‘나이 들면 어쩔 수 없어’ 하며 어정쩡한 자기 위안이나 게으름의 핑계는 대지 말자. 어쩔 수 있다. 근육질은 아니어도 적어도 군살, 처지는 살 없이 단단한 몸에 꼿꼿한 허리는 내가 노력함에 따라 유지할 수 있다. 늙는다고 키가 줄고 쪼그라 들지 않아도 된다.
노화와 관련해 어쩔 수 없는 건 많다. 노안이 온다거나 흰머리, 주름살, 피부 늘어짐 등은 특별히 무슨 시술이나 수술 같은 걸 하지 않는다면 자연적으로 관리해서는 어느 정도 늦출 수는 있겠지만 막을 수는 없다. 이런 노화로 인한 변화들 중 사람들마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들이 다 다를 테지만 내 경우엔 ET 몸이다. 어떤 사람은 얼굴의 주름을 절대 용납하기 힘들어할 것이고 어떤 이는 흰머리를 참을 수 없어하겠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다른 건 아무렇지 않은데 신체의 변화만 유난히 예민하다. 얼굴의 주름도 ‘나이 드는데 주름이 생기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 ‘너무 없어도 이상 하지 않나?’ 하는 맘이다. 요즘은 젊은 사람도 보톡스, 필러 같은 얼굴 시술을 많이 해서 엄청난 동안을 유지하는 추세인데 나는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운동, 얼굴 마사지나 팩 같은 거 외에 인공적인 무언가를 내 얼굴이든 몸이든 주입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러다 내 나이 또래 중 내가 제일 나이 많아 보일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없진 않지만 꿋꿋이 버티어 볼 생각이다. 얼굴은 쪼골쪼골 주름살 가득해도 몸짱 할머니가 되련다. 꼿꼿한 허리, 튼튼한 허벅지와 종아리로 달리기 하는 할머니로 늙어 간다면 까있거 죽음인들 두려우랴.
9월 꿈꾸는 러너 북클럽에서 읽은 ‘달리기와 존재하기 Running & Being’ 책의 한 문구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의사이자 마라토너이신 저자 조지 시언 George Sheehan 은.‘ 스물여덟의 젊은 나이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운동을 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스물여덟의 활력과, 힘, 지구력에 도달할 수 있다’고 썼다. 실제로 작가는 육십 세 때 피트니스 테스트를 fitness test 해본 결과 신체 나이 fitness age가 스물여덟이었다고 한다.
The facts on fitness show that almost anyone can reach levels of vigor and strength and endurance equal to most of the twenty-eight-year-olds in the country. P41
결국 톰 크루즈의 근육을 탐하는 나의 노력은 신체의 노화를 늦추고 젊은 에너지를 오래 지속하며 건강해지는 길이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