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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Reader Feb 13. 2022

Supermarket Flowers

You were an angel in the shape of my mum

슈퍼마켓 플라워즈 Supermarket Flowers에드 시런 Ed Sheeran의 노래 제목이다. 어느 날 딸아이가 차에서 틀어 놓았는데 언뜻 본 제목에 마음이가 신경 써서 들어 보았다. 어쩐지 ‘슈퍼마켓 플라워즈’라고 쓰인 걸 본 순간 묘한 향수 같은 것이 일어 뭉클해졌다. 가수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애잔한 멜로디에 한층 더 사무쳐서 감상에 빠진 듯도 하다. 내가 주말마다 장 보러 가는 마켓의 플라워 코너 앞에 서 있을 때 일렁이는 설레는 마음 같은 그런 것이 나를 훑고 지나갔다. 


그러다 문득 대학시절 슈퍼마켓에서 파는 꽃을 무시하던 때가 생각나 딸에게 얘기해 주기 시작했다. 그 당시 슈퍼마켓에서 파는 꽃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알록달록한 색깔, 여러 종류의 꽃들을 마구잡이로 섞어 싼 티 줄줄 흐르는 비닐 셀로판지 같은데 싸서 파는 꽃들. 도대체 누가 마켓에서 이런 촌스런 부케를 사나. 사춘기 딸은 좀 오버하는 엄마의 옛날 얘기를 깔깔대며 듣는다.


아트 스튜던트였던 나는 ‘예술’을 추구한답시고 겉멋이 잔뜩 들어 히피적 낭만과 염세적 우울을 넘나들며 좀 붕떠서 살았다. 눈앞의 현실은 초월해야 할 무엇쯤으로 생각하고. 슈퍼마켓이 아닌 학교 앞의 작지만 팬시한 꽃가게는 이런 비현실적인 예술적 허영을 충족시키기에 딱 알맞았다. 유난히 송이가 크고 (두 주먹) 스템이 아주 길었던 (내 허리까지) 장미가 기억난다. 원산지 지역 이름인지 종류인지 붙여진 이름도 있었는데 잊었다. 크기도 압도 적이었지만 색깔이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셰이드가 많았다. 워낙에 비싸서 한 송이씩 팔았다. 아주 가끔 하늘도 마음도 짙은 회색이라 구경만 하고 나오기 섭섭한 날 주머니를 털어 하나 사곤 했다. 인간이 물감으로 절대 만들어 낼 수 없는 셰이드의 핑크나 라벤더의 큰 송이 하나를 들고 걸어가면 괜한 뿌듯함에 위로가 되었다. 진정 예술가가 되면 나의 아틀리에에 더즌을 사서 꽂아 놓을 상상을 했다.


졸업을 하고 디자이너가 되었지만 하는 일은 예술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손님이 좋아하고 잘 팔리기만 하면 된다. 잠시 일하다 학비 모아 대학원에 가야지 하던 게 아직까지 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질주하듯 사느라 꽃집 따위는 다 잊었다. 어느 날 보니 남편이 기념일 선물로 사들고 오는 꽃도 더 이상 설레지 않았다. 시들고 버릴 때가 너무 싫어 고만 샀으면 싶었다. 며칠 못가 버릴 걸 돈 아깝다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계산적인 생활인이 되어 있었다. 이를 깨달았을 때도 별 느낌이 없었다. 슬프지도 아쉽지도 아련하지도 않고 이게 사는 거지 하며 덤덤히 웃어넘겼다. 


어느 토요일 아침 여느 때처럼 장 보러 마켓에 갔다가 블루가 섞인 보랏빛의 예쁜 꽃이 눈에 띄어 무슨 꽃일까 궁금하여 멈추어 유심히 보았다. 델피니움 delphinium이라는 꽃이었다. 아 곱다 하면서 부케 하나를 카트에 담았다. 내가 매주 가는 마켓은 트레이더 조 Trader Joe인데 유기농 마켓으로 퀄리티가 좋고 가격이 저렴한 편인 작은 마켓이다. 화분이나 꽃도 마찬가지다. 유난히 싱싱하고 흔하지 않은 꽃들도 많다. 인기가 좋아 항상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내가 카트에 꽃을 넣고 둘러보니 아침 일찍이라 그런지 장을 보는 거의 모든 사람들 카트에 꽃들이 한두 부케는 다 담겨있었다. 마켓에서 꽃을 사는 사람에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소시민들이 밥 먹고 살기도 바쁜 와중에 장 보러 와서 꽃도 사고 집에 가 꽃병에 꽂아놓고 보며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번뜩 스쳤다. 특별히 돈이 많고 시간이 많아야 즐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다시 기억을 되찾은 사람처럼 이런 별거 아닌 일로 잊고 있던 것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켓에서 꽃을 사들고 오는 토요일 아침이나 에드 시런의 노래처럼 가끔씩 감성을 건드려 잠시 멈추고 호흡을 한번 고르게 하는 그런 순간들이 있다. 나와 내 주위를 둘러보고 내가 가진 것을 깨닫게 해주는 이런 작은 순간들이 내게는 소확행을 느끼는 순간들이다. 반평생을 살고 보니 큰 꿈이나 거대한 목표가 다 무의미하다. 지금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어제처럼 오늘을 사는 일이다. 이런 찰나를 흘려보내지 말고 기억 속에 차곡차곡 담아 소확행 부자가 되는 것이 소망이다. 어른이 된 딸들과 차에서 슈퍼마켓 플라워 이야기하던 이날을 떠올리며 웃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So I’ll sing Hallelujah~  You were an angel  in the shape of my mum~ When I fell down you’d be there holding me up~ Spread your wings as you go~
And When God takes you back we’ll say Hallelujah~ You’re home~
Flower shop at Trader J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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