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못하는 엄마의 초간단 아이들 점심 도시락
팬데믹으로 아이들이 일 년 넘게 온라인 수업을 하다 개학하며 다시 학교를 다니게 되었을 때 아직도 재택근무를 하는 내가 아이들 도시락 담당이 되었다. 학교에서 점심을 제공하지만 그다지 몸에 좋은 음식이 아니고 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이 아깝다고 킨더가든부터 고등학생인 지금까지 내내 도시락을 싸다닌다. 남편과 돌아가며 그때그때 가능한 사람이 맡아서 해오고 있다. 나는 요리를 잘 못해서 부엌일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한때는 배우거나 자꾸 해 봐야 는다고 해서 레시피도 받아 적어가며 열심히 해보려고 하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깨끗이 포기했다. 내가 요리를 배워 맛있는 음식을 척척해내길 기대하는것은 지금부터 스케이팅을 배워 언젠가 김연아 선수처럼 피겨 스케이팅을 탈 것이라 생각하는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일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요리도 재능이고 타고난 감각이나 관심이 있어야 한다. 주위에 요리 좀 한다는 사람들을 곰곰이 살펴보니 나와 성향이 정반대더라. 어디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무엇이 들어갔는지 어떻게 이 맛을 냈는지 궁금하다고 한다. 아니 왜? 그냥 맛있게 먹으면 됐지. 나는 그런 걸 궁금해하기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더 놀라웠다. 난 평생 그런 게 궁금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맛에 예민하지 않다. 심하게 짜거나 싱겁거나 한 게 아니라면 다 비슷 비슷하게 맛있다. 입맛이 초딩 입맛이고 편식이 심하지만 좋아하는 음식은 질리지 않고 똑같은 음식을 일주일 내내 먹을 수도 있다. (미각에 민감한 사람들은 한번 먹은 음식 두 번 절대 안 먹더라) 또 요리 잘하는 사람들은 한꺼번에 여러 음식을 척척 짧은 시간 안에 해낸다. 스토브 탑의 불도 있는 데로 다 켜 놓고 재료를 씻고, 썰고, 볶고, 삶고 동시에 후루룩 다 해낸다. 나로 말하면 재료가 딱 한 가지만 들어가는 김치볶음밥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미리미리 김치도 썰어 놓고 해놔야 제시간에 먹을 수 있다. 두 가지를 하려고 하면 그날 안에 먹기를 포기하는 게 낫다. 그러니 음식을 하기 전 스트레스가 얼마나 크겠는가.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온갖 정성 들여 만들어 맛있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그냥 그럭저럭 먹을만한 정도이다. 이 얼마나 비효율적인 일인가. 그리고 한 가지 더, 요리 잘하는 사람 치고 설거지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 못 봤다. 나는 설거지를 좋아하고 잘한다. 좀 오래 걸리는 게 흠이긴 하지만 깨끗이 치우고 정리 정돈하는 건 자신 있다. 요리하는 사람 옆에서 치워주는 조수 역할이 딱 맞다. 이렇게 요리를 못할 수밖에 없는 성향을 두루 갖추었음을 깨달은 뒤부터는 애쓰지 말고 사 먹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었다. 그 시간에 차라리 아이들과 놀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나았다.
이런 내가 순전히 새끼들 잘 멕이려는 모성애 힘으로 매일 도시락을 싼다. 요리 못하는 나 같은 사람들도 할 수 있는 초 간단, 하지만 맛도 비주얼도 꽤 괜찮아 아이들이 좋아하는 나의 도시락 노하우를 소개하려고 한다. (실제로 아이들 친구들이 꽤 오랫동안 식당에서 사 온 도시락인 줄 착각했단다) 사실 레시피나 비법이랄 것도 없는게 주메뉴가 샐러드 + 프로틴 식단에 프로틴은 Trader Joe나 Costco에서 이미 맛있게 조리되어 냉동된 음식을 오븐에 정성스레 데우기만 하면 되는 것들로 된다. 샐러드는 주말에 씻어서 따로 다 준비해 놓는다. 스프링 믹스에 오이, 토마토, 벨페퍼, 당근에 페타 치즈를 뿌린다. (나는 개인적으로 블랙 올리브와 엔쵸비를 좋아해서 넣어 먹지만 아이들은 싫어한다) 트레이드 조에서 파는 채썰어 놓은 당근이 있는데 따로 씻을 필요도 없고 씹기도 편해 당근 먹기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딱이다. 계란도 주말에 넉넉히 삶아놓고 프로틴이 부족한 날 하나씩 넣어준다. 주식인 프로틴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로 함께 리스트를 작성해서 하나씩 돌아가며 만든다. (고등학교 졸업반인 큰딸이 다이어트 하느라 탄수화물은 질색해서 밥과 빵은 피한다.) 요즘 인기 있는 베지 버거, 앵거스 비프 패티, 코코넛 슈림프, 브로콜리 비프, 오렌지 치킨 등은 조리된 냉동 음식으로 아침에 오븐에 데워 샐러드랑 도시락에 담으면 끝! 따로 미리 해동할 필요 없고 바로 꺼내어 조리하게끔 되어 있어 간편하다. 가끔 시간이 여유가 있으면 연어나 스테이크도 굽고 카레라이스나 파스타, 주먹밥, 계란말이 (반찬이 아닌 메인으로)도 한다. 또 비장의 무기 하나는 두부부침이다. 썰어 소금 조금 뿌려 구우면 땡!
이렇게 어찌어찌하다 보니 일 년이 다 되어 간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십이년을 도시락싸는일, 그 뿐 아니라 태어나 죽을 때까지 먹고사는 일을 위해 밥하는 엄마들이나 아빠들(도 많겠지?) 위대하다. 한 끼라도 굶으면 큰일인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정성껏 해서 먹이는 일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아야 할 일이지 싶다. 가끔은 미래의 세상에 나온다는 음식 맛나는 알약이 나와 간단히 그것 만 먹으면 시간이 얼마나 절약될까 생각된다. 하지만 이건 요리의 즐거움을 모르는 나의 생각일 뿐이지. 식구들이 둘러앉아 젓가락 부딪쳐가며 맛있는것 골라먹는 재미 또한 포기 할 수 없지 않겠는가. 처음부터 신선한 재료로 준비하여 바로 만든 음식 하고는 천지 차이 겠지만 그래도 나처럼 요리 못하는 사람도 제법 그럴듯한 음식으로 아이들 도시락도 싸고 함께 집밥 (?) 먹는 즐거움을 누릴수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