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칭 하는 법을 배우다
A를 처음 만나서 인사를 나눈 건 학교 출근 첫날 (벌써 왜 이렇게 오래전의 일처럼 느껴질까, 이제 3주도 채 안 됐는데) 연구실이 위치하고 있는 복도에서였다. A는 면접 때 잠시 만난 사이였지만 화상으로 한 면접이라 개인적인 인사는 하지 못했었다. A는 밝고 활기찬 중년의 동양계 여자 선생님이다. 같은 복도에서 자주 마주치고 볼 때마다 “Happy Tuesday!” 혹은 “Happy first day of the semester!” 등의 인사로 매일매일이 해피한 날이라고 소리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A는 지나가면서 누군가에게 엄청 빠르게 “Happy almost-Friday!”라고 외치며 지나갔다.) 덕분에 나도 행복지수가 올라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런 A가 이메일로 자신과 다른 선생님이 진행하는 학교의 공식 북클럽에 초대해 주었다. 우리 학교의 part-time, full-time faculty라면 누구나 참여가능한 북클럽이지만 미리 알고 개인적인 초대까지 받아서 매우 들떴다. 안 그래도 티칭에 대한 공부는 더 하고 싶었고, 어떤 책을 읽을지 미리 목록도 만들어 둔 참이었다. 북클럽에서는 매 학기 지정 도서를 조금씩 나눠서 한 학기 동안 읽으면서 티칭에 대한 고민을 함께하고 수업시간에 효과적인 activity나 exercise가 있으면 공유한다. 정기적으로 참석할 경우 다음 학기에 읽을 책은 학교에서 구매해 준다는 솔깃한 얘기도 들었다. 이게 웬 횡제냐며 나는 신이 나서 신랑에게 가서 미주알고주알 얘기를 했더니 흐뭇해하면서 내가 드디어 내 종족을 만난 것 같다며 같이 기뻐해줬다.
첫인사 모임은 인문대 미팅이 있는 날이어서 참석을 못했다. 그래서 오늘 참석한 모임이 첫 참석이었는데 인사하는 시간을 가져보니 오다 말다 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 학교에서 제직 한 지는 오래되었어도 북클럽에는 처음 참석하는 사람들도 있고, 북클럽이 2013년에 시작될 때부터 참석을 해온 사람들도 있었다. 인문대 선생님들도 있었고, 교육학과 사람들도 있었고, 사회학과 그리고 생물학과 사람들도 있었다. 다양한 분야에서 티칭을 하는 선생님들과 얘기를 나누는 건 재미있었다. 각자 학생들과의 교류에서 생긴 해프닝들에 대한 담소도 나누고 실제로 수업시간에 도입하는 전략들과 학생들을 위한 공부법을 공유하기도 했다.
이번 학기에 읽을 책은 “Learning How to Learn”이라는 강좌를 만든 Barbara Oakley와 Terry Sejnowski, 그리고 중고등학생들을 가르치는 Beth Rogowsky가 함께 쓴 Uncommon Sense Teaching이라는 책인데 뇌과학을 적용한 효과적인 티칭법을 소개하는 책이다. 이 책은 2021년에 Learning Ladders’ Best Books 목록에서 교육자를 위한 책 10위권 안에 들면서 많은 선생님들과 학부모에게 사랑받는 책이라고 한다.
첫 모임을 준비하면서 읽은 1,2장은 너무나도 흥미로웠다. 어렵지 않은 언어로 학습자의 기억력을 뇌과학적으로 설명을 해주는데 유아스러운 문어 그림과 과장된 뉴런 neuron 그림들이 읽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작업기억 working memory과 장기 기억 long term memory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습득하는 지식이 작업기억에서 장기기억으로 변환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이 책은 초등학생, 중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들과 이 나이대의 자녀를 둔 학부모에게 가장 유용할 것 같기는 하나 고등학교,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선생님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준다고 한다. 새로운 내용이 기억에 새겨져 학생 고유의 지식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한다. 중고등학교 시절 암기 위주의 공부를 하던 때가 생각나면서 그때 나의 공부법을 돌아보게 했다. 새로운 내용을 배우는 분야의 선생님들에게 추천한다. (예를 들어 역사, 사회, 수학, 과학, 등등.)
글쓰기를 가르치는 지금의 나는 흥미롭게 읽고 있기는 하지만 글쓰기란 여러 번의 반복학습으로 내용을 익히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계속 한 단계 넘어서의 적용법을 생각했다. 여러 번의 반복 학습 후 다시 생각해 내기(repeat and recall)는 기억력을 향상하는데 가장 좋은 학습법이라고 한다. 그런데 글쓰기란 계속 써보고 효과적인 의미 전달을 하는 것이라 어떻게 보면 수학문제를 푸는 법을 가르치는 것과 흡사하다고 생각한다. 공식을 아무리 외워도 문제를 푸는 법을 익히지 못하면 수학문제를 풀지 못하 듯 글쓰기도 글쓰기 공식 (첫 단락에서는 thesis statement로 에세이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한두 문장으로 명시하기, 각 supporting paragraph는 thesis statement를 뒷받침하는 topic sentence로 시작해 이를 또 뒷받침하는 문장들로 구성이 되어야 하고 마지막에는 concluding paragraph로 결론을 지어주어야 한다)을 아무리 달달 외워도 각 주제에 따라 이 공식을 어떻게 적용하느냐가 글쓰기를 잘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한다.
그래서 나는 몇 년 전부터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작은 글쓰기 과제를 내주기 시작했다. 글쓰기 방법에 대한 내용을 교과서에서 읽어왔다면 수업시간에는 그 내용을 실제로 글을 써보면서 연습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내가 강의를 하는 시간이 줄어서 편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글쓰기 연습을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큰 과제가 다가올 때는 그 시간을 사용해서 교과서에서 읽어온 내용을 적용해서 한 단락 써서 과제에 보탤 수 있는 기회도 준다. 이렇게 하면 과제에 대한 부담도 줄어들고, 요즘은 Chat GPT와 같은 AI를 사용한 글쓰기를 할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숙제의 일부를 수업시간에 했고, 시작이 반이라는데, 이미 시작을 해 놨으니 더 이상 겁먹을 이유도 없고, 마저 쓰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 여러모로 효과가 좋았다. 그래서 북클럽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방법을 죄책 감 없이 사용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식으로 지식 전달 기반의 수업을 하는 게 아니다 보니 한 발짝씩 나아가서의 적용법을 생각하긴 해야 하기도 하지만 학생들에게 과제를 설명하거나 수업시간에 할 writing exercise를 설명할 때 아무리 천천히 말로 설명을 하고, 화면에 띄워놓고 얘기를 해도 학생들이 뭘 해야 하는지 이해를 못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 내 설명법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저 학생들이 듣지를 않는다고, 딴생각을 한다고 생각하며 괘씸해지다가도 작업기억에서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내용을 초과한 복잡한 설명을 했는지 되돌아보고 같은 내용을 다시 설명한다면 학생들이 잘 따라올 수 있게 어떻게 차근차근 설명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된다.
전문대에서는 아무래도 티칭, 학생 성공이 목표가 되는 곳이라 티칭에 대한 지원도 빵빵하다. 이런 식으로 북클럽이 있는가 하면 정기적으로 티칭에 대한 주제들로 워크숍과 세미나를 진행한다. 지금 내가 가장 눈독 들이고 있는 세미나는 AI시대에 학생들을 가르치기라는 주제의 세미나인데, 이번 주 금요일에 진행될 예정이다. 이렇게 티칭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전문대 강사로 일하는 것의 최대 장점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