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 집의 막내다. 하지만 '막내'라는 단어가 주는 특권인 응석이나 어리광은, 내게 단 한 번도 허락된 적 없는 상상 속의 풍경이었다.
집안이라는 작은 세계에는 각자의 서사가 단단한 성벽처럼 버티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고 빈틈없는 아빠,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한이 많은 엄마,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언니. 그 거대한 감정의 틈바구니 속에서, 가장 작고 어린 영혼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나라도 의젓해야지, 나라도 분란을 만들지 말아야지.‘
그 다짐 끝에 나는 조그만 몸 안에 어른을 구겨 넣은 '애어른'이 되었다.
부모님은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게 해주셨다. 아빠는 칼퇴근 후 집을 지키는 바른 생활의 정석이었고, 엄마는 직장 생활 중에도 정성스러운 저녁 식탁을 차려내는 완벽한 주부였다. 객관적인 지표로만 보면 우리 집은 아무 문제 없는 평화로운 가정이었다.
하지만 그 완벽한 질서 아래에는 늘 차가운 냉기가 흘렀다. 정서적인 온기가 스며들 틈이 없었다. 부모님은 스스로의 버거운 삶을 지탱하느라 가장 연약한 영혼을 감싸줄 여유가 없었다. 엄격한 잣대를 가진 분들 아래에서 내가 잘하는 일은 당연한 침묵으로 돌아왔고, 부족함은 냉철한 비난의 칼날이 되어 돌아왔다. "너는 왜 그것도 못 하느냐"는 서늘한 반응은 어린 내게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 되었다.
비난을 받은 날이면 혼자 울면서 다짐했다. 다시는 나의 나약함을 드러내지 않겠다고, 더 완벽한 아이가 되어 어떤 비난도 비껴가겠노라고. 도움을 청하지 않는 것이 나를 지키는 유일한 방어 기제라 믿었기에, 나는 모든 것을 스스로 잘해내는 '행복한 아이'라는 가면을 썼다.
그 가면은 성인이 되어서도 나를 옥죄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은 불편한 숙제가 되었고, 도움을 구하기보다 스스로 해결하다 속으로 곪아 터지는 쪽을 택했다. 가족 안에서 나는 늘 '듣는 사람'이자 '공감해 주는 사람'의 역할에 머물렀다. 사회에서도 내 바운더리를 지키지 못한 채 모든 짐을 안고 가려다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이런 상황이니 조율이 필요하다"는 당당한 요구를 입 밖으로 내뱉기까지 수백 번의 시뮬레이션이 필요했다.
모든 게 버거워 눈물만 나던 시기, 심리 상담가를 만났다.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듣던 그는 말했다.
"모든 걸 괜찮은 척 짊어지려는 게 당신의 문제입니다. 이제는 자신의 바운더리를 세우고 힘들 때는 힘들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연습을 하세요."
그날 이후, 나는 연습을 시작했다. 들어주는 사람이 있든 없든 내 의사를 표시하는 연습. 여전히 내 안의 울고 있는 아이는 연약함을 보여주는 것을 두려워한다. 누군가에게 부담이 되지는 않을지, 냉담한 반응에 다시 살이 베이지는 않을지 수십 번 고민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 겁에 질린 아이의 손을 잡고 세상 밖으로 자꾸 나와보려 한다. 최근에 낸 아주 작은 용기가 그 시작이었다.
"아빠, 나 생일 선물 미리 사줄 수 있어? 나 청소기가 필요해."
내 돈으로 사면 그만인 물건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굳이 아빠에게 사달라고 말해보고 싶었다. 사랑받는 딸의 기분을, 기댈 곳이 있는 어린아이의 기분을 오랜만에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수십 번을 고민한 끝에 뱉은 그 말에 아빠는 의외로 흔쾌히 답하셨다.
배송 온 청소기를 마주한 순간, 어색하면서도 포근한 온기가 온몸을 감쌌다. 굳이 아빠의 손을 빌려 받은 건 내 안의 결핍이 보낸 간절한 신호였다. 단단했던 나의 방어기제 너머로, 평생을 숨어 있던 어린아이가 아주 잠시 고개를 내밀고 웃었다. 나는 오늘 청소기 한 대가 아니라, 나도 비빌 언덕이 있다는 든든함을 배송받은 거였다.
냉정하게 말해, 나의 가족은 앞으로도 내가 마음 편히 누울 언덕이 되어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들은 여전히 각자의 서사 속에 갇혀 있고, 나는 여전히 그들 사이에서 의젓한 막내여야 할 테니까. 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나에게도 비빌 언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온도가 달라진다는 것을.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비빌 언덕이 필요하다. 그것이 설령 영원히 기댈 수 있는 가족이 아닐지라도, 때로는 타인의 따뜻한 한마디나 스스로에게 허락한 작은 응석이 그 역할을 대신해줄 수도 있다. 나는 이제 나 자신에게 가장 포근한 언덕이 되어주기로 했다. 완벽함과는 거리가 멀고 한참 부족할지라도 "괜찮아, 고생했어"라며 안아줄 수 있는 언덕. 힘들면 얼마든지 내려놓고 쉬어가라고 말해주며, 나를 온전히 품어주는 그런 언덕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