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봄이 오다

by 서하

자신의 살이 지져지는 듯한 아픔을 드러내는 건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을까 생각해보면 불면 곧바로 꺼져버릴 것 같은 위태로운 촛불을 바람에 내놓는 기분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아주 작은 자극이나 불운 조차 허용할 용기가 안날정도로 간절했으니 나는 더욱 꽁꽁 아픔과 불안을 숨기고 혼자 앓았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겨우 버텨온 시간들이 길어질수록, 몸을 웅크리고 위축되는 법에 익숙해졌다. 잘못 발을 디디면 그대로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만 같아, 최대한 나를 낮추며 살았다.


어느새 나는 핸드폰을 잃어버려도, 늘 사용하던 노트북이 박살이 나도 별다른 타격이 없었다. 주변에선 "무소유의 삶이냐", "집착이 없느냐"고 물었지만 사실 그게 아니었다. 그 정도로 내 삶의 뿌리를 통째로 흔드는 불안이 너무 컸기에, 소유물이 망가지는 정도는 내게 어떠한 자극도 주지 못했던 것이다. 더 크고 무서운 두려움과 늘 동행하고 있었기에 통장 잔고도, 커리어도, 늘 사용하는 물건도 그 어떤 것도 내게는 그리 중대한 문제가 아니었다.


일상의 스트레스나 화가 나는 일들도 내 안에서는 금방 꺼졌다. 내가 품은 걱정의 무게에 비하면 이 정도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아휴, 이게 뭐라고" 하며 감정을 가라앉혔다. 결국 중요한건 우리가 이 세상에 발 딛고 살아있다는 것, 그 희망이 계속되는 한 다른 문제들은 다 해결할 수 있고 나아질 수 있으니 너무 애태우지 말자는 단단한 마음이 생겼다는 좋은 점도 있었다. 삶에서 발생하는 잡음들에 크게 화내거나 심각해지지 않고 툭 털어버릴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뿌리가 흔들리던 고통의 시간들은 역설적이게도 나에게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를 알아보는 눈을 주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결국 딱 두 가지, '건강'과 '사랑'이라는 것. 이 두 가지만 잘 지켜낸다면 부수적인 문제들은 그저 가볍게 앓으며 지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나는 내가 아끼는 존재들에 대한 보호 본능이 강하다. 그들의 안위에 많은 에너지를 쏟으며 최선을 다하고 혼자 힘들어하고 책임지려한다. 이것은 나의 가장 큰 취약점이기도 해서 스스로가 너무 답답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냐, 그렇게 태어난 나를. 이제는 이러한 마음이 나의 가장 큰 '강점'이기도 하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나만 보고 나아갔더라면 더 심플하고 강하게 내 미래만 보고 달려갔을지 모르지만, 그 종착지는 나 밖에 없는 삶이었을 것이다. 나는 좀 느리고 버거울지라도 같이 가야 할 곁에 있는 사랑하는 존재들을 보며 더 간절해졌고, 살아내야 할 이유를 얻었다. 나의 취약점이 결국은 내 삶의 가장 강력한 추진력이 된 것이다.


매년 지나온 봄이지만 온전히 누린적이 언제였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다. 벚꽃잎이 휘날리는 거리를 보면서 생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기 보다 오히려 삶은 이렇게 아름다운데 내가 처한 상황은 너무 막막하다는 그 대조에 마음이 더 시렸다.

이번 봄은 마치 처음 맞이하는 진짜 봄인 것 처럼, 아주 오랜만에 가벼운 마음으로 맞이했다. 봄이 주는 색색깔 향연에 눈도 마음도 진심으로 즐거웠다. 따뜻한 빛이 마치 나만을 비추는 듯한 기적 같은 안도가 밀려왔다. 세상이 보여주는 온기와 치유를 느끼며, 마침내 찾아온 이 찬란한 봄이 너무나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론 가슴 한구석이 아려온다. 얼마 전까지의 나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오늘을 버텨내고 있을 우리의 동지들이 어딘가에 있다는 걸 아니까. 그들에게도 이번 봄이 기적처럼 닿기를 바란다. 이 햇살을 맘껏 누리며 웃을 수 있도록, 삶이 그대들에게 넉넉한 여유를 허락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작가의 이전글넌 감동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