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첫째 이모가 카페에 놀러 왔다. 반가운 마음에 커피를 내려 자리에 앉자마자, 이모는 기다렸다는 듯 날카로운 '창'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니가 여기 박혀서 커피나 내리려고 그렇게 공부한 거가? 그때 내가 의대를 가라고 했잖아.
피 보는 게 싫다더니... 그때 내 말 들었으면 인생이 달라졌을 텐데. 그 실력에 지금 여기서 이런 일이나 하고..”
수십 번은 족히 받아낸 공격이다.
나는 애써 웃으며 익숙한 '방패'를 든다.
“그러게요. 의대 갔으면 인생이 달랐겠네요. 그래도 지금도 괜찮아. 열심히 살고 있어.”
하지만 이모의 창은 멈추지 않고 이어진다. 이번에는 내 외모가 문제다. 어릴 때의 개성과 멋짐이 사라지고 확 후져졌단다. 또 한번 애써 웃으며 나이가 들어서 어릴때랑 비교하면 그럴수밖에 없다고 대답하지만 대화의 방향이 자꾸 불쾌한 궤적을 그리며 흘러간다. 이런 대화 끝엔 한톨의 유쾌함도 남지 않는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난 일들을 끄집어내어, 지금의 상황을 '실패작'이라 낙인찍는 말들뿐이기 때문이다. 어떤 해결책도, 위로도 없는 그 시간은 침묵보다 못하다.
엄마 또한 이모랑 비슷한 말투로 나의 마음을 헤집어 놓는다. 엄마의 대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만약에'의 서사는 트리거가 되는 지점만 나오면 튀어나온다.
고등학교를 지나가거나 관련 얘기가 나오면 꼭 나오는 말.
“네가 그때 그 고등학교가 아니라 너를 더 키워줄 학교로 갔으면 서울대에 갔을 텐데. 그때 오라고 한 고등학교 갔으면 장학금도 받고, 학교에서 밀어줘서 분명 서울대를 갔을 거야.”
TV에서 키 크는 주사나 영양제 광고 나오면 꼭 나오는 말.
“네가 클 수 있을 때 저걸 맞았어야 했는데. 저 약을 그때 먹었다면 165cm는 넘었을 텐데. 굽 높은 신발 좀 신어라, 너무 작아 보인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말들이라 아무렇지 않은 척 흘려들었다고 믿었는데, 내 무의식이 이런 말들에 젖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봄이 되면 플랫슈즈를 사고 싶어 기웃거리다가도 키가 작아보일까봐, 똥짤막해 보일까봐 슬그머니 내려놓는 나를 보면서, 내가 하는 노력과 일들에 자부심 보다는 부족함을 자꾸 느끼는 나를 보면서 말이다. 그 사실을 직면했을 때, 나는 참을 수 없이 서글퍼졌다.
미드 <모던패밀리>에서 클레어의 대사가 참 공감이 갔다.
"Do you know what it's like to have a voice in your head telling you you're not good enough? That voice is my mother."
(너는 머릿속에서 '너는 충분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목소리를 가진 기분을 알아? 그 목소리가 바로 우리 엄마야.)
나를 걱정해주는 척 던지는 그 말들이 과연 나를 위한 것일까? 내 귀엔 그저 “너는 나에게 감동이 아니라, 실망을 주는 존재일 뿐이야”라는 말로 들린다.
슬프게도 이런 말 습관은 결코 쉽게 변하지 않는다. 본인의 습관을 인지하지도, 인지할 의지도 없기 때문이다. 화를 내보기도 하고 무시도 해봤지만, 그들은 쉼 없이 창을 들이댄다. 결국 내가 더 무뎌지고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 그들의 말은 나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본인의 불안과 후회를 나에게 투영하는 '의미 없는 소음'일 뿐이라고 덤덤해져야 한다.
겉으로는 티 내지 않으면서 속으로는 완벽히 차단해 내는 경지. 아직 그 단수에 도달하기엔 수련이 더 필요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계속될 혹독한 훈련 끝에 그 곳에 도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가르침 덕분에 나는 "너는 지금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말이 가진 힘을 안다.
나는 내가 사랑을 주어야 할 존재들에게 마이너스의 말이 아닌 플러스의 말을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자꾸 뒤돌아보고 후회할 필요 없어. 지나온 모든 시간은 너를 단단하게 만든 자양분이었고, 너는 그때보다 더 멋진 사람이 되었어. 너는 실망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이미 감동이야.“
가장 듣고 싶었던 그 말을, 나에게도 그리고 아끼는 사람에게도 응축된 진심을 담아 자주 전하고 싶다.
무심히 던지는 창에 찔려 아팠기 때문에, 나는 타인에게 함부로 창을 던지지 않는 헤아림을 가지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나를 아프게 했던 그들의 날카로운 말들이 역설적으로 내가 누군가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부드러운 손길을 가지게 한 것이다.
이것이 내가 숱한 창과 방패의 대화 속에서 배운, 인생의 지혜다. 역시나, 의미없는 고통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