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심오하고 철학적인 질문에 대한 나의 결론은 ‘사랑’이었다.
도대체 나는 왜 태어났고 왜 사는지, 삶의 목적은 어디에 두어야 할지를 치열하게 고민한 시기가 있었다. 고생만 하라고 태어난 세상은 아닐 텐데, 내가 추구해야 할 본질적인 가치는 무엇일까. 그 오랜 고민 끝에 찾은 삶에서 가장 추구해야할 가치는 사랑이었다. 마음을 따뜻하게 적시는 온기, 나라는 존재의 이유를 찾아주는 사랑이야말로 계속 살아갈 힘이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사람이 무엇으로 버티는가'는 조금 다른 영역의 문제였다.
나의 20대는 입시 지옥에서 해방되어 맛본 짧은 행복 뒤에 찾아온, 아주 길고 지루한 불행의 시간이었다. 나의 몸과 마음은 완전히 망가져버렸다. 휴학은 길어졌고 친구와 친지, 그 누구와도 닿지 않은 채 스스로를 방 안에 가뒀다. 세상 밖으로 영영 나가지 못할까 봐 겁이 날 때쯤 시도한 짧은 산책, 그리고 고립을 겨우 벗어난 뒤에도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 강의실과 집만을 기계적으로 오가는 생활이 이어졌다. 지독하게 외롭고 불행하고 막막한 시간이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탈출구는 보이지 않았고, 노력할수록 일은 더 꼬여만 갔다. 그때 나는 내가 뜨겁게 달궈진 프라이팬 위에 올려진 오징어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잠든 시간을 제외한 의식이 있는 모든 순간이 불행이었고, 온몸이 지져지는 고통을 견디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고통이 극에 달하니 사랑하는 사람들의 존재조차 내게는 실질적인 위로가 되지 못했다. 일상의 행복은 사랑으로 충만해지지만, 한발만 잘못 디디면 떨어지는 낭떠러지에 서있는 절망 속에서는 사랑 조차 나를 살리진 못했다.
그때 나를 버티게 한 것은 ‘희망'이었다.
아무리 칠흑같이 어두워도 언젠가는 이 터널의 끝에 빛이 있으리라는 믿음이 그것이었다. 현실은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아서 절망적이었지만, 나는 고난을 버텨낸 사람들의 기록을 탐독하며 나 또한 좋아질 것이라는 가느다란 희망의 끈을 부여잡았다. 그 끈을 놓는 순간 삶을 포기해버릴 것 같아 이를 악물고 버텼다. 만약 그때 내게 단 한 줌의 희망도 남지 않았다고 믿었다면, 나는 분명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
발 밑에서 솟구치는 불길에 매일 데이며 살았던 고난의 10년. 그 시간 동안 한 줄기의 희망을 어떻게든 붙잡아서 기어이 살아남았고, 정말로 믿었던 대로 더 좋은 날이 왔다. 모든 문제가 마법처럼 단번에 해결되는 반전은 아니었지만, 내가 변하고 상황이 바뀌며 삶은 조금씩 치유의 궤도로 진입했다.
결국 극한의 절망 속에서도 사람을 끝내 버티게 하는 것은 희망이었다. 이 가시밭길의 끝에는 반드시 나아지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확신, 그 희망만이 사람을 버티게 하는 거였다. 만약 지금 누군가 가혹한 길을 걷고 있다면, 수천 가지의 조언이나 공감, 위로보다는 ‘이 상황은 영원하지 않으며,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고, 희망을 보여주는 것이 그 사람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20대 막막한 나만의 사투의 시간 동안 많은 영화를 봤다. 그나마 나의 상황을 잊는 시간이 영화에 몰입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영화 <쇼생크 탈출>을 보며 큰 위로를 받았는데, 이 영화에서도 희망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Hope is a good thing, maybe the best thing. And no good thing ever dies.”
(희망은 좋은 거예요. 아마 가장 좋은 것일지도 몰라요. 그리고 좋은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람을 살아가게 하고, 끝내 버티게 해주는 사랑과 희망. 이 두 가지 가치를 중심에 두고 살아간다면 그것 자체로 멋진 삶이자 성공한 삶이다.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혔던 "나는 왜 살아야 할까“ 라는 삶의 목적에 대한 고민의 결론은 역설적이게도 ”이유는 없다"였다. 태어났으니 그냥 사는 것, 한 번뿐인 삶이니 그저 최선을 다해 살아보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 우리네 삶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상병 시인이 말한 것처럼, 이 세상으로의 소풍을 즐겁고 가볍게, 너무 고통스럽지 않게 누리다 가고 싶다. 가시밭길 위에서도 기어이 희망을 찾아냈던 나의 20대가 있었기에, 이제는 그 소풍길이 조금 더 평온하고 단단해졌음을 느낀다. 사랑으로 살고 희망으로 버티며, 오늘도 이 아름다운 소풍을 묵묵히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