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때 부터 생명을 키우는 걸 좋아했다.
학교 앞에 병아리 아저씨가 오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초딩은 아마 드물거다. 한마리에 500원, 조그만 삐약이를 데려와서 집에서 키우다가 어느덧 청소년 닭이 되어서 온 집안에 싸는 똥을 감당할 수가 없어졌다. 다행히 근처에 마당이 있는 할머니 집이 있어서 청소년이 된 삐약이는 할머니 집으로 옮겨가 마당에서 무럭무럭 자랐다. 할아버지가 파리채로 파리를 탁 하고 잡으면 쏜살같이 달려가 떨어지는 파리를 잽싸게 잡아먹는 재롱을 피우며 건장한 성체 닭이 되었다.
그날도 여느때랑 다를게 없이 할머니, 할아버지랑 함께하는 주말이었다. 점심에 할머니가 삼계탕을 끓여주셨는데 고소하고 맛있었다. 아무 생각없이 한두입 먹다가 갑자기 닭 생각이 나서 혹시나 .. "할머니 이거 우리 닭이야?" 하니까 "응, 이제 너무 컸다. 할아버지가 아침에 잡으셨어." 라고 하시는거다. 내가 꿀잠자는 동안 새벽에 할아버지가 조용히 잡으셨다니.. 손녀도 먹이려고 맞춰서 잡으신 거겠지.
나는 그때 이미 초등학교 저학년이어서 떼쓰는 나이는 아니였기에 속으로는 놀랬지만 표현은 안하고 대충 조금 먹고 배부르다 둘러댄 기억이 난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6.25를 겪으신 전쟁세대니까 키우던 닭을 잡아 먹는 정도는 예사셨겠지. 그치만 그때의 나는 파리 실컷 먹이며 키운 정든 닭을 우리가 먹는 자연의 사이클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렸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전쟁 같았던 삶을 이해하기에도 한참 어렸다.
이후 병아리에 대한 관심은 현저히 줄었고 대신 물고기로 옮겨갔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으니 마치고 오시면 6시 정도였다. 초등학교때는 학교도 일찍 마치고 학원도 안다녔으니 텅 빈 집에 혼자 있으면 쓸쓸하고 심심했다. 그러다 보니 반려동물을 키우게 해달라고 늘 졸랐고 부모님은 강아지는 절대 안된다고 하시며, 그나마 타협해서 데려온게 금붕어였다. 금붕어에 밥주고 노는건 사달라고 한 딸이 하고, 물 갈아주고 어항 청소하는 힘든 뒤치닥 거리는 다 엄마 몫이었다. 어항 대청소를 하는 어느날, 엄마가 금붕어들을 세숫대야로 옮긴 뒤에 수족관을 닦고 물갈이를 해주고 있었는데 내가 신나게 집으로 뛰어들어오다가 바닥에 있는 세숫대야를 보지 못하고 발로 차버렸다. 세숫대야가 뒤집어지면서 물과 함께 금붕어들이 냉장고 밑으로 쏟아졌고, 엄마는 소리지르며 한 손으로는 막대기로 냉장고 밑을 쓸어내 물고기를 구출하고, 한 손으로는 내 엉덩이를 열심히 때렸던 기억이 난다.
물고기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지면서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고 있던 와중에 엄마 직장 동료분의 강아지가 새끼를 낳았다고 한마리 준다는 거다. 2개월 조금 넘은 검정 얼룩이 있는 흰 똥강아지, 너무 작고 귀여웠다. 학교 마치면 강아지 보러 집까지 한번도 안쉬고 뛰어갈 정도로 바로 정이 들었다. 베란다에 울타리를 치고 그안에 강아지 집을 두고 혼자 놀수 있게 해놓고 다녔는데, 그날은 집으로 달려가보니 울타리 안에 강아지가 없었다. 순간 이상해서 주위를 둘러보니까 베란다 한쪽 구석에 식물들에 물 주기전 염소를 날리기 위해 하루정도 물을 담아두는 큰 바스켓이 있었는데, 그곳에 강아지가 빠져있었다. 이제 막 4개월이 되어가는 호기심 왕성한 강아지여서 여기저기 올라가고 하다가 울타리를 넘고 바스켓까지 올라갔나보다. 너무 놀라 바로 건졌지만 물에 빠진지 오래 된건지 이미 축 쳐져있던 강아지, 그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대성통곡을 하는 딸의 전화에 급하게 조퇴를 하고 집으로 달려온 엄마는 엘베에서 내리면서부터 나보다 더 울고 있었다. 엄마의 눈물을 본게 그때가 처음이었다. 비까지 내리던 슬픈 날, 엄마랑 나랑 둘이 강아지를 천에 싸서 뒷산에 묻어줬다.
가족들 모두 충격을 받았고, 부모님은 더 이상 반려동물은 안된다고 선언하셨다. 그러다 몇년이 흐르고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내가 여전히 강아지 노래를 부르니까 부모님이 고등학교 들어갈때 배치고사에서 1등을 하면 선물로 사주신다고 하셨다. 부모님은 내가 해낼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기에 ‘입막음용+공부하게 할 미끼’ 로 베팅을 하신거겠지만, 나는 그때부터 밤낮으로 공부를 했고 결국 고등학교 입학 배치고사에서 전교 1등을 했다. 입학식에서 내가 선서하는 걸 보시고 마침내 내 평생의 소원이었던 강아지를 입양해오셨다. 엄마 품에 안겨들어오는 하얀 말티즈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렸다. 우리는 이 사랑스러운 생명체를 (화이트)초코라고 이름 지었다.
고등학교때 야자 마치고 10시가 넘어 운동장에 나오면 초코랑 아빠가 산책하며 기다리고 있다가, 내가 부르는 소리에 날쎄게 달려오던 초코의 그 환한 얼굴을 잊을수 없다. 초코 덕분에 하루종일 쌓인 공부의 피로가 싹 풀렸다. 반려동물이 사람과 깊게 애정을 주고 받으면서 오래 같이 지내면 그 가족이랑 닮아가는 것 같다. 초코는 애교를 부리다가도 때론 새침하게 구는, 부끄럼타는 소녀같았다. 어느 장소를 가도 화장실을 찾아서 배변하고 자기를 닦아 달라고 엉덩이를 들이밀곤 했다. 웬만한 사람보다 깔끔을 떨던 강아지, 12년을 집안에 활력을 주는 귀염둥이 막내 역할을 하다가 갑자기 잠깐 아프더니 떠나버렸다.
초코랑 헤어진지 7년이 지났지만 앨범에 가득한 초코 사진은 아직도 잘 보지도 못하겠고 지우지도 못하겠다. 금기의 영역처럼 고히 남겨두고 있다. 초코 이후로 우리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는다. 깊게 정든 만큼 작별은 너무나 아팠고 다시는 그런 깊은 정을 들이고 싶지 않다. 우리의 마지막 강아지 초코.
반려동물을 키우는 경험은 인간에게 많은 사랑의 감정을 가르쳐준다. 친밀한 애착을 형성하는 법을, 사랑을 주고 받는 법을 반려동물을 통해 배우면서 이 작은 존재들이 내면 아이를 성숙하게 해주는 스승의 역할도 하는듯 하다. 나의 일부분으로 남아있는 작은 존재들, 내 친구가 되어주고 때론 내 스승이 되어줘서 고마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