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세뱃돈

by 서하

카페 단골손님 중에는 스님들도 있다. 그중에는 나를 마치 다방 아가씨 대하듯 바로 반말로 이것 저것을 요구하는 스님도 있어서 처음에는 되게 불쾌했다. ‘젊은 아가씨가 있어서 보러온다느니’ 뭐라 응대하기도 애매하고 스님이 하기엔 부적절한 농담을 툭툭 던질때는 표정관리가 어려웠다. 그래도 여러명 중 한명만 그러고 나머지 스님들은 깔끔하게 차만 마시고 떠나는 단골 손님들이니 친절하려고 노력했다. 그중에 항상 정중하고 젠틀한 외국 스님이 한분 계시기 때문에 나는 주로 그분을 보면서 미소로 대했다.

설 연휴가 시작되자, 스님들이 첫번째 손님으로 오셨다.

커피 주문을 마치고 그 정중한 외국스님이 만원짜리를 한장 주시면서 세뱃돈이라고 하셨다. 당황해서 사양했는데 스님이 주는 세뱃돈은 받아야 하는 거라며, 복주는 의미라며 극구 다시 주셨다. 서너차례 지폐가 왔다갔다 하다가, 너무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것 같아서 결국 합장을 하면서 "감사합니다, 스님"하고 받았다. 내 손바닥 위로 건네진 빳빳한만 원권 한 장. 그 지폐 한 장의 무게가 10년 넘게 잊고 살았던 '명절'이라는 단어의 무게만큼 묵직하게 다가왔다. 기분이 묘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친척끼리 모이지 않으니 세배를 할 기회가 없었다. 명절에 푸짐하게 음식해먹고 배두둘기던 시절이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졌다. 마음 편하고 풍요롭게 쉰 적이 있나? 특히 카페를 하고부터는 연휴가 대목이니 더 바쁘게 몸을 움직이며 명절의 기분을 잊고 살았는데, 스님이 주신 세뱃돈에 여러 생각이 들었다.


어릴때는 할머니 집에 복닥복닥 모여서 명절음식 먹고 두둑하게 세뱃돈 받는 재미가 컸다. 친척끼리 일년에 한두번이라도 한자리에 모여서 부대끼는 시간들이 가족임을 느끼게 해주고 정을 이어지게 만들었는데, 우리를 이어지게 만들었던 구심점인 할머니 할아버지가 안계시니 각자 흩어져 살면서 일년에 한번도 보기 힘든 사이가 되었다. 나는 가족이라는 뿌리에 대한 애착이 컸던 사람이라 그 소속감과 따뜻함이 좋았는데, 이제 내가 많이 커서 그런지 더이상은 가족한테서 그런 감정을 별로 느끼지 못한다. 얽히고 설킨 상처들과 마음을 솔직하게 내비칠 수없을 정도로 경직된 감정들이 서로를 심리적으로 멀어지게 한다. 그리고 내가 성인으로 제대로 가치관을 가지고 설수록 품안의 자식으로 통제하고 싶은 부모님과는 한뼘씩 더 멀어짐을 느낀다.


가족의 모습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는구나. 가족들은 원래 그 모습이었는데 내가 변해서 이상하게 느끼는건지, 아니면 그들이 세월이 지나며 변한 모습에 내가 거리감을 느끼는건지 뭐가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확실한건 내가 세상을 배워가면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생길수록 이해할 수 없고 도저히 받아들일수없는 일들이 늘어난다는 거다.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과 함께할때 더욱 더 혼자임을 느낀다. 그래도 나는 괜찮은 척, 상처 따윈 없는 척을 한다. 어차피 바뀔게 없는 현실이라면 그 현실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사는 수밖에. 서로를 온전하게 품을 수 있는 존재가 생긴다면, 그때 맞이하는 명절은 의미가 다를 것이다. 일하느라 바쁜 명절 연휴에 스님이 주신 세뱃돈 덕분에 명절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한참동안 잊어버린 명절의 의미를 내가 되찾는 날이 올까? 내년 명절은 조금 다르길, 아니 조금 더 나다운 명절을 나에게 선물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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