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나누는게 가족이라면

가족의 의미를 고민하다

by 서하


아이들을 위한 셀프트리를 열심히 그린 기념샷

​작년 연말 크리스마스 즈음, 가족들과 부산 나들이가 예정된 평일이었다.

아빠는 따로 오라고 놔두고 나랑 엄마는 아침부터 부지런히 서면에 있는 피부과로 향했다.

주름지기전에 한달에 한번은 수분관리를 해줘야할 나의 나이, 그리고 일년에 한두번은 리프팅이 필요한 울 엄마 나이. 세월이 참 빠르긴한데 마냥 아쉽지만은 않다.

촘촘하고 빼곡하게 많은걸 겪고 지나왔으니, 이제 나이 드는게 편안하게 느껴지는 면도 있다. 그만큼 성숙해지는 것일테니, 성숙 버전의 내자신도 좋아하기로 했다.

돈벌어서 쓸 수 있을때 쓰자는 주의인 나는, 여행을 가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나를 꾸미는 것에 아끼지 않으려고 한다. 맛있는게 땡기고 새로운 여행지가 궁금하고, 유행템을 사고 꾸미고 싶은 욕구가 드는 나이도 유한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가장 보람있는 소비는 나에게 자신의 모든것을 주었던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조금이나마 베풀 때이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나는 무제한적 희생을 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물론 그 안에서도 수많은 갈등과 상처를 주고받는 인간적 한계는 있었지만) 그러다 보니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과 소중함을 많이 느낀다. 할수있을때 무조건 하자가 내 신조, 나중은 없다.

딸 돈을 본인한테 쓰는걸 싫어하는 엄마는 피부과에 가서도 자기는 내가 끝날때까지 기다리겠다며 극구 거부했지만, 내 고집을 이길수 없지. 흥.

둘이서 뜨뜻하게 피부관리 받고 나오니 단호하게 안하겠다던 상담받을 때의 표정과 달리 흡족한 미소를 띈 엄마였다 ㅋㅋ

힐링을 마치고 언니부부랑 아빠랑 만나기로 한 송정의 식당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따뜻한 겨울날에 얼음 동동 막국수와 찐만두를 먹으니 다들 넘 맛있었는지 허겁지겁 그릇을 비웠다.

부른 배를 잡고 송정 해변을 따라 걷다가 카페에서 신나게 수다도 떨고 마지막으로 용궁사에 들렀다. 용궁사 다리에는 소원을 빌며 동전을 던지는 장소가 있는데, 늘 똑같이 되뇌이는 소원을 간절히 빌고는 동전을 던졌지만 자꾸 거북이 머리에 맞고 튕겨나갔다. 20개는 던졌다지. 갸륵한 정성을 보고 제 소원을 들어주실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엄마아빠는 언니부부랑 부산에서 1박 하며 재밌게 놀다올테니 나는 한껏 가벼운 마음으로 나의 학생들이 기다리는 경주로 돌아왔다.


학원에 도착해보니 문앞에 쌀 20키로 짜리 두 포대가 놓여있었다. 나이 차이는 좀 많이 나는 나의 오랜 절친이 수확한 쌀을 나눠준거였다. 이 무거운 쌀을 이고지고 갖다준것도 눈물나게 고맙고, 일년은 실컷 먹고도 남을 일용할 양식을 나눠준것에 또 감사했다. 항상 현명한 조언을 해주고 용기를 북돋아주고 좋은 말로 위로해주는 친구, 가족의 의미가 마음을 나누는 관계를 뜻한다면 이미 가족인 친구다.

나는 결혼식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종종 해왔는데,

그 날만을 위해서 엄청난 준비와 돈을 쓰는게 너무 낭비라고 생각하는게 첫번째 이유지만, 두번째 이유는 의무적인 관계속에서 오는 피곤함을 그날만큼은 느끼고 싶지 않아서다.

정말 마음으로 이어진 사람들만 초대해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선별적으로 골라 초대할 수 없는게 현실이니 의무적으로 연결된 사람들을 다 초대하게 된다면, 펼쳐질 드라마가 눈에 보여서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날까지도 가면을 쓰고 불편한 감정을 억눌러야하다면 차라리 안하고 말겠다는 생각이다.

이제는 피가 섞였다는 거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로 했다. 친척까지 넓혀지는 가족이라는 관계가, 마음에 온기를 주는 지인보다 못할때가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오히려 가슴에 비수를 꽂는 상황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옭아메는 상황들은 그러한 의무적으로 부여된 관계속에서 나올때가 많았다. 그러니 타고날때 부터 저절로 부여받은 관계에 더 이상 크게 연연하지 않을테다. 언제나 당당하게 본인 권리만 주장하고 함부로 선을 넘고 상처를 주는 가족이라는 이름표를 단 존재보다, 피는 안섞였지만 서로 존재로 만나 귀함을 알아보는 남이 훨씬 내 인생에서 중요하고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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