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접한 여우

by 서하

세상에는 너무 어린아이 같은 어른들이 많다. 겉만 나이 들고 속은 미성숙한 아이가 들어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씁쓸하면서도 내 자신도 돌아보게 된다.

특히 승진과 발령 등 민감한 이익이 얽힌 회사라는 공간은 한 인간의 깊숙한 밑바닥까지 들여다보게 한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반드시 같이 일해보라고 권한다. 상상치도 못한 밑바닥을 마주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말이다.


신입사원 때 처음 발령받은 팀은 감사하게도 윗직급 과장님들이 모두 좋았다. 우직하고 말수 적은 남자분들이셨는데, 업무를 미루거나 감정적으로 대하는 법 없이 묵묵히 자기 일을 하시는 분들이었다. 그런 평온함이 평범한 게 아니라 엄청난 행운이었다는 걸, 팀을 옮기고 나서야 뼈저리게 알았다. 인간은 늘 가진 것에 대한 감사함을 잃고 나서야 깨닫는다.

나의 불행은 같은 팀에 발령받은 동기 남자애와, 새로 합류한 팀장의 '합작'에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그야말로 환장의 조합이었다.




3개월간의 신입사원 연수를 마치고 첫 팀에 배치된 지 고작 2주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같은 팀 동기 놈은 나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동네 동생뻘이라, 나는 그를 잘 챙겨줘야 할 동지로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호의는 2주 만에 처참히 깨졌다.


퇴근길 로비에서 그를 포함한 동기들과 수다를 떨다 헤어졌는데, 밤 9시쯤 다른 동기에게서 연락이 왔다.

"언니, 오늘 팀 회식 갔어?"

"무슨 회식?"

알고 보니 팀장과 우리 팀 주니어들, 즉 선배 2명에 신입사원 2명 중 나만 쏙 빼고 넷이서 첫 회식을 하러 간 것이었다. 팀 배정 초기, 가장 중요한 첫 화합의 자리에 나만 '투명 인간' 취급을 당했다는 사실을 다른 동기를 통해 듣는 기분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다음 날 메신저로 물었다. "왜 나한테는 말 안 한 거야?"

돌아온 그의 대답은 싸늘했다. "내가 누나한테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나? 누나가 초대 안 받은 거겠지. 나도 몰라."


가만 보니 이 동기 놈은 굉장히 약삭빠른 여우였다. 특히 팀장의 예쁨을 독차지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는데, 하필 팀장 역시 내가 회사에서 만난 최악의 인간상이었다. 팀장은 늘 회식 자리나 회의실에서 남의 치부를 안줏거리로 삼았다.

"**본부 이사장이 어제 술 취해서 도로에서 넘어졌대. 그래서 얼굴 다 긁힌건데 피부 시술 받은척 하잖아. 절대 소문내면 안 돼."

"**팀 부장 아들이 장애인지 뭔지 아프대. 그 핑계로 쉬운 포지션만 맡는 거야. 악명높은 여자야"

남의 아픔을 유머인 양 떠벌리며 웃음을 유도하는 그 저질스러운 광경 속에서, 내가 차가운 표정으로 앉아 있자 팀장은 나를 대놓고 미워하기 시작했다. 동기 놈은 그 틈을 타 팀장의 '오른팔' 자처하며 사적인 친분을 공적인 업무에 끌어들였다.


하루는 그 동기가 팀장과 진탕 술을 마시고 무단결석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 본부장님께 보고할 업무를 취합해야 하는 날이었고 그 업무는 동기 놈의 담당 업무였다. 오후 늦게야 동기 놈에게 메신저가 왔다.

"누나, 내가 오늘 못 가니까 취합 좀 해서 팀장님 드려. 부탁해."

팀원이니까, 급하다니까 팀원들에게 메일을 뿌리고 자료를 취합해 팀장에게 보냈다. 하지만 팀장의 반응은 버럭 질러대는 고함이었다.

"취합을 이딴 식으로 해? 업무 인계를 받으려면 제대로 받아야지!"

자기랑 술 마시고 무단결석한 놈을 조지는 게 아니라, 그 구멍을 메꾸고 있는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는 꼴이라니. 미친놈들. 지금 생각해도 온몸이 떨리는 소름 돋는 광경이었다.




팀장이 나를 그토록 미워한 진짜 이유는 한 달 뒤 회식 자리에서 드러났다. 그는 내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싸늘하게 물었다.

"**씨, 공기업 들어오면서 카페 했다는 이력은 왜 말한 거야? 그게 득이 될 것 같아?"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했다. 자소서에 적은 창업 경력은 내 치열했던 삶의 기록일 뿐이었다.

"아쉬울 거 없다는 느낌을 주는 경력은 회사 생활에 아무 도움 안 돼. 전략 잘못 짠 거야. 여기는 튀는 놈 가만 안 두거든."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두려웠던 것같다. 조직에 목매지 않아도 스스로 설 수 있는 나의 '자생력'이, 남의 뒷말이나 하며 권력을 유지하는 자신의 초라함을 건드렸던 모양이다. 그 뒤로도 두 사람은 영혼의 단짝이 되어 회사 사람들의 치부를 낄낄거리며 술자리에 목숨을 거는 정치질로 살아남았다.




그 동기는 결국 원하는 나라로 발령받아 잘살고 있다고 들었다. 일하기 위해 모인 곳에서 정치질만 하는 사람들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아이러니. 하지만 나는 믿고 싶다. 묵묵히 제 일을 하며 아랫사람을 챙기는 동기들이 끝내 이기는 세상을.


그 동기 놈은 스스로 여우라고 생각했겠지만, 내가 보기엔 '허접한 여우'였다. 속셈이 너무 투명하게 보였고, 결국 같이 일해본 사람들은 다 알아챘으니까. 진짜 고수는 곰의 탈을 쓴 법인데, 그는 너무 대놓고 저질이었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 그들의 바닥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나는 끝까지 사필귀정을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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