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명품 가방을 환불하다

by 서하

올해의 시작은 강렬한 부딪힘과 함께 시작했다. 제주도의 폭설 속에 블랙 아이스를 밟자 브레이크는 무용지물이었고 렌트한 전기차는 갓길 난간을 향해 무력하게 미끄러졌다.

찰나의 순간, 다른 차를 피해 갓길의 표지판을 세게 박고 멈췄다. 정신 차리고 보니 난간이 허술한 고가도로였고 , 도로 아래를 내려다보며 공포와 안도를 느꼈다.

누군가는 천운이라 했고, 누군가는 조상님이 도왔다 했다. 적지 않은 목돈이 깨졌지만, 한군데도 다치지 않고,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도 않아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I am back and I will be back! 나는야 터미네이터."


작년 한 해는 차 안에서 격일로 혼자 울음을 터뜨릴 만큼 지독한 정신적 고통의 연속이었다. 나는 완전히 혼자라는,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차가운 현실을 마주하면서 처음으로 뿌리가 잘리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아마도 제대로 정신적 독립을 하는 시기였던 것 같다. 거울 속에 나는 어느새 흰머리가 숭숭 돋아났고, 입맛과 소화력은 바닥을 쳤다. 하지만 내 신조는 유지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아직, 열쇠는 나에게 있으니, 어떻게든 버텨내본다.'

멘탈은 너덜너덜해도 학원에서도 카페에서도 힘없는 미소일지 언정 밝음은 최대한 유지했다. 치열했던 작년의 나에게 그래서 니가 해낸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지금 멀쩡하게 웃으며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게 최선의 결과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얼마전, 나를 '우쭈쭈' 해주고 싶은 보상심리에 덜컥 루이비통 가방을 샀다. 앙증맞은 자태에 반해 과감하고 무모하게 결제했지만, 막상 가방이 오니 집에서 시착만 해보고 며칠간 박스째 모셔두고 고민에 빠졌다. 보부상 기질인 내가 과연 이 작고 값비싼 백을 얼마나 들까? 이건 진짜 '나'를 위한 선물일까.


일주일을 고민하다가 결국 나는 가방을 돌려보냈다. 막상 환불을 하니 어찌나 속이 시원한지. 내가 진정 원한 보상이 아니었나 보다. 대신 나는 내 발을 편하게 해줄 에어맥스 운동화와, 백화점에서 지나가던 아가씨가 정보를 물어볼 만큼 내게 찰떡인 실용적인 백팩을 샀다. 겨울내내 내 발 만큼은 따뜻하게 해준 양털 어그를 집어넣고 새 운동화를 개시하며, 루이비통을 샀을 때보다 몇 배는 더 속이 시원했다.


소유와 환불 사이를 치열하게 오가던 일주일, 그 번민의 시간은 결국 내가 지금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여정이었다.

명품 가방 하나에 일희일비하고 고민하다 끝내 환불을 결정한 이 모든 과정은, '타인의 시선'에 비친 나를 지우고 '진짜 나'를 대면하게 했다.

‘당장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긴 고민 끝에, 나는 최신 아이패드를 선택했다. 이제 어디서든 내 글을 쓰고, 수업 자료를 만들며, 모셔두는 즐거움이 아니라 늘상 사용하는 즐거움을 누리려 한다.


언젠가 명품 가방을 모시지 않고 에코백 처럼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면, 그때 멋지게 사보리라.


명품을 열망하던 마음도 나였고, 실속을 챙기며 환불을 선택한 마음도 나였다. 이 상충하는 모든 모습이 결국 '나'임을 인정하고, 내면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법을 이제야 배운다. 연초의 호기로운 지출은 올 연말까지 지치지 않고 달리기 위한 든든한 땔감이 될 것이다. 스스로를 동기부여 할 줄 알고, 때로는 세심하게 살피며 '셀프 선물'로 다독일 줄 아는 내가 대견하다.


자, 다시 시동을 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

작가의 이전글허접한 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