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장창, 행운을 부르는 소리

by 서하


작년에 이사도 했고 학원 오픈도 얼마 남지 않았던 시기에, 부모님과 이모 가족들을 초대해 정성 어린 저녁을 대접하기로 했다. 건강과 맛을 모두 고려해 고심 끝에 고른 메뉴는 전복 요리였다. 산지 직송으로 받은 싱싱한 완도 전복 스물 두마리. 하지만 요리가 시작되기도 전에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살아 꿈틀거리는 전복을 두세마리도 아니고, 스물 두마리나 내 손으로 직접 손질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것이다.


평소 남이 해주는 요리를 먹을 땐 몰랐던 생명에 대한 죄책감이 밀려왔다. 으으, 미안해, 우리의 영양분이 되어줘서 고마워. 속으로 말하며 씻은 전복을 끓은 물에 담궜더니 움직임을 멈췄다. 이빨을 빼고 내장을 다지고, 은근히 손이 많이 가는 귀한 음식이구나. 찹쌀을 불리고 각종 야채도 썰고, 10인분의 전복죽을 끓여내는 데 꼬박 세 시간이 걸렸다. 전복 버터구이와 새우찜도 완성했고, 거기다 배달 온 족발까지 더해지니 푸짐한 저녁 한상이 완성되었다.


그런데 사건은 새로 산 접이식 이동 테이블을 옮기는 순간 터졌다. 바퀴가 달린 테이블이고 양쪽 테이블은 날개처럼 접었다 펼수 있는 구조였는데, 양쪽 테이블을 펼쳐서 완성된 음식들을 올리고 그상태로 이동을 한 것이다. 다섯 발자국이나 갔을까. "와장창!" 거대한 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의 접시들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접이식 테이블은 양쪽 테이블을 접은 채로 이동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급한 마음에 간과하고 옮긴 것이다.


순간 뇌 회로가 정지된 듯 얼음이 되었다. 대형 사고 앞에서 나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한 채 벙쪄 있었다. 그때, 거실에 앉아 있던 이모의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뭔가 엄청나게 깨지는 소리긴한데, 일단 쉼호흡해라. 무조건 잘되는 징조다. 액뗌했다, 야! 시원~하다!"


그 한마디에 얼어붙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부엌으로 달려와 화를 내려던 부모님의 표정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불행 중 다행으로 가장 공들인 전복죽 솥은 테이블 한가운데 올려져 있어서 무사했다. 바닥에 떨어진 접시에는 전복 구이와 새우찜이 있었는데, 통쨰로 요리된 거다 보니 물에 깨끗이 씻어서 다시 간을 해서 내놓을 수 있었다. 마룻바닥에는 훈장 같은 흠집이 남았지만, 다들 맛있게 먹어준 덕분에 잔치는 무사히 끝이 났다.


나는 참 덜렁거리는 사람이다. 오늘도 컵을 두 개나 깨트리며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빨리 해내야 한다는 조급함이 늘 실수를 부른다. 어릴 적엔 이런 실수 때문에 참 많이도 혼났다. 그래서인지 실수를 하면 본능적으로 눈치를 보며 자책하곤 했다. '나는 왜 이렇게 모자란 걸까.'


하지만 그날 이모의 위로 이후로 내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무언가를 깨트려도 이제는 ‘괜찮아, 액땜한 거야. 별거 아니야' 라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두고 자책해 봐야 소용없다는 사실을, 오히려 그 에너지를 수습하는 데 쓰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너그러워지는 연습을 이제 나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적용해 보려 한다. 아이들이 같은 문제를 자꾸 틀려도 "그럴 수 있지" 하고 웃어주는 선생님, 손님이 컵을 깨도 "괜찮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지.


다 별일 아니다. 다 괜찮다. 나에게도, 그리고 타인에게도 조금 더 너그러워질 때 우리 삶의 '와장창' 소리는 불운이 아닌 ‘행운‘을 부르는 소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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