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내가 가진 것들이 유난히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계절이 있다.
통장의 잔고부터 내가 선 자리의 무게, 거울 속의 외모와 체력까지. 나를 구성하는 여러 조건이 기대에 못 미칠 때, 아쉬움을 넘어선 '결핍'의 통증을 느껴왔다.
‘꼭,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상상하는 완벽한 자아의 모습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향에 도달하려 애쓸수록, 현실과의 간극을 느끼며 더 깊은 구덩이로 빠졌다.
스스로에 대한 욕심이 많고 삶을 치열하게 대하는 사람일수록, 그 결핍의 농도는 더 짙고 깊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는 이 결핍의 정체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내가 간절히 원하며 부족하다고 느꼈던 그 대상들이, 사실은 이미 내 곁에 숨어 있었다는 신기한 경험들을 했기 때문이다.
세차할 현금이 없어 며칠째 먼지 뒤집어쓴 차를 끌고 다니다가, 우연히 열어본 차안 수납함 구석에서 구겨진 지폐 몇 장을 발견할 때. 운동하러 나갔다가 고무줄이 없어 당황하던 찰나, 가방 깊숙한 곳에서 툭 튀어나온 고무줄 하나를 마주할 때. 혹은 입을 티셔츠가 없다며 유니클로에서 기본 티를 샀는데, 며칠 후 옷장에서 새것 같은 티셔츠 여러장이 나올때. 이렇듯 나는 수없이 나열할 수 있을 정도로 이미 있는 것들을 없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가 느껴온 결핍은 무언가 '없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진 것을 '보지 못해서' 생기는 환영이라는 것을.
이 깨달음은 물질적인 영역을 넘어 내 삶의 본질로 확장되었다. 마음 통하는 사람 하나 없다고 외롭게만 느꼈던 날들에도 항상 내 곁을 지키던 가족의 온기가 있었음을, 사랑받지 못한다고 자책하던 시간 속에서도 나를 아껴주던 여러 존재의 시선이 있었음을, 패배감에 젖어 '이룬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누군가에겐 간절한 꿈이었을 목표들을 하나둘 성취해 온 지난날들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었으면서, 그 풍요로움을 등진 채 밖으로만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이제 나는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 조급해하는 대신 마음을 내려놓는다. 아직 내 눈에 선명히 보이지 않을 뿐, 내가 바라는 것들은 이미 내 주머니 속에 들어있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이다.
부족하지만, 하나도 부족하지 않다는 이 역설.
자꾸 더 채우려 애쓰기보다, 내 주머니 속에 담긴 눈부신 것들을 천천히 꺼내어 들여다보는 연습을 해야겠다. 결핍이라는 환영에 속지 않고 이미 충만한 나를 마주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스스로를 구원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