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제자가 서울 소재의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학원을 오픈하자마자 제일 먼저 문의 전화를 하고 어머니와 찾아왔는데, 그때부터 남달랐다.
눈빛이 너무 초롱초롱했다. 보통 10대 아이들은 수줍어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시선을 잘 주지 않는데 이 아이는 달랐다. 수줍은 미소를 띄고 있으면서도, 어머니와 내가 대화할 때 나에게 시선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다. 이 어린아이가 벌써 경청의 태도를 갖추고 있다니? 놀라웠다. 표정에서부터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긍정적인 기운이 넘치는 아이라는 게 느껴졌다.
어머니는 굉장히 쿨한 교육관을 가지고 계셨다. 아이들의 특성에 맞게 조언과 지원은 해주시되, 최종 선택과 책임은 아이들이 지는 것이라는 확고한 생각이 있으셨다. 우리 학원도 지나가다 보고 아이가 궁금해해서 같이 오신 거라고 하셨다. 커리큘럼을 꼼꼼하게 확인하고 아이와 상의 후 바로 등록하셨는데, 그 뒤로 어머니는 비용 결제할 때 외에는 단 한 번도 먼저 연락하신 적이 없었다. 아이가 나와 알아서 잘 공부할 것이라 믿으시는 듯했다.
여러 아이와 학부모를 만나보니 자녀와 부모 간의 관계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 듯 보였다. 부모가 앞서가며 길을 찾아주고 방법을 제시하면 아이가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유형, 그리고 아이가 스스로 탐색해 길을 찾고 부모는 뒷받침하는 유형. 공부는 결국 자녀가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는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후자의 유형이 훨씬 바람직하다고 본다. 물론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떨어지는 저학년 때까지는 부모의 판단이 큰 영향을 주겠지만, 중학교 1학년 정도만 되어도 자신에 대한 판단 능력이 생긴다. 이때부터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이치를 배우는 게 중요하다.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까를 고민하게 된다. 다정하고 따뜻하면서도 허용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그러면서도 나의 호불호를 강요하지 않고 건강한 거리를 두는, 그런 멋진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오픈 초기부터 지금까지 쭉 함께했기에 이 아이와 나는 정이 들었다. 초창기엔 대부분 둘이서 수업했기 때문에 서로의 에너지에 더 깊이 맞춰져서 그럴테다. 수업 종료일이 다가오고 있던 얼마 전, 보충 때문에 오랜만에 둘이서 수업을 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아이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게 어두웠다. 고민이 있는 건가 생각하던 찰나, 아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선생님, 혹시... 제가 아무한테도 말 못한 고민이 있는데 들어주실 수 있나요?”
“응, 당연하지. 얼마든지.”
아이의 고민은 의외였다. 본인이 자존감이 너무 낮은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학교에서 자기보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며 친구들을 통솔하는 아이들과 비교하면, 자기의 외모나 성적이 너무 부족해서 위축된다는 것이다. 수업할 때 보면 항상 밝고 유머 감각도 뛰어나며 성적도 상위권인 친구인데 자존감이 낮다니, 매치가 안 되어 깜짝 놀랐다. 부모님께 이런 고민을 얘기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절대 말하고 싶지 않단다.
“부모님이 너의 고민에 공감해주실 여유가 없을 것 같아 말씀 안 드리는 거야, 아니면 잘 들어주실 것 같지만 굳이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아서야?”
아이는 부모님이 언제든 잘 들어주실 걸 알지만, 자존심상 말하기가 싫다고 했다. 자기의 어두운 감정을 부모님께 드리고 싶지 않아 참고 있는데 가끔 너무 우울해서 이렇게 털어놓는 것이라고.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진심을 꺼냈다.
“너는 지금 네가 가진 능력의 10%도 안 보여준 상태야. 10대 학생이 교육 시스템에 맞춰 살다 보면 오로지 점수로만 평가받잖아. 네가 가진 그릇은 그것보다 훨씬 큰데 정해진 틀 안에서만 평가받으니까 역량을 보여줄 기회가 없었을 뿐이야. 경쟁 속에서 어떻게 자존감이 마냥 높기만 하겠어. 하지만 너를 믿어주는 부모님이 계시고, 네가 꿈꿨던 학교로 진학도 하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자존감을 가져도 돼. 그리고 지금은 긁지 않은 복권이지만 20살 되면 네 스타일을 찾으면서 훨씬 멋져질 거야. 지금은 알에서 나오기 전 준비 단계니까 알 속에 있을 때 최대한 능력치를 올려놔 봐. 그게 네가 세상에 나갔을 때 든든한 방패가 되어줄 거야. 선생님도 옛날엔 안경 끼고 공부만 하던 쭈구리였어. 근데 하나씩 목표를 이루다 보니 자존감이 높아지더라. 그러니까, 웅크린 김에 높이 뛸 준비를 하고 있어 봐. 언젠가 네 세상이 올 거야. 그때를 대비해!”
내 얘기를 집중해서 듣는 아이의 눈빛을 보니 꽤 용기를 얻은 듯했다. 그런데 아이에게 하는 말이 내 귀로 다시 들려오면서, 마치 나 자신에게 해주는 위로처럼 느껴졌다.
‘그래, 나야. 너도 참 오래 웅크리고 있었다. 차가운 칼날 위를 걷는 듯한 시간들이었겠지. 하지만 언젠가는 네 세상이 오지 않겠어? 네가 가장 활짝 웃을 수 있는 때 말이야. 그때를 대비해서 힘을 모으고 있는 것일 뿐, 너는 화려하게 펼쳐질 거야.’
며칠 후 마지막 수업일, 아이가 선물을 들고 들어왔다. 꽃과 꿀이었다.
“앞으로 꿀 빠시라고 꿀 사 왔어요.”
센스 있는 말과 함께 달콤한 작별 선물을 건넨다. 항상 응원해주고 잘 가르쳐주셔서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글과 함께. 마음이 뭉클했다. 이 아이의 인생에서 나는 지나가는 한 명의 선생님일 뿐이지만, 우리가 함께한 순간에 나눈 진심을 알아주는 아이, 참 귀하다.
공부 스킬 그 이상을 전해주고 싶었던 나의 진심이 너의 마음 한구석에 작은 등불로 남기를 바란다. 스스로가 작게 느껴지는 밤마다, 네가 가진 그릇은 세상이 정한 틀보다 훨씬 크다는 말을 기억해주길. 꿀처럼 달콤한 너의 응원을 받으며 다짐해본다. 너의 세상이 올 때까지, 그리고 나의 봄이 온전해질 때까지,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멋지게 버텨내자.
언제나 빛나는 **아, 너를 가르치며 나도 많이 성장했어. 우리의 전성기에 다시 만나자. 고마웠어,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