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스토리는 무엇인가요?
나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30년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은퇴하는 엄마와 함께 카페를 창업했다.
대학 시절 어떤 직업이 나와 맞을지 치열하게 고민했지만, 사실 카페 창업을 고려해본 적은 없었다.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면서 외교관이나 법조인의 길 정도를 고민했지, 커피를 내린다는 상상은 해보지 못했던 거다. 10대 학창시절까지는 열정과 꿈이 넘치던 학생이었는데, 막상 원하던 대학에 입학하고는 그동안 미뤄둔 감정이 터지듯 엄청난 방황을 하기시작했다. 내 인생의 가장 큰 목표였던 대학, 그 한 점을 바라보고 모든걸 포기하고 지내왔는데 막상 도착한 그곳은 상상과는 사뭇 달랐고 또다른 목표를 보고 달려가야 하는 경쟁터일 뿐이었다. 결국 어딘가에 도달한다고 해서 모든게 해결되는 그런 지점은 존재하지 않는건데, 그걸 알기에는 참으로 어리고 순진했기에 크게 번아웃이 온거였다. 어른들이 말했던 대학만 잘가면, 취직만 잘하면, 결혼만 잘하면 이 모든 말이 사막의 신기루라는걸 20대 초반에 처절하게 깨달았다.
착실하게 공부했고 누구에게도 반항한 적없이 범생이로 살아와서 사춘기도 없는 착한 딸이라는 소리를 듣고 컸는데, 웬걸, 늦게 온 사춘기는 내가 누군지, 뭐를 좋아하는지, 인생이란 무엇이고 어떤 가치를 바라보면서 계속 노력해나가야하는지 등등 답을 구하기 어려운 고민들로 오래도록 방황하게 만들었다. 대학을 졸업할 시기가 다가왔음에도 답을 찾지 못했고, 이번에도 그냥 주변 사람들이, 그리고 사회가 인정하는 직업으로 확신없이 휩슬려 따라갔다가는 후회할 것 같아 여전히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나에게 한줄기 빛이 된 엄마의 제안, 함께 카페를 차려보는 건 어떻겠냐는 거였다. 경주에 있는 작고 오래된 한옥을 수리해서 카페로 만들어보자는 거였다. 자본을 제공할 테니 젊은 감성으로 카페로 개조해보자는 엄마의 제안에 솔깃해졌다.
우리 모녀는 워낙 커피를 좋아해서 국내든 해외든 여행을 가면 각 동네에서 유명한 카페를 다 찾아다닐 정도였으니, 우리만의 카페를 만드는 일은 설레는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40년이 훌쩍 넘은 낡고 오래된 한옥을 수리하는 일은 만만한 과정이 아니었다. 서까래를 멋지게 살릴 수 있을줄 알았는데 천정을 뜯어보니 곳곳에 곰팡이며 썩은 볕집이며 엉망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한옥인 만큼 오래된 서까래를 최대한 살리고 싶었기에 한옥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썩은 부분은 다 파내고 새로 시멘트를 채우고 목재를 이어 붙여서 신구가 조화를 이룬 서까래로 재탄생시켰다. 인테리어 회사에 맡기면 더 편하고 빠르게 진행되었겠지만, 좀 서툴더라도 우리만의 색깔을 녹여내고 싶어서 직접 디자인을 정해서 각 부분 별로 전문가를 불러 수리했다. 주방 수리를 맡아주기로 한 사람이 수리 당일에 잠적하는 바람에 다시 전문가를 찾느라 애먹기도 했다. 다행히 돈을 미리 주지 않아서 금전적인 피해는 없었지만, 공사는 반드시 계약서를 쓰고 완공 후 잔액지불 원칙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사건이었다. 창문 격자의 간격부터 전구, 스위치 하나까지 고심해서 정하다 보니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고 수리를 시작한지 1년이 지나서야 카페를 완성했다.
정성들여 카페를 오픈하고 운영한지 얼마 안되었을때, 서울에 갈 일이있어서 올라갔다가 오랜만에 대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그중에는 칼졸업을 하고 바로 삼성에 취직해서 이미 꽤 높은 직급인 친구가 있었는데, 강남에서 태어나서 강남에서 자라 한번도 강남을 벗어나서 살아본적이 없는 친구였다. 좋은 초중고를 나오고 원하는 대학까지 그리고 또 남들이 부러워하는 삼성까지 취직한 친군인데다 대학교때도 훈훈한 외모로 인기까지 많던 친구다. 몇년 만에 만날 정도로 사실 친하다고는 할 수 없는 뜨문 뜨문 소식을 아는 친구였는데,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가 생겼던 거다. 밥먹으며 대화를 하다가 친구가 나에게 왜 카페를 하게 된거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했더니 그친구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한국에서 행복하게 살려면 적어도 SKY 이상은 나와야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학생 때는 무조건 대학을 보고 달려가야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SKY를 졸업했으면 거기 나온 수준에 맞는 직장을 가져야지. 아니면 힘들게 대학간게 너무 아깝잖아.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행복하게 살려면 어쩔수 없어. 나는 이 이외의 조건을 획득하고서 행복하게 사는 친구를 한명도 본적이 없어. 고등학교때 공부안하던 친구들 중에 배달하는 애들도 있고, 다들 근근히 살더라고." 너무 충격적이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대화다.
그래서 나는 " 아, 그래? 나는 대학교 가기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은데 막상 대학을 다녀보고 그리고 또 세상을 알아가면서 참 허무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 결국 행복하게 사는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그 적성에 맞게 기질을 발휘하면서 살면 되는 건데, 남들이 다들 대학만 잘 가면 뭐가 있는듯이 해서 나도 열심히 따라만 왔더니 내 자신에 대해서 아는건 아무것도 없고 나만의 인생 철학도 전혀 없더라고. 그리고 내고향친구들은 대부분 지방에서 대학 나왔는데 나보다 행복하게 잘살던데 ㅋㅋㅋ" 라고 말했더니 전혀동의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서로 공감할 수 없는 대화 이후에도 이친구는 회사생활을 얘기하면서 ' 몇년 회사에서 일해보니 여자들이랑 일하면 정말 힘들다, 자기 아이가 아프면 하루종일 사무실에서 한숨쉬고 짜증내서 같이 일하기 힘든 여자 상사들 많다. 남자들은 아무도 안그렇지 않고 프로페셔널한데. 그리고 또 생리휴가는 왜있냐 그거 진짜 아파서 쓰는 사람 못봤다 다들 금요일에 쓰고 여행가더라' 등등 듣기 괴로운 말을 쏟아내서 대화 자체가 전혀 흥미롭지 않았다. 이 만남을 끝으로 우린 서로의 다름을 느끼고 자연스레 다신 안만나게 되었지.
나는 자기만의 삶의 스토리가 있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번듯하게 보여지는 대학, 회사, 집을 가지면서 탄탄하게 자기의 삶을 가꾸어 가는 것도 본인이 진정 원하는 목표라서 이를 차근차근 이루어가는거면 멋진 스토리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 짜치는 포인트는 그렇지 않은 길을 가는 사람들의 삶을 무시하는 태도다. 자신의 길만이 최고고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 우물안 개구리같은 세계관이라서 얘기를 듣고만 있어도 삶은 계란이 목에 걸린듯 답답해진다.
각자 생긴대로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감탄하게 되던데. 모든게 다 갖춰진 환경에 운좋게 태어나서 온실속 화초처럼 자라나고, 내 온실이 최고라고 여기며 자신을 뽐내는 사람보다, 들판에 잡초로 태어났어도 잡초인 자신을 이해하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사람이 훨씬 멋있다. 그리고 사실 비교조차 무의미할 정도로, 그리고 우월감을 느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땀 흘리며 열심히 살면서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자세’ 그 자체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한국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다고 그렇지 않은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며 우월감 느끼지 마시라. 세계에 나가면 그 코스 조차 별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누가 마음 따뜻한진짜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을지는 그런 눈에 보이는 잣대로 정해지는 게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