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운영하는 카페에는 8명이 앉을 수 있는 큰 테이블 자리가 있다.
나머지 자리는 3-4명씩 앉을 수 있게 구성 해놓고 원목의자부터 안락의자까지 다양하게 가구 배치를 해두었다. 카페를 10년 가까이 운영해오면서 큰 테이블을 차지하기 위한 자리 싸움이 있었던 적이 없는데, 신기하게도 최근 일주일 간격으로 자리에 대한 비슷한 갈등이 연달아 발생했다.
주말에 카페를 열자마자 첫 손님으로 아주머니 두분이 오셨다.
두 분 다 대추차를 시키고는 많은 자리 중에 가장 큰 테이블을 선택해 앉으셨다. 평소에 큰 테이블 자리에 2,3인이 앉더라도 미리 안된다고 말하기가 좀 깐깐하게 느껴져서 자유롭게 앉으시게 두는 편이었다. 먼저 앉으셨더라도 단체 손님이 우르르 들어오는 걸 보면 알아서 자리를 옮겨주시곤 했기에 갈등이 없었기 때문이다.
3시간을 푹 끓인 뒤, 대추 살을 다 짜내어 만든 정성이 듬뿍 담긴 대추차를 서빙하고 나는 마당에서 장작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누군가 유리창을 톡톡하고 치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아까 대추차를 주문한 아줌마가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는것이다. 얼른 들어가 왜그러시냐 물으니 대추차가 저번에는 아주 걸쭉했는데 이번에는 묽다고 주인이 바뀌었냐는거다. 아니라고, 엄마가 똑같이 만드시는데 대추가 살이 좀 적은 경우에는 저번보다 묽을수는 있겠으나 같은 레시피로 달인 대추차라고 설명드렸다. 그랬더니 "아니, 그래서 뭐 더 진하게 해줄건 없나보죠?" 하시는거다.
"네, 대추차는 저희가 미리 끓여둔 거라 지금 더 진하게 해드릴 방법이 없네요.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며 영 찝찝한 기분으로 돌아섰다. 우리 가게를 찾아온 손님을 맛으로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게 속상하긴 하지만 지금 당장 더 걸쭉하게 해드릴 방법은 없으니.
한시간 뒤, 단체손님 7분이 들어왔다. 7명의 가족이 함께 앉을 자리는 큰 테이블 밖에 없는데 앉아계신 아주머니들은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한듯 했다. 조심스럽게 두 아주머니에게 다가가서 "이 테이블이 단체손님용 테이블이라서요. 지금 단체손님이 와서 앉을 자리가 없는데 다른 편하신 자리로 옮겨주실 수 있나요?" 최대한 공손하게 사정을 설명드렸는데 아주머니 둘다 표정이 싸늘했다. 아주 무례하고 기분 나쁜 말을 들은 듯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거칠게 짐을 챙겨 다른 자리로 옮겨갔다. 누가 봐도 "나 지금 되게 불쾌하다!" 라는게 느껴질 정도로 우랑탕탕 소리를 내면서. 그분들은 그뒤로도 3시간이나 더 있었는데, 내가 부탁하지 않았다면 카페에서 제일 큰 자리를 2명이 차지하고 챙겨온 간식을 넓은 테이블에 펼쳐두고 먹으면서 4시간 넘게 있었을 거란 말이지. 역시나, 참으로 신기한 사람들과 어우러져 사는 요지경인 세상이다.
유쾌하지 않은 자리 싸움이 있은 며칠 뒤, 비슷한 연배의 아주머니 2명이 들어왔다. 커피를 시키고 "어머, 여기가 제일 상석이네" 하면서 아니나 다를까 제일 큰 테이블에 앉으셨다. 다른 자리가 많았지만 한가로운 날이어서 단체 손님이 안올수도 있으니 그대로 앉으시게 두고 커피를 드렸다.
그런데 아차차! 이걸 어쩌나, 딱 30분 정도 후에 6명의 가족 손님이 들어왔다.
얼른 큰 테이블로 가서 "지금 단체로 손님이 오셨는데, 여기가 단체석이라 편하신 다른 자리로 옮겨주실수 있을까요? 죄송하지만 부탁드릴게요" 하고 양해를 구했다.
그런데 그중 한 아주머니가 "싫은데요?"라고 하는 것이다. 순간 당황스러워서 할 말을 찾고 있는데 단체로 온 가족들 중 딸이 우리의 불편한 대화를 듣고는 괜찮다고 자기들이 자리를 나눠서 앉겠다고 했다. 그러자 딸의 어머니가 "왜? 저기 넓은자리에 같이 앉고 싶은데. 우리는 여섯명이잖아" 라고 불만이 섞인 듯 말씀하셨다. 가족들이 서서 우왕좌왕하자 큰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던 아주머니들도 양심에 찔렸는지 망설이다 자리를 옮겼다.
오랜 시간동안 이런 갈등이 전혀 없었기에 큰 테이블 자리에 인원 제한을 두지 않았는데 비슷한 상황이 연달아 일어나서 의아했다.
우리는 카페를 따뜻하고 편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몇년간은 1인 1음료 규칙도 두지 않았다. 돈을 아끼고 싶든 아니면 진짜로 마시고 싶지 않든 간에 모든 인원이 음료를 시킬수 없는 마음을 이해하려 한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제한을 두지않아도 1인 1음료를 시켰기에 그정도면 되었다 싶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8명이 와서 4잔을 시키고 빈 컵을 달라고 해서 나눠 마시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영업을 하는 곳에서는 이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에 긴 고민 끝에 결국 우리도 1인 1음료를 주문해달라는 안내를 적어두게 되었다.
큰 테이블 자리도 똑같다. "5인 이상 단체석 자리 이니 4인 이하는 다른 자리를 이용해주세요." 와 같은 문구로 굳이 제한을 두고 싶지 않았다. 단체손님이 없는 날도 많기 때문에 앉고 싶은 자리에 편하게 앉아서 카페를 즐기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난처한 상황이 연달아 발생하니 결국 "큰 테이블에 5인 이상 단체석입니다." 라는 문구를 붙였다. 그동안 배려있게 먼저 자리를 옮겨주셨던 분들 덕분에 자유롭고 편하게 운영해왔던 기억이 떠올라 약간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카페를 하면서 만난 대부분 손님들은 상식적이고 매너 좋은 분들이었다. 어떤 날은 커피를 다 마시고 떠나는 손님에게 인사를 하니, 카운터로 방향을 바꿔 오셔서 "사장님, 복 많이 받으시고 번창하세요."라고 눈을 맞추고 말하는 손님을 만나기도 한다. 그런 분을 만난 날은 뭉클한 마음이 들어 하루종일 기분이 좋다. 이런 분들 덕분에 ‘오늘은 어떤 분들을 만날까’ 하는 즐거운 기대감으로 일하게 된다. 배려가 몸에 자연스럽게 밴 사람들, 나의 미소를 따뜻하게 받아주는 사람들에게서는 은은한 향기가 느껴진다. 조금의 손해도 감수하기 싫어하고, 삐딱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그 공간이 주는 포근함이나 상대가 주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좋은 기운이 자기한테 와도 쳐내는걸 어쩌나. 안타깝게도 그런 사람들이 떠나고 난 자리에는 좋은 향기가 없다. 그럴때 나는 얼른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한다. 부정적인 감정을 나도 모르게 느꼈으니 얼른 훌훌 흘려보내고 싶은 마음일테다. 그래도 대부분의 나날들은 좋은 사람들이 주는 포근한 에너지 덕분에 행복하다. 그리고 그런 경우가 더 많다는 것에 감사하다. 아직 살만한 세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