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팔자 좋은 사람

by 서하

나는 많이 웃는 편이다.

억지로 그런다기 보다는 웃거나 미소 짓는게 습관이 되어 나의 한 부분이 되었다. 남을 유머러스하게 웃기는 능력은 부족하지만, 상대의 말에 잘 웃어서 대화하는 동안 상대를 기분 좋게 할 능력은 있다고 자부한다. 왜 이렇게 잘 웃게 되었나를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웃어야만 풀릴것 같은 긴장감 넘치는 상황에서 자란게 지대한 영향을 준 것 같다.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환경 속에서 잘 웃는 사람으로 성장한 아이러니. 웃어서 진짜로 마음이 밝아질때도 많았고, 기뻐서 웃은적도 많지만 마음은 울고있는데 겉으론 웃고 있으니 남은 내가 슬프고 힘든지 모를 때도 많았다. 특히 제일 가까운 가족한테 조차도 부정적인 감정을 내비치는게 어려워서 차라리 웃고 말거나 괜찮은 척하고 혼자 배겟잎을 적신 날이 많았다.

몇년전 양평에서 2주간 지낸적이 있다.

아빠가 큰 수술을 한 직후라 요양차 양평으로 가서 지내게 되었는데, 나도 퇴사를 해서 시간이 되니 엄마아빠도 챙겨드리고 같이 시간도 보내기 위해 양평으로 함께 떠났다. 아빠가 편하게 쉴 수 있게 넓고 쾌적하면서도, 예산 범위안에 들어와야 하며, 자연과 어우러지면서도 깨끗하고 인테리어가 촌스럽지 않은 곳으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에어비앤비 숙소를 물색했다. 엄마는 참으로..까다로운 사람이라, 엄마의 취향을 맞추려면 세세한 가짓수를 모두 고려해서 골라도, 어느 디테일 하나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좋지 않은 코멘트가 나오기 때문에 엄청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이번 숙소는 여행이 아닌 치유와 쉼이 목적이기에 더욱 숙소에 신경을 썼다.

오랜 서치 끝에 양평의 공기 좋은 산 속에 위치한 주택을 발견했는데 수백개의 후기 중 대부분이 5점이었고 여러 조건과 가격이 적당해서 부모님의 컨펌을 받고 예약을 했다. 네비에 주소를 찍고 무거운 마음을 잔잔한 노래 속에 감추고 출발했다. 한참을 달려 숙소 근처에 다 왔는데 네비의 안내대로 갔더니 숙소 주위만 돌고 입구가 안나오는거다. 시골 집이라 그런지 네비가 위치를 정확하게 인식 못하고 자꾸 빈 땅을 알려줘 잠깐 헤매게 되었는데, 몸이 불편한 아빠의 신경도 곤두서있는 데다가 엄마의 비평도 날이 서기 시작했다. 네비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이런 산골에 숙소가 있으면 분명 낡고 안좋을거같다는 한숨 섞인 말을 들이니 손에 땀이나기 시작했다. 들어가 보지도 않고 바로 터져나오는 부정적인 반응에 기분이 상했지만 일단 숙소를 잘 찾아 들어가는게 급하니 핸드폰 네비의 도움을 받아 입구를 제대로 찾아갔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시원하게 펼쳐진 잔디와 햇살이 비치는 황토집이 마음에 쏙 들었다. 주인 아주머니께서도 어찌나 순박하고 친절하게 안내해주시는지 그 따뜻하고 맑은 얼굴을 보면서 내 마음도 풀렸다. 숙소 내부를 둘러보시는 부모님도 만족스러운 듯 보여서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


특히 엄마랑 식당이나 숙소를 가면 이 점이 참 힘들었다. 준비는 딸인 내가 다 해야하는데 엄마는 그 정성을 보기 보다는 본인 마음에 안드는 점을 여과없이 말하고, 그러면 내 성격상 상대가 불만족스럽다는게 마음에 걸려서 그 점을 해결하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른다.

그러다 보니 부모님과 여행을 가면 쉼이 아니라 테스트를 당하는 기분인데, 이번 만족시키기 테스트에서 낙제를 받으면 어쩌나 전전긍긍하게 된다. 양평에서도 사실 건강 회복을 하는 아빠가 제일 중요했는데, 거기에 더해 엄마의 취향까지 만족시켜야 하니 두배로 힘들었다. 매번 날아오는 부정적인 코멘트에 발끈해서 화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니 한귀로 듣고 흘리려고 하지만 그게 억지로 참아지냐, 십수년간 쌓이는 똑같은 패턴에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그래서 더 이상 비평을 듣기위한 여행, 즉 내가 즐겁지 않은 여행은 되도록이면 그만 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여행은 같이 가는 사람이 99프로 영향을 끼친다. 함께하는 사람이 즐겁고 긍정적이면 어딜가도 환상적인 여행이 된다. 장소나 날씨는 두번째 문제다. 같이 가는 사람이 프로 불평러에 맞추기 힘들다면, 온 에너지가 다 빨리면서 여행이 아니라 극기 훈련이 된다. 여행을 통해 인생을 배우는데, 결국 인생도 내가 가는 길에 누구와 손잡고 함께 가느냐가 가장 중요하겠지. 어떤 인생 길이라도 온화한 미소를 가진 사람과 같이 걷는다면 그건 축복의 길일테다.


숙소의 ​탁 트인 개방감이 좋았다. 여름이었는데도 바람이 잘 통해서 에어컨도 틀지 않고 방도, 화장실도 2개씩이라서 서로 부딪히지 않고 쾌적하게 지냈다. 마당 곳곳에는 블루베리가 달려있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얼마든지 따먹어도 된다고 하셨다. 매일 한웅큼씩 블루베리를 따먹으면서 몸과 마음을 치유했다. 호박전도 구워주시고, 겉절이도 해주시고, 묵도 무쳐주시고 여러모로 사람 냄새 진하게 나던 잊지 못할 숙소다.


당시에 나는 만나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내가 부모님 걱정으로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으며 숙소를 찾았는지 등의 사정을 다 알고있었다. 누구한테도 말하지 못하는 속상함을 당시 가장 가깝고 의지하는 사람에게 털어놓았지. 하지만 나는 울고 있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일 수 있는 성격은 못되니까 최대한 덤덤한 척 말했을터이다. 심각하게 징징거리는건 딱 질색이니까. 양평에서 하루는 전화 통화를 하면서 저녁으로 이것저것 해먹고 잘 쉬었다고 하니까, " 너는 참 팔자가 좋다, 그렇게 쉬고 여행다니고 좋겠네.나는 일한다고 힘들어죽겠는데." 라고 말하는 거다. 팔자가 좋다는 말을 이런 식으로 들어본건 처음이라 벙쪘다. 그래서 별 대꾸를 안하고 다른 말로 넘겼는데 며칠 뒤 통화에서도 공기 좋은 곳에서 쉬는 내 팔자가 좋다는 말을 또 하길래 '내가 어떤 마음으로 지금 여기와있는줄 아느냐, 어떤 상황인지 뻔히 다 알면서 어떻게 팔자가 좋다는 말을 할수가 있냐'하고 따져말했다. 그랬더니 자기가 농담으로 한 말인데 왜 그렇게 받아들이냐고 하면서 어물쩡 넘어갔던 전혀 유쾌하지 않았던 대화.

그때 생각했다. 내가 잘 웃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웃음만 보고 저사람은 그저 행복한가보다, 그저 즐거운가보다 하고 표면만 보는 사람하고는 가까이 지낼 수 없다는 것을. 사람과 사람이 깊어진다는건 그사람의 웃음이나 미소 아래에 있는 마음을 읽는 것이다. 물론 표현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도 많아서 잘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일일이 말할수 없는 감정과 어려움을 헤어려주는 것, 상대의 아픔을 공감해주는것이 깊이있는 사랑에는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밝은 사람이고 또 밝은 사람이 되려고 항상 노력한다. 그렇기에 밝은 사람을 좋아한다. 그 따뜻함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밝은 사람이라고 해서 아픔이 없을까. 오히려 속으로는 더 아프고 힘들었던 사람이 더 밝게 웃을 수 있다. 웃으면 복이 온다고 믿으니까, 최대한 밝음을 유지해서 더 나아지고 싶어서 미소짓고 웃는다는 것을, 단순히 표면에 보이는 것보다 그 표면아래 발버둥을 알아주는 사람을 가까이에 두고싶다.

웃으면 복이올까? 당장에 복이 오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웃어서 손해보는 것은 없고 또 언젠간 복이 올수도 있으니까 어제도 웃고 오늘도 웃는다.

당신의 웃음 뒤에는 어떤 마음이 있나요?

마음까지 같이 웃는 날이 오길 간절히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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