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고통이라고?

by 서하

남원 실상사 앞의 어느 아늑한 카페, 나는 깊은 혼란에 빠져 있었다.

“원래 인생은 고통입니다.”

나를 공감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스님이 하시는 말씀이 아프게 다가왔다.


직장 생활 시절, 사내 불자회 총무를 맡으며 시작된 스님과의 인연은 벌써 수년째 이어지고 있었다. 월정사 템플스테이에서 만난 스님은 작은 키에 동글 동글한 얼굴과 눈망울,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맑음이 뿜어져 나오는 분이었다. 스님이라고 ‘엣헴’하고 뒷짐지며 설교를 늘어놓는 분이 아니었다. 자식을 낳고 출가하기까지, 자기 몸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듯한 세월의 통증을 숨기지 않고 보여주며 우리와 함께 눈물 흘려주시는 분이었다. 그렇게 인간적으로 깊은 존경을 가지게 된 분의 진심어린 말은 더욱 묵직하게 다가왔다.


지난 여름, 마음이 울적해 훌쩍 남원으로 스님을 찾아뵈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붙잡고 끙끙 앓던 내 속사정을 들으신 스님은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인생은 고행이에요. 부처님이 그러셨듯, 그걸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순간 나는 반문했다. “인생이 고통의 연속이라면 대체 왜 살아야 하나요? 인간이 너무 불쌍하지 않나요?” 스님은 전생부터 이어지는 인과법과 우리가 닦아나가야 할 업에 대해 말씀하셨지만, 도인이 아닌 나에게는 그저 어렵기만 한 숙제 같았다. ‘인생은 고통’이라는 생즉고(生卽苦)라는 단어는 몇 달 동안이나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도저히 동의할 수 없고 동의하기 싫었던 그 말을 화두처럼 품고 고민했다.


그리고 올해 초, 나는 비로소 그 말의 진의를 이해하게 되었다. 스님이 받아들이라고 했던 그 진리는 인생을 비관하거나 체념하라는 뜻이 아니었다.

인생은 기본적으로 고통이 맞다. 어릴 때는 성장의 통증을 겪으며 자아를 찾아내고, 이내 생존 경쟁과 의무의 틀 속에서 일상을 보낸다. 예고 없는 사고와 질병을 마주하다 결국은 죽음으로 귀결된다. 이 명제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역설적으로 거대한 해방감이 몰려왔다.

“나의 고통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착하게 살았는데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길까 하는 원망이 생길 틈이 없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생의 한 단면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말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면, 지극히 평범하고 무탈한 하루가 비로소 기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이들과 나눈 대화, 어깨춤을 추게 하는 맛있는 음식, 매출 걱정을 안해도 되는 하루. 고통이 '기본값'임을 인정하니, 그렇지 않은 모든 순간이 우주의 관용이자 특별한 행운으로 다가왔다.


타인을 보는 눈도 달라졌다. 살아내는 것 자체가 고통인 세상을 묵묵히 견뎌내는 사람들을 보며 깊은 측은지심이 들었다. 무관심한 반응 대신 따뜻한 공감의 눈을 건네게 되었다. "당신도 나처럼 애쓰고 있겠지요. 내일도 무탈하기를 빕니다"라고 마음으로 빌어주게 된 것이다.


삶이 본래 ‘공(空)’이고 ‘고(苦)’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일상의 모든 것이 덤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제대로 체화해낸 사람에게 인생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닐 것이다. 인생은 고통이라는 명제를 받아들였더니, 인생은 축복이라는 결과값이 나온 셈이다. 참으로 신기한 반전이다.


물론 나는 여전히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고, 고통 앞에서 비명을 지르는 평범한 사람이다. 하지만 '인생은 원래 고통'이라는 그 기본값을 기억하려 애쓰는 것만으로도, 나의 하루는 조금 더 너그러워지고 있다. 언젠가는, 삶이 내게 주는 덤을 온전히 누리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본다.


작가의 이전글비로소 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