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에세이집을 내겠다고 결심한 지는 벌써 5년이 넘었다. 어릴 때부터 나를 온실 밖으로 내던지며 살았기에 나름의 경험과 철학이 쌓였고, 그것을 기록하겠다는 마음은 늘 굴뚝같았다. 하지만 정작 ‘쓰기’는 삶에서 가장 뒤로 미뤄지는 숙제였다. 글을 쓰려면 필연적으로 나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심연에 눌러둔 기억과 상처를 꺼내는 작업은 고통스럽고 힘에 부쳤다. 조금 시도하다 멈추기를 반복하며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던 시간들.
그러다 작년, 나는 생애 가장 심각한 번아웃을 마주했다.
사실 상황적으로는 20대가 훨씬 힘들었다. 그때는 한 발 잘못 디디면 삶이 끝날 수 있다는 실질적인 공포가 늘 따라다녔다. 캄캄한 터널을 걷는 듯한 시간이었지만,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던 건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오로지 내 몫의 고통이니, 내가 이것만 잘 해결하면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는 희망, 그 희망을 붙잡고 수년을 버텨낸 끝에 나는 터널 끝에서 빛을 맞이했다.
내가 그토록 질기게 버틴 가장 큰 이유는 ‘뿌리’에 대한 사랑이었다. 나를 사랑하고 기대하는 이들에 대한 책임감과 애정이 내 동력이었다.
내가 사는 이유는 오로지 그들이었으니까.
그러나 작년은 인정하기 싫은 잔인한 진실을 마주하게 했다. 그 누구도, 심지어 부모라 할지라도, 자기 행복과 만족이 최우선이라는 것. ‘우리’라는 가치를 길게 보았을때 분명 그 방향이 잘못되어 배가 난파할지라도 지금의 편안함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 말이다. 내가 마지막까지 지키려 했던 사랑과 책임이 결국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음을 깨달았다. 나는 누군가의 결핍을 채워주려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후로는 의식적으로 그동안 습관이 된 내 삶의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내가 비로소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나의 조용한 이해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은 예민해지고 주장이 강해진 나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게 정상이고 그전이 비정상이었는데. 참으로 늦게 제자리로 돌아온 것뿐인데, 그것이 비난받을 일이라니 서글펐다.
내 자신보다 끔찍히 여겼던 뿌리들이, 나의 선을 지켜달라는 호소에 오히려 나를 내리쳤다.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상황 속에서 처절하게 느꼈다. 결국 나를 지키는 건 나밖에 없다는 것을. 그렇게 작년은 내가 믿어온 가치들이 무너짐과 동시에, 이제는 ‘나 자신’으로 살아야 한다는 통보를 받은 시간이었다.
삶의 이유가 통째로 사라져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순간, 그때부터 상처를 하나씩 들여다보았다. 어린아이가 어른을 이해하며 포용했던 순간들, 속으론 눈물이 나도 웃음으로 무마했던 수많은 찰나를 직면하고 흘려보냈다. 그 고독한 과정 속에서 내가 찾은 돌파구는 ‘쓰기’였다.
비로소 내 목소리가 글로 터져 나왔다. 바닥을 쳤기에 더는 두려울 것도, 잃을 것도 없었다. 내 삶을 정직하게 대면했을 때,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큰 힘이 되었다. 억눌려 있던 감정들이 글로 쏟아지며 꽉 막혀있던 둑이 터지는 기분을 느꼈다.
당장 일주일 뒤를 생각하는게 어색할 정도로 낭떠러지에 서 있는 기분이었지만, 그 위태로움이 오히려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써 내려가게 해주었다.
그동안 나는 성실하게 살아왔다.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려 늘 최고를 지향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 과정을 진심으로 즐긴 적은 없었다.
그런데 글을 쓸때 만큼은 진심으로 즐겁다는 것을 발견했다. 쓰는 순간만큼은 주변의 소음이 꺼지고, 누군가의 부정적인 감정을 살필 필요도 사라진다. 오직 나의 소리에만 집중하면 된다. 얽힌 실타래를 풀 듯 문장을 써 내려가다 보면, 서글픈 눈물이 나기도 하고 행복한 미소가 번지기도 한다.
앞으로도 나는 나 자신을 완전히 우선시하며 살지는 못할 거다. 애초에 그렇게 설계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글쓰기에서만큼은 내가 가장 우선일 것이다. 일상에서는 내 목소리를 억눌렀더라도 타자 위에서만큼은 마음껏 자유롭게 나를 표현하며 춤출 것이다.
드디어 찾았다. 내가 가장 즐기는 시간, 가장 나를 사랑해 주는 시간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