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좋아하는 내게 산과 강에서의 캠핑은 오래도록 '박제된 꿈'이었다. 혼자 가는 어색함에 자꾸 뒤로 미루던 그 꿈을, 어느 날 아주 가볍게 비틀어 생각해보았다.
"꼭 일박일 일 필요가 있나? 그냥 하루만이라도 나를 자연에 던져두는게 어떨까" 생각이 바뀌니 머뭇거림이 사라지고 발걸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내 생일에 맞춰 당일치기 캠핑을 떠나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제일 먼저 엄마, 아빠의 생일 축하 메세지가 도착해있었다. 아무리 지지고 볶고 상처를 주고 받아도, 그래도 세상에서 오직 한사람 뿐인 엄마, 아빠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참 감사하고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운 여름에 딸 낳는다고 고생했네, 우리 엄마.
전날 이모집에서 다 같이 저녁을 먹을때, 나는 생일 날 혼자 캠핑을 가보겠다고, 미역국도 알아서 잘 끓여먹을테니 걱정말라고 해둔 상태였다.
온전한 나의 날이었다, 야호.
나를 위한 미역국을 끓였다. 참기름을 고온에 볶는게 안좋다는 뉴스를 본 뒤에는 아보카도 오일로 미역과 고기를 볶다가 물을 추가하고, 거의 다 끓었을때 참기름을 한스푼 넣는다. 역시 맛있었다. 비싸게 주고 산 1등급 한우는 질겼지만, 아직 내 이는 튼튼하다.
셀프 축하를 하고 청도 운문사로 향했다. 사찰은 늘 자연의 품속에 있고, 그 정갈한 공기 속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내 안의 소음이 잦아든다. 운문사로 올라가는 소나무 숲길을 따라 20분 정도 걷다 보니, 내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괴로웠는지조차 희미해졌다. 곧게 뻗은 소나무들 사이로 전해지는 햇살이 묻는듯 했다.
"너, 그동안 너무 무거운 짐들을 지고 살지 않았니?"
법당에서 늘 하는 기도를 올렸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기를, 편안하기를, 따뜻하기를."
평범해 보이는 이 문장을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안다.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큰 고통만 없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순간이라는 것을 잘 안다. 내 안의 폭풍우를 견뎌내며 간절히 깨달은 일상의 소중함을 나와 우리가 잊지않고 지켜내기를, 부처님께 그리고 내 자신에게 간절히 기도했다.
내려오는 길, 근처 식당에서 파전 하나를 포장했다. 주인 아주머니는 깍두기와 장아찌를 챙겨주시더니, 가게 뒤편에서 갓 딴 앵두를 한 움큼 쥐여주셨다.
"약도 안친건데 달아요. 먹어봐" 예상치 못한 온기에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이 훅, 녹아내렸다. 세상은 가끔 이렇게 뜻밖의 선물로 나를 안아준다.
하류지 야영장에 자리를 잡았다. 잔잔한 물결, 산들바람, 그리고 따뜻한 파전과 앵두. 완벽한 평화였다. 내 이름을 가만히 불러보며 나지막이 생일 축하를 건넸다. 그 한마디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좌절이 아니라, 내 안의 해묵은 멍울들이 녹아 나오는 정화의 눈물이었다. 나는 참 오랫동안 ‘괜찮은 척’, ‘감사한 척’하며 나를 억눌러 왔나 보다.
수면 위에 평온하게 떠 있는 오리를 볼 때마다 동병상련의 마음이 들곤 했다. 겉으론 우아해 보여도 물 아래에선 가라앉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사투를 벌이는 존재. 지난 10년, 나 역시 그 오리처럼 보이지 않는 발길질을 하며 버텨왔다. 그 치열한 분투가 있었기에 나는 누군가의 아픔을 아는 사람이 되었고, 이제는 그 아픔을 실질적인 희망으로 바꿔주고 싶다는 '야무딱진 꿈'도 꾼다. 흉터가 많다는 건, 그만큼 남을 안아줄 품이 넓어졌다는 뜻일 테니까.
성공적인 첫 캠핑이었고, 꽤 근사한 생일이었다. 이제 나는 "외로워도 슬퍼도 안 울어"라고 다짐하지 않는다. 실컷 외로워하고 펑펑 울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툭툭 털고 일어나 미소 지을 수 있는 내가 훨씬 대견하니까. 내년 생일에는 좀 더 편하게 해줄게, 나에게 약속하며 경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