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사 솔바람길을 걷다 문득 한 구절의 글귀와 마주쳤다.
조언
내 삶이 그를 변화시키지 못했다면
내 말로는 어림없습니다.
내 삶으로 보여 줄 수 없는 일은
말로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 문장이 화살처럼 날아와 마음에 탁 하고 꽂혔다. 그동안 내가 들어왔던, 혹은 무심코 내뱉었던 수많은 '조언'의 형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한 사람이 내뱉는 조언의 무게는 그 사람의 삶의 궤적에 따라 결정된다. 스스로의 삶을 통해 올바른 가치와 신념을 묵묵히 증명해낸 시간들이 있다면, 그가 건네는 조언에는 굳이 힘을 주지 않아도 자연스레 무게가 실린다. 시끄럽게 떠들지 않아도, 자주 남발하지 않아도 괜찮다.
삶으로 증명된 이의 밀도 있는 말 한마디는 누군가의 심장에 가장 깊숙이 닿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정반대의 경우라면 어떨까. 본인이 보여주는 삶이 상대에게 전혀 존경스럽지 않다면, 승복할 만큼 감동적인 삶의 태도가 부재하다면 그 어떤 유려한 말도 '씨알'조차 먹히지 않는다. 그것은 조언이 아니라 그저 공허한 소음일 뿐이다. 그러니 타인을 붙잡고 입 아프게 떠들기 전에, 나부터 내 삶을 바꾸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순리다.
조언에 대해 읽었던 또 다른 글귀가 떠오른다. 좋은 조언과 나쁜 조언을 구분하는 가장 명확한 기준에 대하여.
“당신이 조언을 하고 속이 후련하다면 그것은 나쁜 조언입니다.
조언을 하면서 마음이 아린다면 그것은 좋은 조언입니다.”
우리 주변엔 쉴 새 없이 아는 척하며 타인의 고민에 척척박사인 양 굴어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이들을 마주할 때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알 수 없는 불편함이 올라온다. 자리를 피하고 싶어진다.
그들의 말투에는 은연중에 상대가 자신보다 낮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통달한 솔로몬인 양 쉽게 내뱉는 말들. 그것은 진정으로 상대를 걱정해서 아픈 마음에 하는 말이 아니다.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위장된 조언이자, 포장된 언어폭력일 뿐이다.
반면,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해서 그가 불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막으려 하는 조언은 다르다. 그 말을 내뱉는 본인의 마음부터가 이미 저릿하게 아픈 상태다. 상대를 향한 깊은 연민과 애정이 담긴 목소리는 당장 상대의 귀에 들리지 않을지 몰라도, 결국 그 진심의 파동은 전달된다. 이것은 저급한 소음이 아니라, 뜨거운 사랑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조언하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오를 때, 잠시 그 입을 다물고 나에게 물어봐야겠다.
내가 지금 상대의 삶의 무게를 내 것보다 가벼이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나의 선입견으로 타인의 내공과 속도를 함부로 재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말이다.
침묵 속에서 헤아림을 택한 말만이 비로소 타인의 영혼을 두드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