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한두 번, 약속을 잡거나 생일을 축하할 때만 카톡이 오가는 사이. 연락의 횟수는 뜸해도 마음만은 진하게 이어진 친구가 있다. 중학생 시절부터 서로의 가장 여린 속살을 보며 자랐기에 우리는 서로의 사정을 구태여 묻지 않는다. 둘 다 자존심이 강해 힘들 때일수록 입을 닫고 혼자만의 동굴로 침잠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묵묵히 버텨내다 어느 정도 갈무리가 된 후에야 툭 던지듯 고백하고 위로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서로를 아끼는 방식이었다.
작년에도 연말이 지나 연락하겠다던 친구의 말 뒤에 숨겨진 임용고시의 무게를 알기에, 나는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새해가 되고 입춘이 지나던 어느 날, 유독 아침부터 친구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문득 지금 연락해야겠다는 강렬한 예감이 들어 톡을 보냈다.
“유독 네 생각이 나는 날인데, 잘 지내지?”
점심시간이 지나 걸려 온 친구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덤덤했다.
“야, 너 오늘 최종 발표일인 거 알고 연락한 거야?”
“아니, 몰랐어. 오늘이야? 어떻게 됐어!!!”
“나 방금 합격 확인했어.”
순간 말문이 막혔고, 목에 무언가 뜨거운 것이 차올랐다. 고생한 당사자는 담담한데, 수화기 너머의 내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울기 시작했다. 겨우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고, 아직 엄마에게도 말 못 했다는 친구에게 얼른 소식을 전하라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나는 한참을 더 울었다.
기억 속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대학생 시절, 친구의 절망 섞인 목소리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그때 나는 일본 여행을 위해 공항으로 떠날 채비를 하던 중이었다. 곧바로 캐리어를 끌고 친구가 있는 성당 빈소로 향했다. 덩그러니 서 있다가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터뜨리던 친구의 슬픈 눈을 평생 잊지 못한다.
친구는 어릴 때부터 어른아이처럼 속 깊고 씩씩했다.
보통의 사람들은 결핍 앞에서 원망을 먼저 배운다. 부모의 부족함 때문에 내가 이토록 아프다고, 세상의 불공평함 때문에 내 기회가 박탈되었다고 끊임없이 화살을 밖으로 돌리며 자신의 현재를 정당화하곤 한다. 사실 그것이 가장 쉽고 자연스러운 방어기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가장 비좁고 가파른 길을 택했다. 자신을 아프게 한 뿌리를 오히려 깊은 사랑으로 안아버리는 것, 원망할 시간에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실력을 갈고닦는 것. 그녀는 비난 대신 인내를, 한탄 대신 책임을 선택하며 수년의 사막을 건너왔다.
주변의 누군가가 잘 풀렸다는 소식에 내 일처럼 기뻤던 적은 많다. 하지만 이번처럼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차올라 긴 울음을 터뜨린 적은 없었다. 아무런 남 탓도, 미움도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증명해 낸 한 인간의 서사가 주는 감동은 생각보다 훨씬 거대했다.
절망의 깊이를 아는 사람은 타인의 아픔을 차갑게 지나치지 못한다. 손이라도 잡고 자신의 남은 온기라도 나누려 할 것이다. 바닥을 찍어본 그녀이기에, 이제 교단에서 만날 아이들에게 그녀는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닌 삶의 지지자가 되어줄 것이다.
누군가의 성공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나이가 되었다는 건, 그 성공 뒤에 가려진 무수히 눈물 삼킨 밤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신의 삶을 묵묵히 버텨낸 끝에 얻어낸 그녀의 승리를 보며, 나는 비로소 안도한다. 고통을 대하는 고결한 태도는 결코 배신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의 삶이 증명해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