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게 최고야

by 서하

어떤 날은 유독 진이 빠지고, 어떤 날은 잔잔한 행복이 감돈다.

그 차이가 어디서 오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날 내가 어떤 존재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느냐에 따라 하루의 색깔이 극명하게 갈렸다.


나는 세상을 '귀여운 존재'와 '안 귀여운 존재'로 나눈다.

내 눈에 귀여움이란 단순히 외형의 문제가 아니다. 순수하고 따뜻한 바탕을 가진 존재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 귀엽게 느껴진다.

만나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맑고 깨끗하면 그 존재는 무조건 '귀엽다'. 그런 존재들을 많이 만난 날은 나의 럭키데이이자, 영혼이 회복되는 힐링 데이다.

반대로, 도무지 귀여운 구석이라곤 한 톨도 찾아볼 수 없는 '안 귀여운 존재'를 오래 상대해야 하는 날이면 영혼의 진이 쪽 빠져버린다.


어제는 유독 '귀여움'이 파도처럼 밀려온 날이었다.


화창한 봄날, 카페 창문을 활짝 열고 정원에 핀 꽃들을 감상했다. 사실 손님이 없으면 주인은 초조해야 마땅하지만, 이 공간이 주는 기쁨이 워낙 크다 보니 혼자 요리조리 살피며 그 귀여움을 만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작년 1월에 심어둔 알뿌리 식물들이 올라온다


그러다 마주한 첫 손님부터가 치명적으로 귀여웠다. 아빠 품에 안겨 온 아기 손님은 주문대 앞에서 나를 보며 자꾸만 방긋방긋 웃어주었다.

까꿍을 한 것도, 눈길을 끈 것도 아닌데 혼자 신이 나 방긋거리는 작은 천사. 자리에 앉아서도 어깨를 들썩이며 춤을 추는 그 작은 몸짓에 내 마음은 맥없이 녹아내렸다. 울지도 않고 조용히 미소를 발사하며 카페를 즐기다가 간다.



얼마 후엔 익숙한 강아지 손님이 안겨 들어왔다. 두 달 전에도 인형 같은 외모로 내 마음을 흔들어놓더니,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기억을 하는지 바로 배를 발라당 까며 '꼬리콥터'를 가동한다. 방긋 아기에 이어 꼬리콥터 강아지라니, 연속 치명타다. 정원의 햇살을 즐기다 간 그 하얀 뒷모습을 보며 문득 우리 초코가 생각나 마음이 찡해졌다. 귀여운 존재들은 이토록 오래도록 마음에 붙어 내 일부가 된다.


정원에서 해를 쬐고 있는데, 지나가던 한 외국인 여행객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쾌활하게 인사를 건네며 들어왔다. 에스프레소를 주문하고는 주문대에 서서 마시면서 수다를 이어간다. 이탈리아에서 온 80개국 차 여행자이자 광물 엔지니어인 그. 1년간의 세계여행 중이라는 그에겐 '당당한 밝음'이 적혀 있었다. 호주에서 고래상어와 다이빙하는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인생을 즐기는 그의 자유로움이 참 부러웠다. 며칠 뒤에는 부산에서 서울까지 자전거 여행을 할 거라면서 한국을 떠나기전 한번 더 우리 카페를 들리겠다고 하며 악수를 청한다. 카페가 너무 예쁘다며, 이탈리아 사람이 인정하는 커피 맛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우고 나가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아, 귀여운 존재가 자꾸 나타나는 하루구나.'


화룡점정은 몇년째 함께하는 단골 강아지 '달똥이'였다. 영특함이 사람 뺨치는 녀석은 눈치가 백단이다. 주인이 일할 땐 의젓하게 기다리다가도, 자기를 예뻐하는 기운을 느끼면 여지없이 꼬리콥터를 발사한다. 명절엔 설빔을, 추석엔 한복을 챙겨 입고 나타나는 그 묵직하고 포근한 존재감. 달똥이를 안고 있으면 그 따뜻함에 마음이 고요하게 가라앉는다.


퇴근길, 차 안에서 좋아하는 가수 'Matt Maltese(맷 몰티즈)'의 <Mystery>를 틀었다. 이 가수의 이름 마저 참 귀엽다, 말티즈라니.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멜로디를 들으며 하루를 갈무리했다.


나의 인생 목표는 단순하다. 귀여운 감정이 퐁퐁 솟아나게 하는 존재들을 곁에 두기. 그리고 한 톨도 귀엽지 않은 존재들은 최대한 일상에서 제거하기. 행복이란 대단한 게 아니라, 나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는 대상들과 매일을 보내는 데서 오는 것이라 믿는다.


누군가 나를 떠올릴 때, 나의 귀여움을 생각하며 미소 지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이 있을까. 반대로 누군가에게 '질리는 존재'가 되었다면, 그건 자신의 영혼이 얼마나 병들어 있는지를 돌아봐야 할 신호다.


"하나님, 부처님, 조상님!

부디 제 남은 생애는 귀여운 존재들만 가득 마주하며 살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귀여운 게 정말로다가 최고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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