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한테 해준 게 얼만데

by 서하

오랫동안 사랑해온 미드 <프렌즈(Friends)>는 내게 영어 공부 이상의 의미다. 캐릭터 하나하나가 내 친구 같았기에, 몇년 전 챈들러(매튜 페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세월의 무색함이 느껴져 슬펐다.

수많은 에피소드 중 유독 마음속에 깊이 박혀 떠나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피비와 조이가 '이기심 없는 선행(A selfless good deed)이 존재하는가'를 두고 벌이는 논쟁이다.

가볍게 웃으며 보는 코미디 드라마에서 이렇게 철학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는 게 놀라웠다. 세상에 정말 단 1%의 이기심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이타심이 존재할까?


돌이켜보면 누군가를 위해 행했다고 믿었던 일들도, 결국 내 마음이 그렇게 하는 것이 더 흡족하고 편해서 내린 선택이었다. '상대'를 위한다는 행동조차 내 관점에서 ‘이렇게 하면 좋아하겠지?‘라고 짐작한 나의 만족이었을 뿐이다. 베푸는 행위 자체가 나에게 기쁨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기에 움직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이기심'은 단순히 나만 생각한다는 뜻이 아니다. 나의 모든 이타적인 행동에 '나의 만족'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기에, 이기심 없는 선행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관점을 받아들이고 나면 신기하게도 마음속 응어리가 사라진다.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 때 내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된다.

'아, 내가 지금 이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끼고 있구나. 그 기쁨을 내가 향유하기 위해 이 행동을 선택했구나.'

내가 좋아서 선택한 행동이니 상대에게 보답을 바랄 이유가 없다. 나의 만족으로 이미 보상은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인간관계를 좀먹는 가장 무서운 말인 “내가 너한테 해준 게 얼만데"라는 생각이 씻은 듯이 사라진다.


우리는 흔히 이런 풍경을 본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너한테 이만큼 정성을 쏟았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니?" 특히 부모 자식 관계에서 이 보상 심리는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서로를 벤다. 하지만 내가 자녀에게 쏟아부은 애정과 희생 역시 결국 '나의 기쁨'이자 '나의 선택'이었음을 인정한다면,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서운함이 아니라 평온함이다.


큰 기부를 하고도 찬사 앞에 부끄러워하는 분들을 보면, 아마 이 진리를 이미 깨달은 분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신의 행위가 오직 타인을 위한 대단한 시혜가 아니라, 결국 자신의 마음이 시켜서 한 '자기만족'임을 알기에 겸손할 수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인연이 닿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지만, 동시에 늘 스스로를 경계한다.

'내가 베푼 것이 돌아오지 않을 때 서운할 것 같다면, 거기서 멈추자.'


내가 이만큼 해줬는데 상대는 왜 그러지 않느냐고 서운함을 표현하는 순간, 관계는 족쇄가 되고 마음의 짐이 된다. 가벼운 시트콤이 던져준 묵직한 가르침을 다시 새긴다.

나의 모든 호의에는 나의 만족이라는 '사의(私意)'가 들어갔으니, 오로지 너를 위해서만 했다고 상대에게 울부짖을 필요가 없다.


내가 한 희생은 결국 나의 선택이었음을 깨달으면 비로소 마음이 가벼워 질테다. 부채감이 없는 진정한 자유에 한 발 다가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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