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일을 업으로 삼다 보면, 숙명처럼 마주하는 질문이 있다.
“샘, 공부라는건 대체 왜 해야 해요?”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잠시 말을 멈춘다. 나 역시 학창 시절, 햇빛 한 줌 제대로 못 보고 교실이라는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지냈던 기억이 선명하기 때문이다.
엉덩이가 아플 정도로 앉아만 있는 그 시간이 얼마나 답답하고 막막한지 누구보다 잘 안다.
내가 그 창살 없는 감옥 같은 시간을 버텼던 건, 공부를 목표하는 낙원에 도달하는 유일한 도구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고등학생이 되면서 ‘외교관’이라는 명확한 꿈이 생겼고, 공부는 그곳으로 가는 수단이 되었기에 왜 해야 하는지를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그때와 또 너무 다르다. 클릭 한 번이면 모든 정보가 쏟아지고, AI라는 무적의 브레인이 우리 삶의 곳곳에서 도움을 준다.
"공부가 무슨 소용이에요? 챗GPT가 다 알려주는데." 이 말 앞에서 가끔은 할 말을 잃는다.
굳이 이 고생을 시켜야 할까? 하지만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여전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자"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공부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공부를 성취감을 얻는 도구로 이용하는 것이다. 성인이 되기 전, 아이들이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인정받을 수 있는 영역은 생각보다 좁다. 그중 가장 정직하고 대표적인 도전 과제가 바로 공부다. 일 년에 몇 번씩 점수라는 숫자로 결과가 매겨지는 냉정한 상황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목표한 바를 이루는 연습을 해보는 거다. 원래 60점 맞던 친구가 이번 기말고사만큼은 마음을 정하고 80점을 목표로 달려보는 것. 그 과정 끝에 목표한 점수를 받아 든 아이의 표정은 빛난다. 숫자 뒤에 숨겨진 '나도 하면 되는구나'라는 짜릿한 전율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100%를 녹여내 달성해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쌓는 도구로 공부를 이용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공부를 통해 버티는 맷집을 키우는 것이다. 솔직히 세상에 공부가 즐거운 아이가 몇이나 될까. 본능을 거스르고 풀리지 않는 문제와 씨름하는 건 고문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공부는 하기 싫어도 해낼 수 있는 ‘태도’를 기르는 중요한 연습이 된다.
나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얘들아, 어차피 중고등학교 6년은 정해진 과정대로 흘러가. 피할 수 없는 이 시간을 너희 자신에게라도 떳떳하게, 최선을 다해보는 시간으로 만들자. 즐길 수는 없을지라도 최선을 다해본다는 건 앞으로 너희의 훈장이 되어줄 거야."
하기 싫은 일을 기어코 해내는 그 '버티는 힘', 즉 맷집을 키우는 것. "나는 이 재미없는 것도 이 정도로 노력해 봤어"라고 스스로에게 떳떳해지는 경험은 참 소중하다. 이 100%의 진심을 쏟아본 친구들은 성인이 되어 어떤 풍파를 만나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공부라는 도구를 통해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웠으니까.
결국 나는 아이들이 치열한 10대의 시간을 통해 점수가 아닌, 태도를 배웠으면 좋겠다. 공부를 비단 등급으로만 바라보면 고통의 연장이겠지만,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체력을 기르는 과정이라 생각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뜨거운 100%를 쏟은 아이들의 노력이 훗날 삶을 지탱해 줄 단단한 근육이 될 거라 믿는다.
사실 이 가르침은 비단 10대의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인생을 버티는 근육을 키우는 공부라는 과정은 어른이 되고도, 평생동안 이어지는 과정일 것이다. 아이들에게 말했던 그 '맷집'을 나 또한 끊임없이 키우고 증명해내야 한다. 단단한 어른이 되어갈 나를,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