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적당량의 원두를 핸드밀에 넣어 드르륵 거리던 손잡이 소리가 촥촥착으로 변하면서 막힘없이 신나게 돌아갈 때까지 간다.
그다음엔 모카포트 하단 물탱크 안쪽 선에 맞춰 적당량의 물을 부은 후 커피 컨테이너에 잘 갈린 원두를 요령 있게 톡톡 쳐 채운다.
모카포트 상단과 하단 물탱크가 잘 맞물리도록 꽉 돌려 잠근 후 가스레인지에 불을 켠다.
가스렌인지 삼발이가 모카포트 보다 넓다 한국에서 미쳐 챙겨 오지 못한 모카포트용 삼발이를 아쉬워한다. 근처 마트에서 산 로띠구이용 그릴을 가스레인지 삼발이 위에 얹는다. 로띠 구이용 그릴은 불에 달궈지면 중앙부가 살짝 솟아오르기 때문에 모카포트의 기울기를 중간중간 체크하면서 위치는 바꿔 준다.
시간이 꽤 걸리는 작업이라 컴퓨터를 켜고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작업을 마치려면 가스레인지 양쪽에서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커피와 함께 옆 가스레지에 냄비를 올리고 우유 비닐 끝을 찢어 냄비에 액체우유를 붓는다.
네팔에서 우유 그러니까 액체우유를 구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일단 골목마다 위치한 구멍가게에서 우유를 판매하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보통 가루 우유만 판매한다.
액체우유를 구하기 위해서는 15분 정도 떨어진 큰 마트로 가야 한다.
숙소 근처 도보 10분 정도 거리에 Nina & Hager Grocer라는 마트가 있다. 깨끗하고 물건들이 잘 정돈되어 진열되어 있다.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기 때문에 값이 조금 비싸다. 그래서 주로 외국인들이 이용하는 것 같다. 아쉽게도 여기도 생우유는 없고 수입 멸균우유와 가루우유만 판다. 멸균우유는 수입이라서 값이 꽤 비싸다. 1리터에 만원 가까이한다.
좀 더 멀리 있는 마트로 간다.
다시 10분쯤을 걸어 더 큰 Bhat-Bhateni Super-Store에 왔다. 백화점이라 불리는 이곳은 우리나라 대형마트 같은 곳이다. 주로 1층엔 식료품, 그 위엔 그릇이나 문구 완구, 그 위엔 옷, 그 위엔 가전제품.. 등으로 카트만두 곳곳 지역마다 위치해 있다.
우유에 집중하자.
Ground floor로 불리는 1층 냉장고로 간다. 사람이 무척 많고 매대 사이의 길이 비좁다. 냉장고 앞으로 가니 우유 봉지가 보인다. 수량이 얼마 남지 않았다.
네팔 우유는 500ml의 비닐 팩에 담겨있다. 우리나라 삼각모양의 비닐팩에 담겨있는 커피우유와 비슷하달까? 그렇지만 그렇게 멋스러운 각이 있진 않고, 그냥 과자봉지처럼 네모난 비닐팩에 담겨 있다. 재질도 탄탄하게 각이 잡힌 커피우유처럼 두껍지가 않은.. 그냥.. 비닐팩이다.
샌 우유가 우유봉지에 묻어있다. 새지 않은 것으로 추측되는 우유팩을 찾아 더미를 이리저리 뒤져 본다.
한 팩에 50루피, 약 500원 정도이다. 지방 함유량이 높은 우유는 조금 더 비싸다. 한국 돈으로 650원쯤이다.
500ml에 500원 새지 않게 잘 포장되어 익숙한 종이곽에 담겨있는 수입 멸균 우유 사지 못하는 이유이다.
가끔은 낮에 와도 우유가 다 떨어졌을 때가 있다 진열된 우유가 떨어지면 다음날까지 기다려야 한다.
요리조리 살펴본 후 마음에 드는 우유 두 팩을 고른다.
냄비에 우유를 붓고 가장 약한 불에서 우유를 데운다.
우유를 데우는 일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일이라는 걸 네팔에 오기 전엔 몰랐다. 어떤 기술이 있어야 매번 성공할 수 있는지는 아직 터득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나마 가장 성공률이 높은 것은 약한 불로 뭉근하게 우유를 데우는 것이다.
우유를 데우면서 냄비를 중간중간 기울이며 오늘의 우유 데우기가 성공일지 가늠해 본다.
음.... 딱 보니 시작부터 글렀다. 살짝 열이 오른 우유가 덩어리 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데워진 우유의 상태를 확인하지 않고 커피에 섞어 마셨다. 시큼하면서 상한 맛이 나서 한 모금 마신 후 (웩-) 모두 쏟아 버렸다.
그다음에는 커피에 섞기 전 우유의 상태를 확인하고 실패한 우유는 싱크대에 쏟아 버렸다.
매번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우유는 괜찮고 어떤 우유느 덩어리가 된다. 그래서 우유를 살 때는 꼭 두팩을 산다.
지난번에 다른 지역에 갔다가 Big mart라는 슈퍼마켓 체인점에서 우유 두 팩을 사 온 적이 있다. 그 우유들은 두 팩 모두 성공이었다. Bhat-Bhateni에서 사 온 우유들도 세 번에 두 번은 성공이다.
뭐가 문제일까? 보관방법일까? 유통방법일까? 숙소 냉장고 탓인가?냄비의 문제일까?
네팔에 와서 커피를 만들어 마시기 시작한 지 약 한 달 정도 되었다. 거의 매일 시도하다 보니 버리는 우유 양이 많아졌다.
라떼를 마시지 못한 어느 슬픈 오전에 왜 덩어리 지고 유청이 분리되는 것인지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예전에 한국에서 우유로 리코타 치즈를 만들어 본 적이 있는데 생각보다 맛있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번거로운 과정 때문에 한번 만들고는 더 이상 만들지 않았다.
오늘도 나는 간단하게 리코타 치즈를 만들었다. 불 온도가 높아지기 시작하면 동시에 유청이 분리되기 시작한다. 식초를 넣을 필요도 오래 끓일 필요도 없다. 1분이면 완벽하게 유청이 분리된다. 살짝 레몬색으로 분리된 유청을 따라 버리고 커피 드리퍼에 덩어리 진 우유를 붓는다. 잠시 후 남은 유청이 마저 걸러지면 간단하게 리코타 치즈 완성이다.
종이필터 아래로 조르륵 떨어지는 유청을 따라 아래로 아래로 슬프게 내려앉는 입꼬리와 눈꼬리를 느낀다.
곧 근무시간이다. 컴퓨터를 켜야 한다.
아.. 부드러우면서도 쌉싸름하고 그러면서 고소한 모닝 라떼 한 잔이 너무나 마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