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순간을 함께한 영광
"선생님, 표 샀어요? 올 수 있어요?"
"열심히 새로고침 중이야. 꼭 만나야지."
평일 당일치기 강릉행 KTX 표 구하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
좌석 표를 구하려고 강릉 가기 며칠 전부터 수시로 기차표 예매 앱을 들여다보다가 결국 좌석은 구하지 못하고 짧은 좌석과 긴 입석표를 구해 강릉으로 출발했다.
전에 외국인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적이 있다.
학기마다 여러 반을 가르치며 꽤 많은 학생들을 만났고,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까지 날아와 낯선 한국어며, 한국문화에 적응하려고 눈을 반짝이던 귀여운 학생들과 많은 즐거운 추억을 남겼다.
직업을 바꾸고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면서, 전화기가 몇 번 바뀌었고, 연락처가 몇 번 바뀌었다. 다양한 방식으로 연동되어 있던 인연들의 연락처를 꽤 잃어버렸다.
강릉에서 만나기로 한 학생은 몇 안 되는 연락을 지속하고 있는 학생 중 한 명인데, 아직도 옛 선생님의 생일이며 한국의 스승의 날을 꼬박꼬박 챙겨주는 고마운 인연이다.
학생에게는 내가 한국에서 만난 첫 한국어 선생님이었는데, 한국어 공부가 어렵다며 수업 끝난 교실에 남아 자주 울던 기억이 난다. 곧 고향으로 돌아갈 것만 같았던 그 아이가 한국어 과정을 마치고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인턴생활을 하며 한국에서 살고 있다. 같은 반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던 아이들 중에서 가장 오래 한국에서 살고 있다. 지난주에 인턴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고 연락이 왔다. 처음 강릉에서 인턴생활을 하며 지내게 되었다고 연락이 왔을 때, 여행 겸 만나러 가겠다고 약속을 했었는데 귀국 날을 며칠 앞으로 남기고서야 겨우 강릉에 방문하게 되었다.
12:05 강릉에 도착했다.
'지난주에 눈이 많이 왔다더니 아직 꽤 눈이 쌓여 있네'라는 생각을 했다.
대학 다닐 때 한번 만난 적이 있으니 약 5년 만의 재회였다.
감기가 심하게 걸려 그저께 엉덩이 주사를 맞고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며 마스크 위로 반달눈을 하며 말했다. 아플 때는 몸보신을 해야 하는 거라고 '몸보신'이라는 단어를 설명하면서 역사 밖으로 나왔다. 강릉 오는 사람들은 렌터카를 많이 이용한다며, 전에 친구가 사용한 적이 있어서 앱이 있다고 렌터카로 이동하자고 했다. 한국어 설명대로 척척 따라 하며 차를 대여하는 모습을 보며 "얼~!"하고 엄지 척을 해줬다. 차량 내비게이션에 '초당순두부마을'을 검색 후 주차장이 넓어 보이는 식당 하나를 목적지로 정한 후 강릉 생초보 한 명과 강릉에 좀 살았지만 길은 잘 모른다는 외국인 한 명이 탑승한 차가 출발했다.
"이 길이 정말 맞을까?"
"길이 있으니 이 길로 안내하는 거겠지?"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길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을 가지면서도 두 초보는 착실히 앞만 보며 전진했다.
12:25 "이런 경험은 돈 주고도 못하는 거야. 와~ 우리 진짜 평생 절대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고 있는 거다. 그치? 축 처진 눈을 하고 콜록거리며 나무를 줍고 있는 곳을 향해 밝은 목소리로 세뇌를 시키고 있다.
하얀 캔버스 운동화가 진흙으로 얼룩졌고, 하얀 패딩은 차를 밀어보겠다고 호기롭게 나섰다가 흙색 얼룩이 여기저기 튀었다. 하얀 니트티를 입고 갔던 나는 산에서 주워온 나무들을 진흙과 바퀴 밑에 쑤셔 넣으며 스친 흙자국을 지우기 위해 눈을 뭉쳐 비벼대고 있다. 내비게이션은 우리를 어느 야산의 무덤들 앞을 지나는 비포장 길로 안내했고 우리가 빌린 차는 쌓인 눈이 따스한 날씨에 사르르 녹아 진흙이 된 길에 빠져 헛돌고 있다. 바퀴가 힘을 받을 수 있도록 야산을 헤집으며 물기를 덜 먹은 나뭇가지를 주워다 열심히 바퀴 밑을 쑤셔 넣었다. 한 시간이 넘게 이런저런 노력을 했지만 우리의 힘으로는 이 진흙밭을 빠져나갈 수 없음을 인정하기로 했다.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13:40이었다.
14:00 홀몸으로 나타난 서비스 직원이 여기는 레커차가 들어올 수 없다고 한다.
차가 빠져 있는 상태를 보며 "미끄러운 길 표시가 그려있는 버튼을 찾아 누르고 살짝 후진했다가 속도를 높여 빠르게 일자로 전진하라"는 코칭을 해 주었으나, 2시간 묶여 있던 진흙밭을 빠져나와 바로 앞에 놓여 있는 또 다른 진흙밭에 더 깊이 빠져버린 우리 차를 향해 멀리서 뭐라 뭐라 하고는 출동했던 직원이 홀연히 사라졌다.
14:40 고객센터에 4번째 전화를 걸고 있다.
특수서비스 신청으로 재접수된 상태이고 서비스 업체에서 언제 도착할지는 고객센터에서도 확인이 어렵다는 안내를 받았다. 돈주고도 못할 경험을 너와 내가 하고 있는 거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며 당시 같은 반이었던 학생들의 안부를 물어보았다.
15:30 오래된 갤로퍼가 나타났다. 길도 아닌데 왜 여기까지 들어왔냐는 질책이 뒤따랐다.
강릉이 처음이라 네비 찍고 '초당순두부마을'로 가는 길이었다는 변명을 작게 읊조리며 차가 끌려서 진흙밭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코란도에 타고 계시던 분 중에 한 분이 "초행길이라면 네비가 시키는 데로 따라갈 수밖에 없지" 하고는 이런 게 다 경험이라며 이렇게 운전 배우는 거라고 코란도에서 끌어 온 쇠고리를 우리 차 앞 범퍼 위쪽으로 연결하며 위로해 주셨다. 그때 저 위에서 또 다른 차 한 대가 서서히 진흙길을 내려오는 게 보였다.
'어! 또 우리 같은 관광객인가?' 싶어 '우리만 그런 게 아니었군' 하는 동질의 기쁨과, '저 차 때문에 우리 못 나가는 거 아닌가?' 하는 조바심이 들었다.
근처 어딘가의 집에서 민원 신고를 받고 전기수리를 위해 출장 나온 직원이라고 했다.
"삼촌! 길이 없는데 왜 여기까지 내려오나? 우리 여 빠져 있어 차 끌고 있는 거 안 보였나?" 하며 공평한 질책이 그쪽으로도 날아갔다.
이렇게 저렇게 해 보라는 전문가들의 지시를 따랐음에도 헛돌기만 하는 바퀴 탓에 전기기사의 차가 우리 차 보다 먼저 코란도에 끌려나갔다.
전기수리 출동차 덕분에 퍽 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 4번의 코 꿰임을 당한 후에 드디어 딱딱한 길로 들어섰다.
1시간 넘게 우릴 구출해 주시기 위해 손발에 다 진흙 묻혀가며 고생해 주신 분들에게게 연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온 사방에 마른 진흙이 딱딱하게 굳어 황토색 그러데이션 처리가 되어 있는 원래 하얀색이었던 차를 끌고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게 너무 기뻤다.
4:20 강릉역 앞에서 차를 빌린 지 4시간이 다되어 간다. 반납 시간을 1시간 연장했다.
근처에 보이는 아무 식당이나 들어갔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그 자리를 빠져나온 것에 감사하자며 늦은 점심을 먹었다.
차를 반납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서둘러 세차를 해야 했다.
우리는 덕지덕지 달라붙어 말라버린 진흙을 강력하게 벗겨내 줄 자동세차장을 찾아 강릉 거리를 헤맸다.
17:30 세차장을 찾으러 다니면서 반납 시간 30분을 연장했다.
검색을 하고 사진을 확인 후 찾아간 자동세차장들은 문을 닫았거나 손세차장이었다. 시내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자동세차장이 확실해 보이는 곳으로 찾아가 세차 중이 차 안에서 10분을 더 연장했다.
18:05 강릉역까지 10분 거리이다.
5분 남은 반납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없을 것 같다. 10분을 또 연장했다.
18:15 제시간에 차를 반납했다.
서두르면 서울행 18:20 기차를 탈 수 있었지만 이렇게 정신없이 강릉 여행을 마치고 싶지 않아서 다음 기차를 타기로 했다. 어차피 표는 다 입석이다.
저녁 7시에 송별회가 있다는 아이는 진흙 묻은 신발과 패딩을 갈아입으러 집에 가야 했다. 마음을 가라앉힐 겸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의 집 앞까지 함께 걸었다. 웃픈 강릉에서의 잊지 못할 경험을 마지막으로 언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는 아쉬운 작별인사를 했다.
문이 닫힌 상점이 많아 컴컴한 대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서 강릉역으로 돌아왔다. 입석으로 1시간 40분을 가야 하니 출반시간까지 전까지 한 시간은 그냥 앉아 쉬기로 했다. 긴장이 풀리고 피로가 몰려왔다.
20:30 KTX가 서서히 출발한다. 웃픈 첫 강릉 여행이 끝났다.
강릉으로 올 때 봤던 KTX 잡지에 강릉이 소개되어 있었다.
초당순두부마을에서 몽글몽글한 순두부나 공항대교 건너편에 몰려있다는 식당가에서 감자적 또는 감자 옹심이, 혹시 날이 너무 춥지 않으면 물회도 먹고 싶었다. 아니면 보양식으로 한우도 좋았을 건데. 식후에는 명주동&교동 골목을 구경하고 바다가 보이는 커피 맛집에서 대화를 나누고, 바닷길을 산책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기차 타기 전에는 전통시장에서 강릉에서 유명한 것들을 신중하게 선별해 사 오려고 했다.
만나려던 사람 무사히 잘 만났고, 맛집은 아니지만 그래도 순두부 들어간 찌개를 먹었고, 선택의 폭은 적었지만 강릉역에서 파는 강릉을 대표이라는 빵을 하나 샀다. 결과만 보면 대충 할 건 다 했다.
다만, 진흙에 빠져 헛돌기만 하던 바퀴가 어느 힘들 날엔 악몽이 되어 꿈에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도착 후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카톡을 받았다.
당황스러운 상황을 안심시키려 몇 번이나 반복했던 말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한 사람의 인생 어느 한 특별한 처음과 끝을 함께 할 수 있다니 오히려 내가 감사하고 영광이다.
좋은 사람과 특별한 마지막 추억을 남겼다.
강릉과 나의 추억은 다음 기회에 새롭게 다시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