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으면 더 서러운 거야. 설령 잘못했어도, 내 편이 되어줘야지. 가족이잖아."
말이 온몸을 관통한다. 단순히 바라보는 관점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사소한 것 하나에도 불씨가 쉽게 붙었던 우리 사이에는 다른 무엇도 아닌 '내 편'이라는 게 필요했을까. 내가 그토록 원했던 내 편이라는 느낌을 엄마도 간절히 원하고 있던 걸까.
결핍을 채우고 싶어 방황하던 때가 있었다. 멋대로 사람이라는 우물을 지정해 놓고, 사랑에 대한 갈증을 해결하려고 했다. 하지만 우물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순식간에 말라갔다. 이런 상태에서 나의 목마름은 채워질 리가 없었다. 섣불리 마음을 쏟은 대가가 처참하게 돌아오기를 반복할 뿐. 결국 어리석은 사랑만 되풀이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워지고 말았다. 그때는 그랬다. 마음 한가운데 뚫린 구멍을 어떻게 메꿔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렇게 갈급함 뿐이었던 어린 내가 언젠가 용기를 냈다.
조심스레 병원 문을 열었다. 진료 전, 다량으로 받은 검사지에는 완성되지 않은 문장이 여럿 적혀있었다. 괄호 안에 개인의 생각을 채워 하나의 문장으로 완성해야 했다. 수많은 목록 중, 지금까지 기억나는 건 단 하나.
'엄마는 [ 나를 모른다. ]'
마지막에 적은, 가장 짧은 문장이었다.
엄마는 평생 일을 해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부터는 옷 장사를 시작했다. 아빠는 과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엄마가 대단하다고 말하고는 했었다. 매일 새벽마다 동대문에 가서 자기 몸만 한 옷들을 이고 왔다고. 아빠가 사고를 당해 오랫동안 병원에 누워 있을 때도 엄마의 시간은 멈추는 법이 없었단다. 하루 종일 고생하며 장사를 했으면 피곤했을 법도 한데, 밤늦게 가게 문을 닫고 매일 아빠를 보러 왔다고. 그리고 다시 새벽 첫차를 타고 일터로 향했다던 엄마를 나는 상상할 수 없었다. 놀랍게도 엄마를 무정하다고만 생각했던 지난날이어서. 그러니 조금 잠잠해진 오늘날, 이제야 궁금해졌다. 그 시절, 엄마에게 새벽은 어떤 의미였을지.
엄마는 술을 잘 마시지 못했다. 어릴 적, 그런 엄마가 가끔 주량을 넘기고 들어오기라도 하면 나의 마음은 요동쳤다. 잠시 방으로 들어가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에 잠자코 숨을 죽이고 있는데 눈물이 나왔다. 왜 우냐는 언니의 말에 그저 조용히.
"그냥···. 모르겠어. 엄마가 얼마나 힘들면 그럴까?"
묵묵히 엄마가 안쓰러웠던 나인데. 갈수록 이보다 높아진 건 그 어떤 것도 아닌 서운함. 서운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 못 할 그리움. 그리움은 점차 공격이 되어갔다. 서로가 서로를 아쉬워하는 소리가 끝없이 미웠다. 나를 지키고 싶어서, 사랑하는 대상을 비판하고 눈물짓게 만드는 건 습관이 됐다.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 소홀함을 넣었다.
그러니 홀가분할 수 없었다. 작은 속눈썹 하나가 눈을 마구 찌르는 것처럼, 가볍게 뱉은 말 몇 마디가 내내 마음을 따갑게 한 것이다. 나는 다시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 무거움을 얹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서로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을 실천하고 있었다. 각자의 희생을 감당하고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나를 자라나게 했던 그 희생을 내가 할 차례가 되었을 때, 아픔이 되어 돌아올까 봐. 그럼에도 서툴러 사랑하는 존재를 아프게 할까 봐. 기어코 스스로가 만든 짐을 지고 있다 보면 나는 모순된 사람이 됐다. 사랑을 받기는 원하면서도, 사랑을 주는 것에는 겁이 나게끔. 사랑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에 어울리지 않는 고집을 부리게끔.
이제 엄마를 향한 상자 안에는 나도 모르는 돌들이 한가득 쌓여있게 됐다. 늘 먹고사는 게 고민이 되었던 당신에게 좋은 것 하나 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쏘아대지는 않을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 항상 자존심이라는 가면을 썼다. 지금 이 시기에서 내가 배우고 있는 건 기다림일 거라고, 나를 다독이는 게 꼭 핑계가 아닌가 싶어 탓하던 참이다. 빨리 출세하라는 말에 괜한 소리를 친 건, 그러고 나서 곧장 후회를 한 건 겹겹이 쌓인 돌 중 일부다. 내가 만든 돌의 일부.
어느새 내 가슴에 박혀있는 돌이 우선이 됐다.
"그 사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말해봐. 네가 생각했을 때도 엄마가 잘못했어?"
돌이 쌓이면 비좁아진다.
"엄마, 그래서 내가 뭘 해주길 바라는데? 공감해 주길 바라는 거야?"
틈이 없는 마음은 따듯하지 않았다.
"엄마 편이 없네, 내 편이 없어···."
차디찼다.
"왜 헤어지자고 했어?"
꽤 오래전, 처음으로 이별을 고한 적이 있다. 착한 사람이 되고 싶던 나에게 이별은 어려운 선택이었다. 왜 헤어지냐고 물었던 사람에게 나는 나도 몰랐던 감정 하나를 툭 내뱉었다.
"내 편이 아닌 것 같아서."
내 편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이, 그 기분이 사람을 이렇게 아프게 할 줄은 몰랐다. 사랑이 기반이 되는 관계에서 내 편이라는 느낌은 나에게 이리도 중요한 것이었는데. 그랬는데, 이 말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되돌려 받은 기분은 묘하다.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듯한 그 분통함을 나도 누군가에게 쥐여주게 된 걸까.
며칠 전에는 할머니가 새 신발을 사 왔다. 그런데 2번 정도 신고나니 발이 너무 아프다는 거다. 이미 신었는데, 영수증도 없는데 어쩔 수 없다는 모두의 만류에도 할머니는 신발을 들고 다시 가게를 찾아갔다. 단번에 안된다는 거절을 받은 할머니가 눈에 밟혔는지, 엄마는 가게에 직접 전화를 걸었다.
"내가 꾹 참고 통화했어. 태도가 너무 아니잖아. 할머니 무시하는 거지 그거."
"엄마, 엄마도 옷 실컷 입고 반품했던 사람들 힘들어했잖아. 근데 이렇게까지 해야 해?"
"그건 한 달 지나서 세탁까지 하고 돌려준 사람들이고. 할머니 신발은 봐, 깨끗하잖아. 할머니가 얼마나 속상하겠어?"
엄마는 결혼한 이후 줄곧 할머니와 살았다. 엄마로서는 시어머니와 30년 이상을 함께 한 것이다. 몇 년 전에는 사소한 다툼 하나로 서로를 피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도 엄마는 할머니가 좋아하는 과일을 꼭 챙기고는 했다. 밤늦게 들어오는 엄마가 밥은 먹었는지, 반찬이 없는데 어떡하냐는 걱정도 변하지 않던 할머니다. 그렇게 알 수 없이 빙빙 돌던 마음은 어느 날 나눈 대화 몇 마디로 금세 풀렸다. 우연히 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마주친 엄마와 할머니가 나눈 단 몇 마디. 그 몇 초 간의 용기가 다시 온전한 사랑을 나누게 했다.
"나이 먹으면 더 서러운 거야. 설령 잘못했어도, 내 편이 되어줘야지. 가족이잖아."
잊고 있던 단순한 바람 하나가 떠올랐다.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내 편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 원칙과 옳고 그름을 그리도 지겨워하던 나를 움직였던 마음.
사소하다고 넘겨버릴 일은 어떤 것도 없는 듯했다. 가까운 사이라면 더욱이. 지나 보면 그럴 수 있는 일 안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마음을 애태웠다. 대체할 수도, 끊어낼 수도 없는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서. 그럼에도 나름대로 함께 있다는 사실에 다시 위안을 받는다. 별것 아닌 순간에서 하나가 된다. 사랑은 소리 소문 없이 넌지시 던져지기도 하나보다. 신발장 정리를 하며 아무 말 없이 풀린 운동화 끈을 묶어주는 아빠처럼. 겨울 잠옷만 입는 나를 지켜보다가, 아무 말 없이 여름 잠옷을 사 온 엄마처럼.
결국엔 가장 바랐던 사랑을 되찾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