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돌보지 않으면 내 속에 어떤 생각이 잠입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구별하지 않으면 삼켜진 감정의 단 한 면만을 바라보게 된다.
나를 들여다보는 것도 노력이 필요한 거였다.
높은 가림막으로 둘러싸인 공터, 넓고 깊은 바다 한가운데. 이런 곳이 무섭다. 마치 홀로 서 있는 나를 잡아먹을 듯한 기분- 그런 광활함이 공포로 다가왔다. 이와 비슷한 느낌은 평범한 일상을 보낼 때도 문득 올라오곤 했다. 단순히 외로울 때.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때로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 내 속은 고요해졌다. 하루 끝에서 던지는 질문이 의문이 될 때 나는 아무도 없는 바다로 나를 끌고 갔다. 마음 안에서 거세게 치는 파도는 소리가 없었다.
외로움에 집중하게 되면 착각하기 쉽다. 내 곁에 있는 사랑이 없었던 것처럼,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던 것처럼 동굴 아래 나를 가둔다. 세월이 흐를수록 이 점은 족쇄가 됐다. 스스로 두 발을 채웠다. 근래 나는 뒤로 물러서기만을 하고 있었다. 지독한 물러서기만을.
만남이 서툴다. 어느 곳에서, 어떤 위치로 있든 관계를 이어가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했다. 안타깝게도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평가될지 신경 쓰는 일이 펴지 못한 몸을 더욱 꾸깃꾸깃하게 했다. 그 상태가 반복되니 내 주변에 누구도 넘어서지 못할 선이 그어졌다. 상처받지 않기 위한 적당함이라는 선. 진짜 문제는 어긋난 마음이었다. 가끔 선 밖이 궁금한 날이 온다. 계속 숨기만 하면 다치지 않을 것 같은데, 이대로 아무도 남아있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염려가 슬금슬금 올라오는 것이다. 전혀 다른 두 자아는 상반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있잖아, 요즘…."
언젠가 답답한 나의 족쇄를 내려놓고도 싶었지만,
"응, 요즘?"
"......."
그러지 못했다. '너무 힘든 것 같아.' 속에서 끓는 말을 뱉지 않아 정적이 맴돌 뿐. 끝내 하지 못한 말이 신경 쓰였는지 상대방이 사진 몇 장을 보내왔다.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AI와 나눈 대화. 이렇게라도 말하면 막혔던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며. 놀라우리만큼 사람 말투를 쓰고, 공감해 주는 AI에게 우리는 선뜻 마음을 꺼내놓게 된 것 같았다.
마음도 흉내 낼 수 있는 세상이 온 걸까.
너무도 빨리 변해가는 사회 안에서 내가 붙잡고 있는 것들이 떠올랐다. 어쩌면 쉽게 잊혀 가는 것. 어떻게 보면 내 안의 어긋난 마음으로부터 출발한 애정. 글이 더 소중하게 다가온 건 매번 도망치던 내가 조금이나마 솔직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혼자 교실에 남아 책 한 권을 읽었던 그날처럼. 사라지지 않고, 변하지 않는 글이라는 매개체가 나도 모르는 나를 만나게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친구가 없었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나를 딱히 좋아하는 것 같지 않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런지 다들 밖으로 나가는 점심시간이 오면 책장 앞에 서서 아무 책이나 고르고는 했다. 외로움으로부터 시작된 도피였다. 이는 내게 전혀 다른 감정을 선물해줬다. 나를 몰아붙이던 단 하나의 감정이 쪼개고 쪼개져 재미가 되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하는 그런 날. 그런 시간을 사랑하게 해준 것이다. 단순히 뱉은 말 한마디가 얼마든지 나를 규정할 수 있다면, 글은 그 반대였다.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 것들을 곱씹고 녹여내 진심을 만들고 싶었다. 낯선 사랑이 될 수도, 숨겨둔 고백이 될 수도, 희망이 될 수도 있는 형태들을. 이내 입술보다도 손을 통해 드러나는 게 편해져 버린 마음이었다.
그래서 결국은 나만의 방이 생겼다. 자신을 가두기도, 열중하게도 하는 이 방 안에서 나는 또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아늑하고도 버겁게 느껴지는 이 세계에 변함없이 여러 감정이 물밀듯 치고 들어온다. 그런 혼란 속에서 나는 여전히 도피한다. 가장 편안하고 안락한 곳으로. 글 너머 기록된 누군가의 방으로. 그와 같은 정적인 세상에 무한한 사랑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완벽한 타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그들이 때로 나의 방을 가득 채워주어서. 그러니 이토록 겁 많은 내가 사랑을 쓰고 싶은 건, 사랑을 받아서일 거다.
마음도 흉내 낼 수 있는 세상이 온 걸까.
설령 그렇다고 해도 마음을 가진 이를 없앨 수는 없다.
언제나 나를 다독여주는
마음을 가진 이들이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