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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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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규 May 30. 2019

매매할 것인가 투자할 것인가

본업이 있다면 매매가 아닌 투자를 할 수밖에 없다.

주식에 입문하면 매매(trade)할 것이냐 투자(invest)할 것이냐 선택해야 한다.

시중에는 '주식투자'라는 제목과 달리 내용은 '주식매매'를 가르치는 책들이 상당히 많다.

농산물 공판장에서 그날그날 물건을 떼어다가 트럭에 싣고 다니며 파는 야채 과일장사처럼 매일 주식을 싸게 사서 비싸게 넘기는 장사 스타일을 주식투자라고 부르고 있다.


장사와 사업의 차이가 무엇일까?

가장 큰 차이는 '시스템의 유무'가 아닐까 생각한다.

친구 중에 사장 친구가 몇 명 있다.

그중 한 친구는 시간 여유가 있어 보인다.

주중 낮시간에도 사적인 일을 볼 수 있을 정도다.

그 친구의 사업체는 사장이 잠시 자리를 비워도 운영이 된다는 뜻이다.

물론 중요한 의사결정은 당연히 사장이 하겠지만 평상시 일상적인 업무처리는 직원들이 다 알아서 할 것이다.

장사의 대표주자인 시장 상인은 어떨까?

버스를 이용한 날 집으로 걸어오려면 기다란 시장통을 지나야 한다.

양쪽의 상인들이 손님에게 물건을 파는 모습을 종종 본다.

어느 가게에는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 있는 곳도 있다.

만약 그 가게의 주인이 없다면 손님도 없을 것이고 주인이 매일 자리를 비운다면 가게는 결국 망하고 말 것이다.

사장이 없어도 사업체가 잘 굴러가면 사업이라고 하고 그렇지 못하면 장사라고 나는 분류한다.


주식투자에도 장사 스타일이 있고 사업 스타일이 있다.

트레이딩이라 부르는 주식매매는 거래의 시작부터 끝까지 투자자가 관여해야만 한다.

기계에 맡겨놓고 사업처럼 운용하는 시스템 트레이딩이나 알고리즘 트레이딩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다.

주식거래 과정을 나름의 거래규칙(알고리즘)에 따라 프로그래밍해 두고 미리 입력한 조건에 맞는 순간 기계가 자동으로 거래를 일으킨다.

하지만 시스템 트레이딩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구비하고 알고리즘 셋팅까지 해서 매매 운용을 하는 개인투자자는 흔치 않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시세를 지켜보다가 수동으로 매매주문을 내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장중에 거래할 주식을 고르고 시세를 지켜보려면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

만약 그가 직장인이라면 당연히 자신이 맡은 업무에 집중하지 못할 것이다.


사업 스타일의 주식투자는 어떤 걸까?

삼성전자, NAVER, 농심 주식에 투자금을 동일한 비중으로 나눠 샀다고 가정해 보자.

투자자는 이 세 기업의 경영자와 임직원을 고용한 셈이다.

각 회사 경영자와 임직원이 열심히 일해서 주주에게 매년 배당금을 벌어준다.

주주는 기업에 자금만 넣어두고 자신의 본업이나 다른 일에 몰두할 수 있다.

주식으로 수익을 내기 위해 내가 근로를 해야 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주식매매와 주식투자를 구분해 본다.

바로 가든 둘러 가든 주식 사고팔아 차익 잘 내면 되지 굳이 매매와 투자를 구분하려는 이유가 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절대로 매매를 해서는 안될 사람들조차 무심코 매매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매매와 투자는 주식을 대하는 마인드부터 진행 절차와 결과 분석까지 완전히 다르다.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삶의 스타일도 극명하게 갈라진다.




매매는 주가의 추세를 쫓아 사고파는 '추세매매'의 형태가 주를 이루고 투자는 주식의 내재가치와 시장 가격의 차이를 따지기에 대체로 '가치투자'로 불린다.

추세매매는 차트를 보며 주가의 진행방향을 맞히는 머니게임의 양상이고, 가치투자는 기업 경영자와 한동안 같은 배를 타고 가는 동업 관계로 볼 수 있다.

추세매매는 차트와 몇 가지 보조지표만 보고 주가의 향방을 맞히는 거라 조금만 숙달하면 잘할 것 같고 쉬워 보인다.

여러 가지 보조지표들이 많지만 대부분 어느 선이 다른 선을 위로 넘으면 매수하고 아래로 넘으면 매도하면 되니 매매 규칙도 명료해 보인다.


반면 가치투자라는 것은 숫자가 어지러이 널린 재무제표를 비롯해 글자가 빼곡히 들어찬 사업보고서와 애널리스트 리포트를 챙겨봐야 하고, 뉴스와 공시도 찾아봐야 하는 등 과정이 번거롭고 복잡하다.

적정주가라는 것도 대략적으로 산정될 뿐이라 대부분의 개인투자자들은 가치투자 쪽으로는 쉽게 마음이  기울지 않는 게 사실이다.

기업가치와 실제 주가가 단기적으로는 동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도 가치투자를 어렵게 한다.

결국 개인투자자 대부분은 두루뭉술하고 어려운 가치투자보다 차트만으로도 매매타이밍을 명료하게 짚어볼 수 있는 매매 쪽을 택하게 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매매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가치투자는 점점 쉬워진다.

차트를 보고 가격을 점치는 것은 오랜 세월을 들여 '감'과 '촉'이 생길 때까지 숙달해야 하는 반면 가치투자는 한번 익히면 시간이 흐를수록 의사결정 과정이 점점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매매는 시장 상황과 자신의 컨디션에 따라 수익률의 기복이 심하지만 투자는 과정이 올바르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꾸준하게 수익을 쌓아갈 수 있게 된다.

매매는 주식시장이 개장되어 있는 동안 하루의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기 때문에 거의 근로소득에 가깝고, 투자는 자신의 사업장을 돌아보듯 많아야 주말에 한 번쯤 포트폴리오를 점검해 주면 되기 때문에 사업소득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투자보다는 트레이딩이 딱 체질에 맞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지난날의 나 역시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해 왔었으니까.

하지만 주식 매매의 길은 컴퓨터가 유리한 게임으로 빠르게 변모해 가고, 거대 기관들에 비해 정보력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는 개인투자자들은 해가 갈수록 점점 더 가시밭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높다.

급속히 진화해 가는 인공지능과 로봇 트레이더들이 주식시장에 진출하며 손쓸 틈 없는 돌발상황도  더욱 증가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차트를 보고 도가 트이는 경지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흐를지 알 수 없다.

반면 가치투자는 빨리 배우면 1~2년 안에 익숙하게 구사할 수도 있다.

매매는 입학은 쉽고 졸업은 지극히 어렵지만, 투자는 입학은 좀 어려워도 반드시 졸업을 할 수 있는 셈이다.


어쩌면 투자할 것이냐 매매할 것이냐의 결정기준은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상황일 수도 있다.

본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매매는 절대 불리하다. 자칫 본업도 잃고 돈도 잃고 사람도 잃고 인생도 잃는다.

자신의 직업을 따로 가진 사람이라면 반드시 매매가 아닌 투자를 해야만 그 모두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동일비중 포트폴리오 전략으로 가치투자하라'에 실린 내용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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