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처럼 퇴근.
딸에게서 메세지가 도착해있었다.
“엄마, 집 도착하셨어요? 안방 화장대 서랍 안에 편지 있어요. 읽어주세요.”
어버이날도 아닌데 왠 편지지?
그저 간단한 이야기겠거니 했던 마음으로
조심스레 화장대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는 봉투도 없이,
두 번 접혀진 평범한 편지가 놓여 있었다.
내가 예상했던 내용과는 달리
자퇴하고 싶다고 시작한 내용은 편지를 읽어 내려갈수록
조금씩, 그리고 깊게 무너져 내렸다.
처음엔 사춘기 특유의 감정 기복이라 여겼다.
‘또 감정에 휘둘려서 쓰는 글이겠지.’
‘또 시작이네…’
칭얼거림처럼 넘기려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딸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학교라는 공간이 숨이 막히게 느껴졌고,
하루하루가 버거웠다고.
예전에 살던 집 근처 육교 위에 서서
“이대로 끝낼까…” 생각한 적도 있었고,
최근 이사 온 집에선
방 창문 위에 올라섰던 날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이어진, 여러 번의 자해 시도.
팔뚝에 있던 수상한 상처들.
예전부터 몇 번 본 적 있었지만
아이는 “긁혔다”, “넘어졌다”고 말했다.
나는 무심하게 믿었다.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무심하게, 무감하게 지나쳐왔다.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
친구들과의 거리감,
조용히 보였던 아이의 그 모든 신호들을
나는 ‘애써’ 아니라고 생각하며 외면했다.
편지 끝의 절박한 외침
“엄마, 제발 도와주세요.”
그 문장은 단순한 감정의 고백이 아니었다.
삶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 아이의 구조 요청이었다.
이번만큼은
늘 하던 ‘엄마’의 말투가 아닌,
그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 아이의 시선에서 이해하고 싶었다.
나는 다짐했다.
이 아이를 다시 붙잡아야겠다고.
다시는 혼자 버티게 하지 않겠다고.
휴대폰을 손에 쥐고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딸, 정말 많이 힘들었구나…
엄마가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