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소리에 안도하는 아침

by 슬로우

"엄마, 제발 도와주세요."

절박한 편지를 읽은 그날 저녁,

나는 어머님을 조용히 거실에 앉혀 말씀을 드렸다. 회사에 있는 남편에게는 딸의 편지를 사진을 찍어 보내며 상황을 전했다.

예상은 했지만, 돌아온 반응은 역시나 현실적이었다.

“공부는 그럼 어떻게 하려고?”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데 자퇴를 해?”

너무 갑작스러워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지금 이 시기에 자퇴라니.. 인생은 어떻게 될까?’ 밀려드는 현실적인 걱정에 머릿속이 더욱 복잡했으니까


딸은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한 달간 기숙학원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아이에게

처음으로 ‘자신감’을 가지게 된 값진 경험들이었다.

“혼나면서도, 내가 달라지는 게 보여서 뿌듯했어요.”
“질문하러 가는 길도 하나도 안 떨렸어요.”
“엄마, 집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행복했어요.”

그 말들을 전하던 아이의 얼굴은

정말 오랜만에 빛나고 있었다.


그랬던 아이가, 지금은 자퇴를 이야기하고 있다니 믿기 힘들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

‘나도 서울대 엄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은근한 바람이 아이보다 앞서였을까.


분명한 건, 입학과 동시에 무너짐이 가속화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비극적인 결말을 떠올릴 만큼

위태로운 상태였다.


나는 더 이상

같은 잣대로 이 아이를 설득해서는 안 된다는 걸 누구보다 먼저, 내가 깨달았다.

내 마음에는 단 하나의 생각만 또렷하게 자리 잡았다.

“내 아이를 지켜야 한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모든 선택의 순간으로 돌아가
한 번 더 들어보고

한 걸음 앞서 있으려 하기보다,

항상 한 걸음 물러서서 그 자리에 있어줄 걸이란 후회가 든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였기에

나는 아이에게 더 높고, 더 단단하고, 무섭기까지 한 벽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이에게는 감히 넘을 수 없는 너무도 큰 벽.

그래서일까..

자퇴. 자해, 자살시도

내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

상상조차 해본 적 없던 선택을 내 딸은 이미 감행하고 있었다.

아이의 인생이 정말 끝나버릴까 봐 겁이 났다. 아이를 잃게 될까 봐 무서웠다.

이 생각이 밀려올 때마다 후회는 거센 파도처럼 가슴을 덮쳐왔다.


그러면서도 머릿속 한편에서는

‘자퇴하면, 앞으로 인생은 어떻게 살지?’
‘이 선택이 아이 인생을 망치는 건 아닐까?’ 현실적인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모든 걱정의 끝에는,
‘내가 잠든 사이, 아이가 창문을 뛰어내리는 건 아닐까…’
하는 공포가 자리하고 있었다.


걱정과 근심, 그리고 모든 두려움이
머릿속을 끝없이 휘감았다.

그 두려움은 밤이 깊어질수록 더 커졌고,
밤잠은 점점 얕아져만 갔다.


그렇게 나는 매일 아침 출근 전,
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를 살피듯, 숨소리를 확인하고, 숨소리를 듣고 나서야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딸의 숨소리는, 마치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기쁜 종소리였다.


오늘도 있어줘서 고마워.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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