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과의 상담에서, 자퇴를 서두르기보다
‘자퇴숙려제’를 통해 한 달의 시간을 갖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 사이 아이의 마음이 바뀔 수도 있고, 우리 모두가 조금 더 준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자퇴숙려제'라는 제도는 이미 마음을 굳힌 아이에게 실질적인 의미가 없었다. 심지어 학교 안에서 진행되기에, 친구들의 시선은 오히려 또 다른 부담이 되었고 그 어떤 프로그램에도 마음을 열기 어려웠다. 교외 프로그램 역시 담임선생님이 동반해야 하는 일정들이여서 아이가 느끼기엔 '자유로운 체험'이 아닌 또 다른 감시의 연장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프로그램의 내용도 아쉬움이 컸다. 같이 독서하기, 같이 영화보기... 아주 허술하고 형식적인 구성이었다.
<자퇴숙려제란>
- 대상: 자퇴 의사를 밝힌 초·중·고 학생, 학업중단 위기 학생, 무단결석이 많은 학생
- 기간: 최소 2주(14일)~최대 7주(49일)까지 학교장이 정함
- 진행: 담임교사나 전문상담교사와 면담, 외부 전문기관 연계 상담, 진로적성 프로그램이 이뤄진다.
학교 프로그램과는 별개로 나는 딸과 함께
교내 상담실, 인근 심리상담센터, 정신과까지—
추천받은 곳들을 모두 찾아가 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상담은 아이에게 ‘도움’이라기보다,
또 다른 ‘견뎌야 할 일’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아이는 말없이 따라나섰지만,
표정은 굳어 있었고 '대체 왜 해야해요?'라는 일관된 태도.
어느 곳은 시설이 너무 낡았고,
어느 곳은 오피스텔 안에 마련된 상담 공간이라며
신뢰를 보이지 않았다.
상담센터를 바꿔보자는 내 제안에도
아이는 점점 더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고,
결국 ‘상담’이라는 시도 자체를 거부하게 되었다.
그 무렵부터, 아이는 새로 사준 PC 앞에 앉아 밤을 새우기 시작했다.
밤낮은 뒤바뀌고, 밥은 거르고,게임 속에서만 살아 있는 듯한 날들이 이어졌다.
나는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잠든 뒤 책상을 정리하다가 모니터에 열려 있던 메신저 창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어차피 죽을 건데 의미 있나?”
“죽을 생각하니 존나 무서워.”
그 말을 보는 순간,
몸이 굳고 손이 떨렸다.
나는 분명, 이 아이를 지켜주겠다고 다짐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 나는, 이 아이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딸을 ‘아픈 아이’라 여기는 마음으로
현실을 받아들이려 애썼다.
아이의 기분에 맞춰준다는 이유로
사실은, 그 마음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눈치만 보며 피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같은 집 안에 있었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닿지 못한 채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렇게, 또 어느 새벽처럼—
출근길에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불빛과
타닥타닥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조용히 현관문을 닫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
<자퇴숙려제>
다시 강조하지만, 자퇴숙려제는 이미 자퇴하기로 마음을 먹은 딸에게는 의미없는 제도였다. 심지어 교내에서 이뤄지기때문에 친구들의 시선의식에 더욱 참여하기 어려운 제도다. 학교에서 마련된 프로그램역시 초등학생을 위한 프로그램보다도 못하다. 선생님과 영화보기라니.... 형식적일 수 밖에 없다.
<기관의 한계>
정신과 진료 결과, 아이는 극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약물치료에 대해 강하게 거부감을 드러냈다. 심리상담도 병행했지만, 솔직히 말해 나조차도 '이게 정말 아이에게 깊이 닿고 있는 걸까' 의문이 들 정도로 표면적인 수준에 머무르는 상담들이 많았다. 지금 돌아보면, 바뀌어야 했던 건 상담 환경보다 바로 나, 부모였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혹시 누군가에게는 필요할 정보일거라 남겨본다.
- 아주심리상담센터 031-2191-721
- 심리상담센터WE 010-2463-6173
- (미금역)민트 서난희 선생님 010-5524-6712
- 길인지 상담센터 010-4284-7975
- 리지정신건강의학과의원 031-548-0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