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 이해해 줘야 하는
생계형 디자인 1

주일 예배가 업무의 연장이 될 줄이야

by Slowwalk

※ 특정 종교를 비판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다만, 월급쟁이 디자이너가 겪은 웃지 못할

'생존기'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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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유독 무속인 지인이 많으셨습니다.

그 덕에 무당 이모 집에서 한 계절을 나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주일 학교에서 나눠주는

과자가 좋아 교회를 기웃거렸고 초등학교 때는

절친을 따라 절에 가서 합장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말하자면 저는 모태 신앙은 없어도, '모태 종교 친화력'은

타고난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이 재능(?)을 밥벌이에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지원 자격: 매주 주일 예배 참여 가능자>


전시와 굿즈 제작을 주로 하는 에이전시였습니다.

디자인 직무에 목마르던 제 눈에 '예배 필참'이라는 조건은

흐린 눈으로 넘길 수 있는 사소한 장애물처럼 보였습니다.

'나름 교회도 다녀봤고 교회식 세례도 받았으니 할 수 있어!'

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지원서를 넣었습니다.

그것이 '주 6일 근무'의 서막인 줄도 모르고 말입니다.


일요일마다 왕복 2시간 버스를 타고 가서,

예배와 식사 교제까지 장장 5시간을 교회에

쏟아부어야 했습니다.

남들에겐 은혜로운 안식일이었겠지만,

저에게는 명백한 '무급 연장 근무'였습니다.

주님을 향한 찬양보다는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마음의 소리가 더 크게 울려 퍼지곤 했습니다.


그래도 몸이 힘든 건 참을 만했습니다.

진짜 위기는 엉뚱한 곳에서, 마음을 찌르며 들어왔습니다.


어느 날 지시받은 업무는 '타 종교 반대 시위'에

쓰일 피켓 디자인이었습니다.

원고를 받아 든 순간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특정 종교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깎아내리는

과격하고 험한 문장들이 가득했습니다.


모니터를 보며 영혼 없이 마우스를 움직였습니다.

화려한 폰트로 혐오의 언어를 장식하면서 끊임없이 되물었습니다.


'이게 과연 옳은 일일까?'


저는 청렴결백한 위인도, 독실한 신자도 아닙니다.

그저 좋아하는 디자인을 하며 조용히 살고 싶은 사람일 뿐입니다.

하지만 제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결과물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된다는 사실은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디자인이 흉기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반강제로 나가던 주일 예배부터 발길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퇴사 사유를 묻는 대표님께 저는 하얀 거짓말을 보탰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사실... 타 종교로 개종을 하게 되어서요."


더 이상 이곳의 신앙을 따를 수 없다는 핑계는 꽤나 유효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종교적 사유'로 위장한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주일 예배가 없는 주말이 얼마나 달콤하던지요.


하지만 운명의 장난이었을까요,

아니면 제가 댄 핑계가 씨가 된 걸까요? 도망치듯

빠져나온 제가 도착한 다음 직장은,

십자가 대신 '연등'이 달려있는 곳이었습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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