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 이해해 줘야 하는
생계형 디자인 2

연등이 돈으로 보일 때

by Slowwalk

개신교 회사에서 '개종'을 핑계로 도망친 제가 도착한 곳은,

운명처럼 연등이 달려있는 불교 관련 회사였습니다.

보통 종교 관련 채용은 '알음알음' 이루어지는데,

구직 사이트에 떡하니 올라온 공고가 신기했습니다.


<근무 시간: 10시~16시 / 월급: 100만 원>


주요 업무는 불교 홍보물 제작.

근무 시간은 환상적이었지만, 월급은 현실 감각이 없는 숫자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저는 돈보다 호기심이 더 고픈 상태였습니다.

도심 근처의 고즈넉한 사찰 옆 사무실, 점심 먹고 산책할 수 있는 숲길.


'이 정도면 힐링하면서 일할 수 있겠는데?'


저는 또다시 근거 없는 낭만에 휩싸여

자기소개서에 온갖 미사여구를 채워 넣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반 수행자, 반 직장인'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업무는 사찰 소식지를 만들거나 석가탄신일 같은

큰 행사의 홍보물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세상일이 제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면 신들이 언짢아하시겠지요?

평온할 것만 같았던 절간 생활에도 복병은 숨어 있었습니다.


바로 사찰의 '큰스님'이셨습니다.

알고 보니 큰스님은 속세에서 미대를 나오신,

이 구역의 숨은 고수였습니다. 스님은 사찰의 조경,

건물 인테리어는 물론 현수막의 배경 컬러까지 관여하셨습니다.


"선생님, 이 현수막 배경 채도를 좀 더 빼보세요."


스님은 주지 스님이 아니라 깐깐한 '총괄 아트 디렉터'였습니다.

죄지은 것도 없는데 시안 컨펌을 받으러 갈 때마다

왜 그리 오금이 저리던지요. 스님의 매서운 미적 감각은

부처님의 자비보다 무서웠습니다.


새로 부임하신 다른 스님께서 소식지를 의뢰하셨을 때입니다.

겉보기엔 좋은 말씀이 담긴 책자 같았지만,

실상은 시주를 모금하는 광고판에 가까웠습니다.


"이 광고가 제일 중요합니다. 더 크고, 더 눈에 띄게!"

스님의 요청은 확고했습니다.


무소유를 가르치는 곳에서, 저는 가장 자본주의적인 디자인을 해야 했습니다.

모니터 속 '시주 안내' 문구를 키우고 색을 입히면서 생각했습니다.


'이건 신도들에게 도움을 바라는 게 아니라 강요 아닌가...'


마우스를 클릭하는 제 손끝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건 역시 '가난'이었습니다.

오전 10시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하는 삶은 달콤했지만,

월 100만 원의 월급은 제 통장을 빠르게 갉아먹었습니다.

불교에 대한 호기심으로 적금까지 깨 가며 버텼지만,

10개월이 지나자 통장 잔고가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아,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려면 일단 굶어 죽지는 말아야 하는구나.'

당연한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결국 저는 아는 후배에게 제 자리를 넘겨주었습니다.

후임자를 구하고 서둘러 구직을 알아보던 중,

기도에 응답이라도 하듯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예전에 일하던 회사였습니다.


"다시 와서 일해볼 생각 없어? 책 만들어야지."


제가 그토록 원하던, 그리고 잠시 떠나 있었던 '출판'으로의

복귀 제안이었습니다. 신들이 보시기에 저의 이 기이한 종교 순례가

꽤나 안쓰러우셨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저는 마감이 기다리는 본업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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