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9 법칙의 저주, 혹은 '역마살'이라는 변명
사주에 역마살이 끼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
두 다른 지역에서 졸업했습니다.
심지어 잠깐 떠난 유학 시절에는 1년 동안 이사를
여섯 번이나 다녔을 정도니까요.
이 지독한 방랑벽은 직장 생활로도 고스란히 이어졌습니다.
제 이력서에는 '3년'을 넘긴 경력이 없습니다.
이상하게 입사 3년 차가 가까워지면 몸이 먼저 신호를 보냈습니다.
일에 권태기가 오는 건 기본이고, 원인 모를 몸살과 불면증이 생겼습니다.
핑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마음의 소리가 울리면,
마치 큰 재앙을 피하려는 사람처럼
속전속결로 이력서를 작성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직 운은 좋아서
바로바로 갈 곳을 찾았고,
계절 따라 이동하는 철새처럼
떠나는 것을 당연한 수순으로 여겼습니다.
'3·6·9 법칙'의 저주였을까요?
주기만 되면 저는 미지의 대륙을 찾는 탐험가처럼
취업 사이트를 뒤적거렸습니다.
하지만 6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 찾아온 것은
단순한 권태기가 아니었습니다. 그
건 지독한 '사춘기'였습니다.
'이 길이 진짜 내 길일까?'
'나는 저 뛰어난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실제로 그 시기에는 디자인이 아닌 다른 업계로의
'외도'를 감행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아시다시피 결국 다시 돌아와 이 글을 쓰고 있지만요.)
한때는 밤잠을 설칠 만큼 자책했습니다.
'왜 나는 한 곳에 진득하게 있지 못할까.'
'나에게 끈기나 인내심이 부족한 건 아닐까.'
제 성격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건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16년 차가 된 지금은 생각을 조금 달리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매 순간 100%를 쏟아부었습니다.
떠나는 뒷모습에 아쉬움은 남을지언정,
업무에 대한 부끄러움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떠난 이유는 끈기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제가 성장하는 속도를 그곳의 '화분'이 따라오지 못해,
더 큰 화분으로 옮겨 심어져야 했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믿기로 했습니다.
제가 그곳에 들어간 이유도,
떠나야 했던 시기도,
다 저마다의 때가 있었던 것이겠지요.
저는 다시 출판의 궤도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지금의 저는 마치 떠나온 행성을 잊지 못해
그 주변만 맴도는 '위성' 같습니다.
하지만 이 기나긴 공전에도 분명 의미가 있을 겁니다.
여러 궤도를 거친 덕분에,
이렇게 여러분에게 들려줄
다채로운 이야기가 생겼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