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디자이너,
영어 학원 강사가 되다

마우스 대신 보드마카, 맥북 대신 칠판지우개

by Slowwalk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넘어가는

그 경계선에서 진로를 고민합니다.

숫자가 바뀌는 것뿐인데,

세상이 저에게 묻는 것 같았습니다.


"너, 이대로 괜찮겠어?"


특히 직장인으로서 '디자이너의 수명'은 유독 짧습니다.

트렌드에 민감해야 하는 직업 특성상,

나이 듦은 곧 감각의 도태로 여겨지곤 합니다.

업계의 정설대로라면 경력이 찼을 때

프리랜서로 전향하거나,

내 디자인 에이전시를 차리는 게 수순이겠지만,

저에게 '모험'은 사치였습니다.


당장의 생계가 불안정했고,

독립해서 홀로서기를 할 만큼

제 실력이 압도적이라 믿지도 않았으니까요.


그렇게 서른을 목전에 둔 어느 날, 공포가 엄습했습니다.


'30대에는 제2의 직업을 찾아야 한다.

이대로 있다가는 노후는커녕 내일도 없다.'


하지만 막막했습니다.

그 흔한 컴활 자격증 하나 없는,

오로지 디자인 프로그램 툴만 다룰 줄 아는 '

기능인'이었으니까요.


내가 가진 무기가 뭐가 있을까.

이력서를 텅 비우고

다시 채워 넣을 만한 기술이 있을까.

고민을 거듭하던 제 머릿속에

먼지 쌓인 기억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아, 나 호주 고등학교 나왔지."


디자인을 시작하기 전, 잠깐의 유학 시절이 있었습니다.

호주에서 보낸 시간은 고작 3년 반.

원어민처럼 유창하진 않아도,

아이들을 가르칠 정도는 되지 않을까?

'일단 해보고 후회하자!'라는 심정으로

보드마카를 잡기로 했습니다.


타깃은 비교적 기초 영어를 가르치는

초·중등 보습학원이었습니다.

무작위로 이력서를 뿌렸습니다.


디자이너의 포트폴리오 대신,

호주 졸업장이 첨부된 낯선 이력서들.

다행히 며칠 뒤, 운명처럼 면접 오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전화 한 통이 제 인생에

만성 위염의 시발점이 될 줄은 말입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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