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쉽게 가려고 하면 큰코다친다
누군가 그랬습니다.
다른 직종으로 이직할 때는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배수진을 쳐야 한다고요.
하지만 저는 오만했습니다. 강사라는 직업을,
누군가를 가르치고 이끄는 일을 너무 쉽게 봤습니다.
마음 한구석에는 늘 믿는 구석이 있었거든요.
'해보다가 정 안 되면... 다시 디자인으로 돌아가지 뭐.'
이런 안일한 '보험'을 들어놓고 시작한 전쟁에서 이길 리가 없었습니다.
저를 받아준 곳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영·수를 가르치는 동네 보습학원이었습니다.
원장님이 수학을, 제가 영어를 맡았습니다.
문제는 '반 편성'이었습니다.
학생 수가 적다는 이유로 초등학교 저학년과 고학년,
심지어 중·고등학생까지 한 교실에 몰아넣고 수업을 해야 했습니다.
진도표도, 커리큘럼도 없었습니다.
맨땅에 헤딩하듯 제가 기초부터 쌓아야 했지만,
제 실력은 그럴듯한 졸업장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과 소통하며 영어를 가르치는 멋진 선생님,
그런 훈훈한 상상을 하며 시작했지만 현실은 공포 영화에 가까웠습니다.
첫 수업 시간, 초등학생 하나가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질문일까? 설레는 마음으로 지목했습니다.
"저번 선생님은 과자 사주셨는데,
쌤은 뭐 사주실 거예요?"
수업 내용 따윈 관심 없고,
새로운 '물주'가 왔나 간을 보는 눈빛이었습니다.
충격은 갈수록 더했습니다.
두 번째 시간엔 껄렁한 남학생 셋이 저를 둘러쌌습니다.
"쌤, 저한테 10만 원만 투자해 봐요. 배로 불려드릴게."
알고 보니 온라인 도박 자금을 대라는 소리였습니다.
"피자 쏘면 수업 들어줄게요."
아이들에게 저는 선생님이 아니라 '지갑'이거나 '호구'였습니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교재를 펴고
질문하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대부분 시간 때우러 온 아이들이었고,
학원 구석에서 대놓고 담배 냄새를 풍기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원장님은 원생이 끊길까 봐 이를 알고도 묵인했지요.
호주 고등학교 졸업장 하나 믿고 뛰어든 '강사'의 세계는,
제가 감당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저는 2주일을 채우지 못하고 도망쳤습니다.
얻은 것이라고는 극심한 스트레스성 위염뿐이었습니다.
그 짧은 외도를 통해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좋아하는 것(영어)과 잘하는 것(가르치기),
그리고 업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는 사실을요.
(당연한 결과이지만 그때는 열정이 지나쳤습니다)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그때 호되게 당해보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도 야근하는 밤마다
"아, 그때 영어 강사나 해볼걸" 하며 섣부른 미련을 가졌을 테니까요.
실패는 쓴맛이었지만, 덕분에 저는 더 이상 한눈팔지 않고
마우스를 잡습니다.
역시, 구관이 명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