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카페 브랜딩을 꿈꿨으나, 현실은 사진사
디자이너에게 '커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제2의 동반자입니다.
특히 카페 브랜딩은 디자이너라면
한 번쯤 꿈꾸는 로망의 영역입니다. 그윽한 커피 향,
감각적인 인테리어, 그리고 그 중심을 잡아주는 세련된 로고 디자인.
"나도 저런 멋진 브랜드를 만들어보고 싶다."
출판계를 잠시 떠나 저를 시험해보고 싶었던 차에,
지방에서 꽤 유명한 프랜차이즈 카페의 디자이너 공고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운명이라 생각하고 바로 지원했습니다.
면접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습니다.
합격의 기운이 감돌 때쯤, 면접관이 웰컴 드링크라며
따뜻한 '카페라테' 한 잔을 내밀었습니다.
아뿔싸. 저는 유제품 알레르기가 있습니다.
우유가 들어간 음료를 마시면 속이
뒤집어지고 어지럼증이 생깁니다.
하지만 눈앞의 면접관은 생글생글 웃으며
"우리 시그니처 메뉴예요"라고 권하고 있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저는 태연한 척 연기를 하며, 라테를 원샷했습니다.
역시나 속은 전쟁이 났고 정신은 혼미해졌지만,
입꼬리는 간신히 웃고 있었습니다.
취기처럼 오르는 어지러움 속에서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 '라테 투혼' 덕분이었을까요?
저는 당당히 합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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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은
이 회사를 위해 존재하는 격언 같았습니다.
입사해 보니 겉만 번지르르한 '모래성'이었습니다.
오너는 아침에 만든 로고가 마음에 안 든다며
수시로 디자인을 변경하였고,
물류 팀 직원을 갑자기 로스팅 공장으로
보내버리는 등 인사 발령도 제멋대로였습니다.
심지어 주말에는 직원들을 본인 소유의 농장으로 불러
밭일을 시키기도 했습니다.
디자이너가 아니라 '농노'를 뽑은 건가 싶을 정도였죠.
매장이 60개가 넘는 호황기였지만,
정체성을 잃고 오너의 기분에 따라 흔들리는 배는
침몰이 예견되어 있었습니다.
(실제로 지금은 서너 개의 매장만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결정적인 퇴사, 아니 탈출의 계기는
그해 겨울 찾아왔습니다.
기록적인 폭설이 내린 다음 날이었습니다.
오너가 저를 호출했습니다.
"박 주임, 이번 주 토요일 클라이언트랑
산에 좀 갔다 와야겠어."
제가 디자이너라 카메라를 다룰 줄 아니,
정상에 올라가서 클라이언트 기념사진을
찍어주라는 것이었습니다.
디자이너가 셰르파도 아니고,
폭설 내린 설산을 사진기 하나 메고 올라가라니요.
저는 긴 한숨과 함께 회사를 향한
마지막 미련을 뱉어냈습니다.
다행히도 물에 빠진 저를 향해 구명조끼가 던져졌습니다.
한 출판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짐을 쌌습니다.
퇴사는 속전속결로 이뤄졌습니다.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그때 제가 사직서를 내지 않고 계속 그곳에 있었다면,
저는 브랜드 디자이너가 되었을까요?
아니면 사진가가 되었을까요?
상상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지나치게 황당해서겠지요.
저는 여전히 커피 없이는 못 사는 디자이너입니다.
이따금 근사한 카페 콘텐츠를 볼 때면
'나도 한번?'이라는 충동이 일지만,
그 마음은 금세 사그라집니다.
좋아하는 대상과 일하는 대상이 일치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커피 회사에서의 경험은,
제게 '최고의 단골손님'으로 남는 법을
가르쳐준 것만으로 충분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짧고 굵은 '커피 외도'는
또 하나의 쓴맛 에피소드로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