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는
누구에게나
한 번쯤 찾아오는 걸까.
나는 그 시기를
과연 슬럼프라 알고 지나왔을까.
돌아보면
그렇게 바빴던 시간들이 아쉽기도 하다.
어디에 매이는 게 싫어
한 직장을 오래 다니지 못했고,
세상에 재미있는 것이 너무 많아
즐기고 싶은 마음이 컸고,
모든 것이 다 좋은 기회처럼 보여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했고,
거절을 못해
많이 따라다녔고,
혹하기도
참 많이 혹했다.
그래서
뭔가를 더 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생각할 여유도 없이 계속 움직였다.
다양하고 즐거운 경험을 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
시야를 넓히고
젊음을 누렸지만,
아쉬움이 남지 않을 수는 없다.
그래서 지금이 슬럼프다.
서른아홉이라는 나이가 주는
묵직한 위압감 앞에서
나는 슬럼프에 있다.
어지러운 마음에
사주를 보았고,
서른아홉까지
돈을 벌지 못하고
허송세월한다는 말에
오히려 위안을 얻었다.
그럴 운명이었다면
그에 반해
아주 잘 살아온 것 같아서.
어쩌면
더 즐겨도 됐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래서
이제 슬럼프를 마치려고 한다.
마음껏 세상을 누리고,
내 마음을 따라 다시 가보려 한다.
파도치는 드넓은 바다로,
서핑보드를 들고 달려가 보려 한다.
슬럼프
1. 멈춘 시간이 아니라
어디에도 매이지 않으려다
결국 나 자신에게서 멀어진 시기.
2. 더 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생각할 여유 없이
계속 움직이기만 했던 마음의 상태.
3. 즐거움도 경험도 충분했지만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한 채
아쉬움이 쌓여버린 시간.
4. 서른아홉이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 앞에서
비로소
나의 속도를 다시 바라보게 된 지점.
5. 끝이 아니라
이제 방향을 정해
다시 바다로 나아가기 직전의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