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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 Nov 17. 2019

하늘은, 공원은, 한낮의 햇살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창으로 유난히 빛이 쏟아지던 날, 사무실 자리에만 앉아있기가 몹시 고되었다. 잠깐 전화를 받으러 바깥에 나갔다가 자그맣게 탄성을 뱉었다. 한여름엔 이런 특별한 날이 가끔 있다. 두꺼운 여름 이파리들이 빛을 받아 반들거리고, 열기를 내뿜는 태양이 거대한 구름에 반쯤만 가려져 청명하면서도 선선한 날. 이런 날 거리를 걸어야 하는데, 공원 벤치에서 책을 읽어야 하는데, 창이 큰 카페에 가 여유를 즐겨야 하는데. 날씨와 어울리는 장면 몇 가지가 머리를 스쳤다. 다시 자리로 돌아갈 땐, 이번 주말엔 늘어져 있지 않고 어디든 쏘다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 주 주말엔 이틀 내내 비가 왔다.     


    밖에 나가 얻을 게 없으니 집에만 있었다. 핸드폰 화면을 휘적거리며 대충 좋아 보이는 물건 여러 개를 사고, 한 끼는 배달음식을 먹었다. 만족스럽진 않았다. 금 같은 주말 내내 어둑한 창가를 때리는 빗소리를 듣는 게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그해 여름에는 맑았던 날씨가 주말에만 흐려지는 일이 많아 다들 불평하곤 했다. 그때가 마침 한창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돈을 펑펑 쓰던 시기였다. 몸이 힘들면 마사지를 받으러 가고, 계절마다 옷을 잔뜩 사고, 외식을 자주 했다. 그렇게 절제하지 않고 썼어도 충분한 만족감을 느낄 수 없었다. 시간이 내 것이 아니라는 상실감이 더 컸기 때문이다. 사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행복이 저기 널려있는데, 그게 내 것이 아니라는 게 답답했다.     


    최근 책상 위치를 바꿨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차 한잔을 끓여 거실 창문을 마주 보는 자리에 앉는다. 오늘의 햇살은 얼마만큼인지 매일 생생하게 느낀다. 하얀 커튼이 조명처럼 빛나는 날엔 밖으로 나간다. 별 필요 없는 식재료를 사러 큰 마트까지 걸어가기도 하고, 카페로 향하기도 한다. 제일 좋은 곳은 역시 집 근처 공원이다. 나는 구름을 정말 좋아한다. '하늘 올려다본 게 언제였더라' 하는 일이 거의 없다. 습관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오늘의 구름을 살핀다. 짙은 청색 하늘에 단단한 뭉게구름 몇 점 동동 떠다니는 모습은 볼 때마다 감탄스럽다. 하늘은 내가 어디 서 있느냐에 따라 그 크기가 달라진다. 주변에 건물이 없는 공원은 하늘을 올려다보기에 최적의 장소다. 드넓은 파랑과 오밀조밀한 초록을 번갈아 바라보며 걷다 보면 몸이 절로 가벼워진다. 그 순간이 너무 좋아 끝내고 싶지 않다. 삼십 분만 걸어야지 하고 나가선 한두 시간을 보내고 들어온다.    

 

    사는 지역 뒤에 일몰시간을 붙여 포털에 검색하면 해 지는 시간을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여름엔 그보다 삼십 분 정도 일찍 공원에 간다. 흐린 날 하늘은 청색에서 먹색으로 점점 진해지고, 맑은 날에는 분홍색, 보라색을 거쳐 짙은 물색이 된다. 겨울엔 쌀쌀한 아침저녁을 피해 정오쯤 집을 나선다. 겨울이라도 한낮의 볕은 강하다. 눈을 살짝 찡그리며 걸으면 따스했던 날들이 떠오른다. 계절이 바뀌었어도 여전히 온화하다. 햇살이 늘 곁에 있다. 날씨도, 날씨에 따른 기분도 이전처럼 요동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회사에 다닐 때도 점심시간에 짬을 내 걸어볼 걸 그랬다. 여름엔 퇴근 후에도 해가 지지 않은 날이 몇 있었다. 그때 일몰을 보며 강변을 걸을 수도 있었다. 그게 말처럼 쉬웠겠냐만은. 그때 흐렸던 건 날씨만이 아니었다. 모든 게 바뀐 지금은 동전 하나 없이 빈손으로 문밖을 나서도 즐거운 일들이 많다. 하늘은, 공원은, 한낮의 햇살은,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들은 가격표가 없다.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는 이런 것들을 충분히 즐기고 난 다음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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