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을 지나는 지하철
좋아하는 순간들 _ 고개를 들게 되는 순간
지하철 안에선 거의 핸드폰을 본다. 예능 프로그램을 볼 때도 있고, 영화를 볼 때도 있다. 딱히 볼 것이 없어 빈 화면만 뒤적거리기도 한다. 그래도 고개 들 일은 없다. 앞자리에 앉은 사람과 눈이 마주치는 것도 어색하고 창 너머에도 시선 둘 곳이 없으니까.
유일하게 고개를 들고 바깥을 내다볼 때는 지하철이 한강을 관통하고 있을 때다. 푸른 강이 한쪽에서 시작되어 눈앞에 크게 펼쳐졌다가 다시 반대편으로 접히기까지, 재보지는 않았지만 2~30초 정도 될 것 같다. 그 시간만큼은 아무리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있어도 시선을 창밖으로 돌린다. 30초면 끝나버리는 풍경이니까. 건물과 건물 사이 놓인 강이 내가 지금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 알려주는 것 같다.
이렇게 좋아하는 순간임에도 지하철을 타기 전 '이 차는 한강을 지날 거야'라고 미리 생각해 본적이 한 번도 없다. 그래서 더 좋다. 예기치 않은 선물 같다. 지하철 안은 인공조명만 켜진 워낙 어둑한 곳이라 지하를 벗어나면 바로 알 수 있다.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도 왠지 모르게 밝아진 느낌이 들면 어김없이 한강이 눈앞에 놓여있다. 개방감이 드는 풍경이 더할 나위 없이 상쾌하다. 한 겹의 유리 안에서 여름에도 시원하게, 겨울에도 따듯하게. 지하철 안에는 한강이 숨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