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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 Nov 17. 2019

퇴사하면 뭐가 달라질까.

낭만적 삶에 대하여

    퇴사하고 두세 달쯤 되었을 땐 예상보다 더 넘쳐나는 시간이 권태로웠다. 무엇을 하며 그 시간을 채워야 할지 몰라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이것저것 하고는 있지만 잘하고 있는 건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만약 퇴사한다면 뭘 하고 싶은지, 아니 한 달 정도 시간이 나면 뭘 하고 싶은지 물어보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의 계획을 듣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 같았다. 참 많은 이에게 질문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여행, 운동, 그리고 공부. 여름휴가로는 가지 못하는 먼 곳으로 떠나 그곳에 오래 머물 거라고, 다짐만 하던 공부를 시작할 거라고, 또 운동을 꾸준히 해서 체력을 키우고 싶다고 했다. 한마디로 사람들은 여유를 즐기면서도, 동시에 자기 계발을 하고 싶어 했다. 마냥 노는 게 아니라 배우고 성장하기를 원했다. 생각해보니 나도 같은 이유로 치앙마이 한 달 살기를 꼭 해보고 싶었다. 반쯤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면서 요가도 배우고 영어도 공부하려 했다. 막상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는 한적한 삶에 대한 갈증이 눈 녹듯 사라져 잊고 지냈지만, 그때의 마음만은 아직도 생생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여행은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운동과 공부는 회사에 다니면서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일주일에 세 번 운동한다고 하면 세 시간으로 충분하다. 거기다 네 시간 정도 더 투자하면 이것저것 공부할 수도 있다. 하루 한 시간이면 된다. 밤낮없이 격무에 시달리는 것 아닌 이상 시간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나 자신도 의문이다. 왜 그저 방 한편에 누워 핸드폰으로 애꿎은 포털 사이트의 빈 화면만 휘휘 돌리며 시간을 보냈을까. 단지 여유가 없어서 그랬을까. 그건 아니었다. 회사를 그만둔 뒤 충분한 여유가 생기고 나서도 상당 기간 동안 그렇게 의미 없는 시간을 보냈다.  

             

    충분한 시간이 지난 지금에야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더 나은 내가 되려는 소망은 몸의 관점에서 보면 생존과 별 상관없는 욕구다. 슬프거나, 외롭거나, 불안하거나, 당장 마음이 어지러운 '나'라는 존재는 자기 계발이라는 활동에 에너지를 소모하고 싶지 않다. 자신을 눕히고, 재우고, 멈춰 회복시키려 한다. 몸이 힘들 때도 마찬가지다. 스트레스 때문이든, 강도 높은 일 때문이든, 기운이 떨어진 몸은 에너지를 잘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런 상태에선 공부해 지식을 채우고 운동해 근육을 단련하고 싶지 않다. 최대한 웅크리고 기운을 아껴 혹시 모를 비상사태에 대비하는 게 더 합리적이다.


    게으름이라고 치부했던 무기력은 그저 나를 더 아프게 하고 싶지 않다는 몸의 소리였다. 이제 회사를 그만둔 지 일 년이 지났다. 그동안 나를 잘 먹이고 잘 재워 천천히 기운이 돌아왔다. 이제는 더 나은 나로 나아가기 위해 쓸 수 있는 여분의 에너지가 생겼다. 이곳에 오니 저곳에 있었던 과거의 내가 어떤 문제와 씨름하고 있었는지 너무나 잘 보인다. 의지력까지 채 닿지 못하는 에너지로 힘겹게 몸을 이끌며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던 모습에 등을 토닥여주고 싶을 뿐이다.      

          

    퇴사에는 엄청난 기회비용이 든다. 직업 시장에서 가치 하락이라는 위험이 따른다. 원하는 것이 지금보다 더 건강한 삶이라면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찾는 것으로 시작해도 충분하다.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있으면 학원에 등록하고, 함께 할 사람을 찾아보는 것도 좋다. 모든 걸 바꾸지 않아도 삶이 놀랍도록 좋아질지 모른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에너지가 도저히 없다면, 막다른 길이라고 느껴진다면, 쉼표를 찍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루 이틀의 휴식으로 메워지지 않는 거대한 공동 있어, 조금씩 무너지고 있을지 모른다.   

             

    여유를 즐기기 위해서는 시간과 돈, 그리고 체력이 필요하다. 뭐든 '0'이 되어선 안 되겠지만, 한 가지 정도는 좀 적어도 괜찮다. 두 가지 이상 결핍되기 시작했다면 삶을 재설계할 타이밍이다. 퇴사는 그 설계를 위한 여러 수단 중 하나다. 퇴사하면 뭔가 달라질까. 달라진다. 마냥 좋아질까. 그렇진 않다. 모두에게 좋은 회사는 없는 것처럼, 모두에게 좋은 퇴사도 없다. 정답은 이 두 가지 상태 중 하나에 있는 게 아니라 답을 구하는 과정에 있다.   


    '낭만적인 삶’에 대해 생각한다. 꽃과 커피 향, 잔잔한 재즈 음악, 이런 걸 떠올리는 건 아니다. 나에게 낭만이란 주관적으로 선택하는 과정이다. '나'와 '너'는 다르다는 걸 마음 깊이 이해하고, 개성이 살아 숨 쉬는 나만의 답을 적어 내린 뒤 모범답안과 맞춰보지 않는 삶이다. 누군가를 닮을 필요가 없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선택이라면, 삶은 온전히 우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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