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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 Nov 17. 2019

공감능력 없는 상사의 비밀

권력은 어떻게 사람을 마취시킬까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권력형 갑질을 보면 의문이 든다. 왜 어떤 사람들은 사소한 불쾌감을 참지 못할까. 어찌나 사소한지 그 정체에 대해서 자신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눈빛이 기분 나빠서, 말투가 건방져서, 그냥 무시하는 것 같아서, 뭐 이런 식이다. 직원에게 소리를 지르고, 아르바이트생에게 물건을 던지는 부류들의 영상을 뉴스를 통해 종종 본다. 그들은 정말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분노를 제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왜 하나같이 객관성이 결여된 채로 ‘감히 나에게’를 외치는 걸까.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미스터리했던 이 뉴스들이 꽤 일상적인 현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관계든 적절한 선이 있다. 타인의 영역을 지켜주려는 사람과 어떻게든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려는 사람으로 나뉘기는 하지만, 그래도 결국은 선이 만들어진다. '이 친구와는 이런 대화까지 할 수 있고, 이 친구는 이런 농담을 싫어하고, 이 친구는 이런 부분에 민감해' 같은 기준이 생긴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상대의 반응을 살피며 이러한 정보를 얻는다. 상사와의 관계는 어떨까. 회사에선 어찌 됐든 상사가 갑이다. 그들은 직원들에게 업무를 배당하고 수행 결과를 평가한다. 그렇다 보니 직원은 상사를 편하게 대하기 어렵다. 상사가 적절하지 않은 언행을 해도 모른 척하고, 대화 도중 불쾌감을 느껴도 참게 된다. 그런 상황에 익숙해지다 보면 어떤 상사들은 상사와 직원의 관계에도 선이 있다는 사실을 진짜로 잊어버리고 만다. 인지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자신에게 한없이 맞춰줘야 하는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사소한 일에 분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의 기준은 보통 사람들과 상당히 다르다.


    점심시간에 꼭 일을 시키는 상사가 있었다. 원래 출근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하고 밤 열 시가 넘어 퇴근하던 시기였다. 쌓여있는 일을 밤늦게까지 처리하기 위해서라도 점심시간엔 좀 자 둬야 했다. 그러나 눈을 붙이기 위해 자리 앉으면 어김없이 불러 업무를 지시했다. 심지어 양치 도구만 가지러 들어가도 일을 시켜서 나중엔 탈의실에 양치 도구를 옮겨두기까지 했었다. 정말 화병이 날 지경이었다. 일과시간 내내 상사의 일을 하느라 내 고유 업무는 저녁에 남아 처리해야 했다. 항상 칼같이 퇴근하던 그는 남아있는 나에게 꼭 이런 말을 한마디씩 했다. “야근하지 마. 습관 돼. 차라리 아침에 한두 시간 일찍 오는 게 낫지.” 이미 한 시간 일찍 출근하고 있는 사람에게 말이다. 처음엔 어떻게 뻔히 알고도 저럴까 싶었는데, 점점 어쩌면 진짜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사에게 직접 ‘점심시간에 일 시키지 마세요’, ‘본인 업무를 저에게 시키지 마세요’ 같은 말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런 불만을 말하는 게 불편하고 어려우니까. 그러니 상대방은 진짜 아무런 미안함도, 죄책감도 못 느꼈을지 모른다. 타인의 상황과 감정을 감지하는 능력 자체가 말라버린 것이다.     


    여러 팀이 모인 회식 자리에서 새로 팀장으로 진급하진 분과 우연히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승진 축하 인사를 건네자, “어휴, 안 좋아요. 차장 때가 더 좋았어요.”라고 예상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평소에도 그분에 대해 좋은 평판을 들어왔던 터라 그 말의 의미가 더 궁금해 이유를 물었다. “팀장이 되니까 직원 눈치가 너무 보여요. 차장일 때는 그래도 직원들과 소통이 잘 됐는데, 이제 팀장이 되니까 다들 어렵게 대해서 저도 어려워요.” 나이가 어리고 직급이 낮은 나에게도 그렇게 존댓말을 사용해 말씀하셨다. 진솔한 화법에서 진정성이 느껴졌다. 눈치를 보게 된다고 표현할 만큼 직원들의 의중을 헤아리려고 노력하는 상사도 있다는 사실이 새로웠다. 사람들이 입을 모아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직급 차이가 소통을 가로막는 벽이 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권력에 그런 특성이 있다고 해서 갑질까지 정당해지지는 않는다. 힘의 차이를 이해하고, 더 헤아리고 배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최근에도 직장 내 폭언에 대한 뉴스를 봤다. 폭언을 한쪽의 변명은 역시나 ‘웃자고 한 이야기였어요’였다. 무례한 행동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보면, ‘아, 저 사람은 권력에 마취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지위가 높으니 다른 사람의 기분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라는 태도를 가진 사람은 회사 밖에서도 흔하다. 세상엔 아주 다양한 권력이 뒤엉켜있어서, 여기서 을인 내가 저쪽에선 갑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 갑이 되는 연습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세상 모든 이들이 꽤 괜찮은 갑이 된다면, 고통받는 을도 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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