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도 너무 싫은 사람
열 명 중 한 명이 나를 미치게 한다.
주 5일 동안 회사에서 시달리다 달콤한 주말을 맞는다. 친한 친구를 만나 가고 싶었던 장소에 가서 먹고 싶었던 음식을 먹는다. 즐거운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회사에서 겪은 스트레스에 대해 토로하는 시간이 온다. 일 때문인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사람 때문이다. 주중의 시달림이 사라지지 않고 온전한 휴식을 취해야 하는 주말까지 잡아먹는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각자의 '메인 빌런'은 정해져 있다. 동기, 사수, 선배, 후배, 상사, 거래처, 맡은 배역은 다양하다. 하지만 막상 헤아려보면 그 수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 배울 점도 있고 편한 사람이 열 명 중 한두 명, 불편함 없이 지내는 사람들이 대다수, 나를 미치게 하는 사람이 다시 열 명 중 한두 명이다. 회사의 분위기가 개인의 성향과 잘 맞지 않으면 이 비율이 더 올라가겠지만, 주변을 보면 대체로 이 정도를 유지하는 것 같다.
진솔한 성격인 A는 허풍과 허세가 심한 사람이 몹시 보기 딱하다. 긍정적인 B는 매사 남을 깔보고 흉보는 사람이 너무 불편하다. 사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누구나 흠은 있다. 그러나 그 단점이 내가 포용하기 힘든 단점이라면 괴롭지 않을 수 없다. 피하는 게 상책이겠으나 피할 수 있다면 진작 피했을 것이다. 애초에 피할 수 있을 만큼 멀리 떨어진 사람에겐 그 정도로 부정적인 감정이 잘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업무적으로 반드시 소통해야 하거나, 나아가 직속 선배나 상사인 경우가 더 흔하다. 곁에 있는 것조차 이미 만만치 않은 사람과 협력을 꾀해야 한다니. 지옥이 따로 없다. 한 가지 성향에서 이미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은 다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인 경우가 많다. 고통은 가중된다.
최고의 방법은 깔끔하게 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각자의 '메인 빌런'은 그 포용과 이해의 토너먼트에서 최상단에 선 사람들이다. 열 명 중 한두 명에 해당하는 그들에겐 그게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깔끔하게 싫어하는 방법이 남아있는데 그것조차 쉽지 않다. 보통 사람들은 누군가를 싫어하는 마음을 버거워한다. 누군가를 싫어할라치면 어김없이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뭔가 오해를 하는 것은 아닐까?' '상대방도 좋은 뜻이거나, 최소한 악의는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곤 자책의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혹시나 치우친 감정으로 치우친 생각을 하는 건 아닌지 걱정하고, 상대방의 사정과 관점에서 이해해보려 시도한다. 싫어하는 마음을 극복하고 지우려 애쓴다.
그게 보통 사람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자기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정당하고 온전한 인간이다. 하지만 그런 정상적인 사고방식이 때로는 불편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증폭시킨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더욱더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싫은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유가 구체화될수록 상대방이 이해되기는커녕 더 싫어진다. 긍정적으로 교류하고자 노력해본다. 불쾌한 경험만 추가된다. 최대한 생각하지도 않고 엮이지도 않으려 노력해본다. 그것도 말처럼 쉽지가 않다.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그 정도로 싫은 사람은 노력한다고 좋아지지 않는다. '나 누구누구 마음에 안 들어!' 이런 단순한 마음이 아니다. 해로움에 대한 거부 반응에 가깝다. 기억에 남는 사건 한두 가지는 표면에 불과하다. 상대방의 화법과 태도, 언어 그리고 비언어적으로 수집된 수많은 데이터가 거부감이라는 감정을 만들어낸다. 거부감은 해롭고 위험한 것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유익한 감각이다. 논리로는 쫓아가지 못할 마음, 혹은 무의식의 빠른 연산이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다. 비극은 여기서 시작된다. 앞서 이야기했듯 우리는 그 신호에 맞춰줄 수가 없다. 피할 수 있었으면 이미 피했을 테니까. 누군가를 깔끔하게 싫어하는 게 잘 안된다면 이렇게 생각하는 게 최선인 것 같다. '그 사람은 해로운 사람이다' 그조차도 마음이 편치 않다면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좋다. '그 사람은 내게 해로운 사람이다'
정답은 모르겠다. 간단한 노하우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삶의 고수가 된 후라면 가능할까? 회사는 서로에 대한 호감으로 유지되는 조직이 아니다. 이익집단에서 내 몫을 하기 위해 제 발로 들어간 곳이다. 좋아서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도 불편한 감정이 생기고, 때로는 그 앙금이 오래 남는다. 그러니 회사생활에선 오죽할까. 나 역시 회사에 다니며 사람이 제일 힘들었다. 그래도 얻은 건 있다. 이제는 나와 잘 맞지 않는 사람을 분별할 수 있다. 어떤 행동을 취하는 사람이 나를 괴롭게 할지 이제는 대충 알 것 같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최대한 멀어지려 노력한다. 싫은 사람보단 좋은 사람에 집중하고 싶다. 열명 중 한두 명이 나를 힘들게 할지라도 여덟아홉 명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