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당한 흔적이 전혀 없는 시신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시신의 얼굴. 본래라면 조직이 수사해야 할 사건이지만 가끔은 그들도 해결하지 못하는 사건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사건이 연쇄 살인사건이고 주민들의 동요가 심해졌다고 생각했을 때 마침내 조직은 나를 찾아온다.
“조직 안에서 최고의 명성을 날렸던 골드가 골목 구석에서 해결사 노릇을 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 지금이라도 다시 조직으로 돌아온다면 내 섭섭지 않게 대우해 줄 테니 다시 함께 일해 보는 건 어때?”
골드. 나를 지칭하는 단어다. 언제나 입고 다니는 코트의 색 때문에 얻게 된 별명이다. 하지만 조직에서 나온 뒤로 궁핍한 생활을 한 터라 지금은 금색이 아니라 누런색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 나를 골드라고 불러주는 옛 친우의 말이 고맙다.
모처럼 만난 친우니 간단하게 그의 소개를 해 본다면 그는 검은색과 흰색이 얼룩덜룩하게 섞인 코트를 걸치고 다녀 체크라고 불리는 사내다. 과거에 내가 조직에 속해 있었을 때 우리는 같은 팀에 소속되어 많은 공적을 쌓았었다.
“말뿐이라도 해도 고맙군. 하지만 억만금을 준대도 다시 조직에 들어가는 건 사양하지. 인사나 하려고 나를 찾아온 건 아닐 테고 무슨 일을 맡기고 싶어서 왔나.”
“딱딱하게 굴기는. 스마일 살인사건이라고 들어 본 적 있지?”
“요즘 뒷골목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사건 아닌가. 해결사 일을 하는 내가 모르고 있다면 업무태만이지.”
“그 사건의 범인을 찾는 걸 의뢰하겠어.”
“그 밖에 다른 건?”
“범인을 살해해서 사건을 완전히 묻어버리는 것.”
“돌아가게. 난 이제 살인은 하지 않으니까.”
체크에게서 등을 돌렸다. 아무리 친우라지만 더 이상의 살인을 하지 않기 위해 조직을 그만둔 나는 사람을 죽이는 의뢰를 맡지 않는다.
“방금 한 말은 의뢰는 조직의 의뢰였고, 아직 내 의뢰를 말하지 않았네. 부디 놈하고 같이 있을 우리 딸을 구해주게.”
“자네 딸이 사건과 관계된 건가!”
체크의 딸이 태어났던 날. 나는 그의 옆에 있어 줬다. 그날 그녀의 모습을 보며 세상에 천사가 있다면 바로 그녀를 뜻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도 이제 열일곱, 열여덟의 숙녀가 되었을 나이다.
“어제저녁부터 연락되질 않고 있어.”
체크는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분노와 슬픔 때문에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만약 조직에 얽혀있는 몸이 아니었다면 지금 당장 놈을 찾아내서 초주검을 만들었을 친구다. 그는 지금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범인에 대한 분노를 억제하고 있다. 친우의 어려움을 보고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의뢰를 수락할 테니 정보를 말해보게.”
“한때 뒷골목에서 유행했던 행복초라고 기억하고 있나?”
“거인에게 유입된 마약이었지. 지금은 없지 않은가.”
“중독의 염려가 있어서 우리 조직이 관여해서 상당수의 행복초를 압수했었지. 하지만 며칠 전 압수 했던 행복초를 도난당했어.”
“외부인이 조직에 잠입해서 훔쳤을 리는 없고 내부자의 소행인가?”
“확신할 수 없어 하지만 다른 정보는 있지. 지금까지 범인에게 살해당한 피해자들은 모두 직, 간접적으로 조직과 연관이 있던 주민들이야.”
“예를 들면?”
“극비리에 수배한 정보원들과 조직원들의 가족, 친구.”
“이번에는 자네 딸이 목표가 됐다는 거군. 범행도구는 훔친 행복초를 사용했을 것이고. 그런데 행복초로 살인을 하는 게 가능한가?”
“행복초는 몸에 부담이 안 가는 점이 특징이지. 이론상으로는 행복초로 살인은 불가능해.”
“살인용으로 계량된 행복초일 수도 있겠군.”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부분이네. 그걸 밝혀내는 게 자네 역할이겠지. 행복초에 대해선 자네가 제일 잘 알고 있잖아?”
나는 체크에게 들은 정보를 머릿속에 기억했다.
“의뢰 내용은 자네 딸의 행방을 찾고 구출하는 것 이거면 되나? 그리고 덤으로 범인을 정체를 알게 되면 자네에게도 알려주도록 하겠네.”
“고맙네 골드.”
오랜 친우가 고개를 숙여 나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그의 특기인 ‘도약’을 사용해서 수직으로 높이 뛰어올라 건물 위로 모습을 감췄다. 나이가 들어도 그의 솜씨는 여전했다. 지금쯤이면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게 건물 위로 뛰어올라 다른 골목으로 이동했을 것이다. 반면에 나는 친우처럼 편리한 특기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평범하게 걸어 목적지로 이동했다.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아주 제한적이다. 직접 사건 현장을 조사했었다면 많은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조직에 의해 사건 현장이 완전히 정리된 상태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당시 사건 현장을 목격한 주변 사람들의 진술을 듣는 정도다. 나도 명색이 해결사라 마지막 사건이 어디서 일어났는지 정도의 정보는 가지고 있다. 손바닥처럼 훤한 골목길을 걸어서 사건 현장이었던 곳에 도착했다. 뒷골목이 다 그렇지만,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안 될 만큼 지저분하고 특징 없는 장소다. 많은 주민이 이런 곳에 거주하고 있다.
“저는 수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질문 몇 개 하고 돌아갈 생각이니 숨어있지 말고 나와 주십시오.”
큰소리로 외치자 어둠 속에 숨어있던 둘이 나왔다. 노인과 소년이다. 한쪽 다리를 절고 있는 노인은 이전 사건에서 만나 면식이 있는 사이다.
“누군가 했더니 해결사 양반이군. 그려.”
“영감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는 소년은 누구입니까?”
“내 손자일세.”
노인에게는 가족이 없다. 그렇다면 친손자는 아닐 테고, 떠돌이 신세인 소년을 양자로 들인 것 같았다. 사건에는 필요 없는 일이라 이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최근에 있었던 살인사건에 대해 여쭈러 왔습니다. 혹시 뭔가 아시는 게 있으신지요.”
“조직보다 해결사인 자네에게 먼저 이 이야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구먼. 나는 범인과 피해자가 같이 있는 모습을 봤다네.”
이거야 원. 시작부터 클라이맥스 전개가 따로 없게 됐다. 좀처럼 없는 행운이니 지금은 이 순간에 집중하자.
“자세한 설명을 부탁합니다.”
“봤다고 말했지만. 범인의 얼굴을 본 것은 아니네. 한밤중이었고, 흰색 옷을 입은 피해자와 같이 있지 않았다면 있는지도 몰랐을 걸세.”
노인의 말에 거짓은 없다. 이 골목길은 지붕으로 하늘이 막혀있어 달빛조차 들어 올 수 없다. 게다가 노인의 시력을 생각한다면 형체를 알아본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을 한 셈이다.
“범인이 한 행동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네. 범인은 피해자를 현장에서 살해하지 않고 죽어있는 피해자를 업고 와 이 자리에 놓고 사라졌다네.”
“소문에도 피해자의 시신에 아무런 외상이 없다고 했죠.”
“다음 날 보니 시체 주변에서 핏방울 하나 보이지 않았네. 조직원들이 시체를 치우면서 하는 소리를 언뜻 들었는데, 이번에도 외상은 없다고 하는 걸 들었네.”
“소문과 같은 이야기네요. 귀중한 정보를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뭘 알려 줬다고 그러나. 열심히 해서 범인을 잡아 주게나.”
나는 발걸음을 돌리기 전에 노인에게 하나 더 질문했다.
“하나 더 여쭙겠습니다. 혹시 피해자가 누구인지 알고 계십니까?”
“처음 보는 얼굴이었네. 적어도 이 골목에서 살지는 않았을 걸세.”
“그렇군요. 그럼 가보겠습니다.”
현장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다 얻었다. 사건이 일어난 다른 장소에서 탐문을 할 수도 있지만, 한다고 해서 더는 새로운 정보는 얻을 수 없을 거 같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조사해야 할 건 범행방법. 즉 행복초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자에게 도움을 요청할 차례다. 나는 행복초를 골목에 들여온 장본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노인과 소년은 해결사가 사라지는 걸 지켜봤다. 그의 모습이 사라지자 소년이 물었다.
“할아버지, 저 사람은 누구예요? 해결사라고 하는데 뭐 하는 사람이죠?”
“너도 조직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 저 사람은 과거에 조직원이었단다. 그리고 유일하게 조직에서 벗어난 자이기도 하지.”
“말도 안 돼요! 조직원이 된다는 건 주민들에게 있어 최고의 행운이잖아요. 그리고 한 번 조직에 들어가면 절대로 나올 수 없어요!”
“보통 조직원이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그는 특별하단다.”
노인은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조직이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특기를 가지고 있나요?”
“특기? 아니지 아니야 만약 특기의 강함만을 가지고 싸움을 한다면 그는 누구도 이길 수 없을 거란다. 오히려 반대였지.”
“너무 약해서 강제로 퇴출당한 거나 보네요. 에이 시시해.”
“그런 게 아니란다. 저 양반은 말이지…….”
조직에서 일하던 때와 지금 해결사로 일하던 것과 가장 큰 차이점은 수입……. 도 있지만, 그보단 일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난다.
조직에서의 일은 확실하게 분담된다. 누구는 정보를 모으고, 누구는 얻은 정보를 이용해 추리하고, 또 누구는 현장에서 일한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어떤 이유로 이 일을 하는지, 그리고 왜 내가 눈앞에 있는 이 자를 죽여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번번이 일어난다. 하지만 해결사는 다르다.
몸이 고달프고 시행착오를 수도 없이 겪지만, 사건의 시작과 끝을 알 수 있고 만약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가 직접 사건에 개입해 사건의 흐름을 조금이나마 바꿀 수도 있다. 그리고 보너스로 얻을 수 있는 수많은 사람과의 인연은 내가 조직에서 나온 걸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도록 한 가장 소중한 것이다. 지금 만나려 하는 자도 해결사로 활동하면서 알게 된 귀중한 인연이다.
그를 만나기 전에 하나 이야기해 둘 것이 있다. 우리 주민들은 태생에 따라 빛의 주민과 어둠의 주민으로 분류된다. 이 중 어둠의 주민이란 나처럼 뒷골목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을 말하는데, 약육강식의 세계라 하루 생계를 유지하는 데 온 힘을 쏟아야 살아갈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조직의 등장으로 약한 주민들이라도 조직의 지원과 보호를 받아 살 수 있게 되면서부터 뒷골목도 제법 활발한 모습을 보이게 됐다.
빛의 주민은 혈통중심의 주민들이다. 이들에 대해 우리가 아는 건 아주 한정적이고, 조직에서도 자세한 정보는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빛의 주민들은 거인을 부리는 능력을 갖추고 있고 더러운 뒷골목에서 사는 우리를 경멸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재수 없는 놈들이다.
빛의 주민에 대한 이야기는 됐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인 거인에 관해 이야기해 본다면 이 거인들은 뭐라고 할까. 우리와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는 자들로서 다른 종족이다. 그들 대부분은 우리가 있던 말 던 신경 쓰지 않지만, 일부는 우리와 협약 관계를 맺거나 적대 관계로 전쟁을 벌이는 일도 있다. 그리고 아까 말했듯이 어떤 거인들은 빛의 주민들에게 길들어져 사육당하는 자들도 있다. 내가 지금 만나러 가는 자는 조직과 협약을 맺은 거인으로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이다. 그가 사는 곳의 창문으로 다가가 창문을 두들겼다. 거인은 나를 보고 창문을 열었다.
“오랜만이야 골드. 들어오겠어?”
“사양하지. 나라고 해도 거인이 사는 곳에 들어가는 건 싫으니까.”
“좋을 때로 해. 그런데 무슨 일이야?”
“저번에 네가 들여온 행복초에 대해 질문이 있어서 왔다.”
“아, 그거. 우호 품으로 가지고 온 건데 중독의 위험이 있어서 조직이 압수했다고 했지. 진짜 힘들게 구한 물건인데 좀 서운하더라.”
“단순히 긴장을 풀기 위한 물건으로서는 효과가 좋긴 했지. 오늘은 그런 이야기를 하러 온 게 아니라 행복초로 우리를 죽일 수도 있는지 확인하러 온 거다. 네가 들여온 물건이니까 효능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을 거 아니냐.”
“그거라면 단언할 수 있어. 행복초는 우리 사이에선 약재로 쓰이는 식물이야. 게다가 내가 처음에 말했잖아 행복초의 효능을 볼 수 있는 주민은 기껏해야 절반 정도라고. 어찌어찌해서 행복초로 주민을 죽일 수 있다고 치자. 그렇다 하더라도 죽일 수 있는 확률은 반, 반 이런 위험을 지고 살인을 할 만큼 행복초를 이용한 살인에 큰 이점이 있다고 생각해?”
“외상을 감추려고 했다면? 실제로 피해자의 몸에 외상은 전혀 없었다.”
“너희 주민들이 사용하는 무기는 사용자에 따라 상처의 모양이 모두 다르잖아. 그걸 감추려고 했다면 나도 할 말은 없어. 어쨌든 결론만 말하면 내가 아는 범위 내의 지식으로는 행복초로는 살인할 수 없어. 그리고 만약 할 수 있다고 해도 확률은 절반이야.”
이야기를 끝낸 나는 거인의 집에서 떨어졌다. 거인은 창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어 마지막으로 내게 물었다.
“시체에 외상이 없었다는 건 어떻게 안 거야? 너희 주민들은 항상 코트를 입고 있어서 코트 안을 제대로 살피지 않으면 멀리서 외상이 있는지 없는지 알기 힘들잖아?”
질문을 들은 순간. 머릿속에 있던 흩어져 있던 퍼즐이 순식간에 완성됐다. 복잡한 사건처럼 보일수록 진상은 허무한 법이다.
나는 골목으로 돌아와서 내 지정석에 조금 챙겨두었던 행복초를 씹었다. 행복초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행복목이라고 하는 제대로 된 표현이다. 그냥 씹기에는 조금 두꺼운 굵기의 나무로 씹을수록 기분 좋은 독특한 향이 난다. 다행히도 나에게는 효능이 듣지 않아 다른 주민들처럼 정신을 놓고 행복에 겨워 실없이 웃거나 하는 증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행복초를 하도 씹어 턱에 통증이 생길 즈음이 되자 그림자 하나가 내게 다가왔다.
“내 뒤를 밟는다는 해결사 녀석이냐? 운이 없군. 여기서 죽어라!”
당연하지만 적이 오는 걸 뻔히 알고 있다면 기습을 당한다고 해도 그걸 기습이라 할 수 없다. 나는 앉아 있던 쓰레기통에서 풀쩍 뛰어내려 그림자의 공격을 피했다.
“그렇게 연기를 하면 민망하지 않나? 체크.”
나를 공격한 건 내게 의뢰를 한 나의 친우 체크였다. 입에 물었던 행복초를 뱉었다. 체크는 우리 주민들이 사용하는 무기인 열 개의 나이프를 양손에 들고 가만히 나를 바라봤다.
“알고 있었나?”
“뻔한 연극이었다. 가짜 범인, 가짜 피해자, 가짜 흉기, 가짜 사건. 처음부터 스마일 살인사건은 일어나지도 않았어. 범인이 피해자를 살해하는 장면을 본 사람도 없고, 피해자가 어떤 방법으로 죽었는지 아는 사람도 없다. 그리고 그 피해자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도 없어.
너는 조직과 관련된 사람들이 죽었다고 했지만, 조사해 보니 살인사건이 일어난 동안 주민 중에는 죽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유일하게 확인된 건 피해자의 표정인데 그건 아마도 어디서 구한 박제를 사용해서 돌려 사용했다고 생각하네. 자네도 알다시피 여기는 뒷골목이라 장소와 시간에 따라서는 바로 앞에 있는 것도 제대로 식별할 수 없거든. 그러니 박제 하나를 가지고 돌려 사용했다고 해서 그게 가짜라고 들킬 가능성은 희박하지. 게다가 주민들이 현장에 몰려들 낌새가 보이면 조직이 출동해서 현장을 정리해 버리면 상황 종료. 여기까지 추리가 되면 나머지는 일사천리야 왜 조직은 이런 번거로운 쇼를 해서 이슈를 만들었을까? 왜 조직은 있지도 않은 사건의 범인을 나에게 조사해 달라고 했을까? 왜! 내 친우였던 자는 딸이 범인에게 잡혀갔다며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나에게 조사를 하게 한 것일까!”
오랜 벗에게 분노를 쏟아냈다. 질문의 답을 몰라서 묻는 게 아니다. 이건 그에 대한 푸념이고 원망이다. 하지만 그는 내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나는 내 입으로 사건의 진상에 대해 말했다.
“그야 당연히 조직에서 나온 나를 처리하기 위해서지! 조직에서 나온 주제에 주민들에게 영웅취급을 받고 빛의 주민, 거인들 할 것 없이 친구를 만들고 조직보다 더 강한 세력을 만든 나를 조직은 견제할 필요가 있었어. 하지만 조직이 대놓고 직접 움직이면 체면이 말이 아니니까 연극무대를 준비한 거야. 그리고 주민들이 내가 사건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고 알게 한 다음, 살해함으로써 조직이 아닌 사건의 범인에게 살해당했다고 공표할 생각이었겠지!”
“해결사를 하다 보니 전투 말고도 추리도 잘하게 됐나 보군.”
“조직의 부품에서 벗어나 스스로 모든 걸 결정할 수 있게 된 덕이지.”
체크는 열 개의 단검을 꺼냈다. 그리고 그의 특기인 도약을 이용해서 건물 위로 사라졌다. 나는 그가 내려오는 걸 기다리면서 무기인 열 개의 나이프를 꺼냈다.
챙-!
서로가 든 열 개의 단검이 어지럽게 교차했다. 체크와 나의 단검 기술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체크가 도약을 이용해서 체중과 중력을 실은 공격을 계속해서 시도한다면 내 몸보다 나이프가 먼저 그 힘을 버티지 못하고 부러질 게 뻔했다. 다시 도약한 체크가 두 번째의 공격을 위해 하늘에서 떨어졌다.
체크의 단검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투창이면 내 단검은 투창을 받아내는 그물이다. 나는 체크의 단검과 나의 단검을 교차시켜 공격을 막은 후 착지를 못 하게 그대로 땅에 부딪히게 했다. 그의 코트는 더러운 흙먼지를 뒤집어썼다. 아마 뼈 몇 군데가 나갔을 거다. 체크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강한 충격을 받은 그는 전투를 속행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조직을 떠났지만, 실력은 여전하네. 현역 때보다도 더 강해진 거 아닌가?”
“조직의 전투방법은 원 패턴뿐이니까. 상대가 어떤 특기를 가졌는지 알기만 하면 어떻게든 대처할 수 있지.”
“역시 골드 자네는 대단해. 하지만 나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겠어. 왜 자네 같은 자가 조직을 떠난 건가?”
“우리는 복수라는 명분을 가지고 너무나 많은 자의 목숨을 빼앗았네.”
“어둠의 주민들은 너무나 약한 존재들이야. 특기를 가지고 있는 우리 조직원도 거인들과의 전투에는 수없이 죽거나 생포 당하는 게 일상이지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마냥 당하고 있을 수는 없어. 이유 없이 거인들에게 살해당한 주민들의 복수를 위해 거인들을 습격해서 죽이는 조직의 행동은 희생자를 위한 최소의 추모행위이자 거인들이 우리를 쉽게 생각하지 않게 하는 예방책이야. 그런데 어째서 거인 몇 놈 죽였다고 죄책감을 느끼고 조직을 떠난 건가?”
“체크, 자네는 내 특기가 무엇이었는지 기억하나?”
“마인드 리딩. 그 능력으로 거인들에게 살해당한 주민의 생전 기억을 읽어 주민들이 어떻게 살해당했는지 알 수 있었지.”
“주민들만이 아니네, 나는 우리 손으로 죽인 거인들의 기억도 읽었었지. 거인들은 우리가 가진 수명의 몇 배나 되는 수명을 가지고 있어. 그리고 그만큼 가지고 있는 기억들도 많고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었는지에 관한 기억의 양도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가지고 있어.
단지 수명의 차이 때문에 우리 주민들의 삶이 거인들보다 못하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네 다만……. 나는 그들의 미래를 뺏는 행동이 두렵네. 겁쟁이라고 비웃어도 좋아. 하지만 더 이상은 내 앞에서 주민이든 거인이든 누구도 죽게 하지 않았네.”
“조직 최강의 전투원 골드가 고작 생명을 빼앗는 게 무서워서 조직을 그만뒀다? 뭐 이유야 어찌 되었든 골드 자네는 조직의 표적이 됐어. 스마일 살인사건의 범인이 잡히기 전까지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조직의 암살자들이 시시때때로 자네를 죽이려 들 거야.”
“뒷골목에서 해결사로 살아가는 건 포기하란 말이군. 충고 고맙네.”
“정말이지, 골드 자네는 정이 너무 많아.”
“암살대상의 사정을 봐 주면서 공격하는 암살자한테 들을 소리는 아닌가 싶네.”
“하핫. 들켰나?”
나는 친구를 뒤로하고 골목 끝을 향해 걸었다. 따사로운 햇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직에 전달하게 골드는 더는 뒷골목에서 해결사 노릇을 하지 않는다고 말이야.”
“그래도 조직에서 자네를 감시하는 건 변하지 않아.”
“상관없네. 과거의 친구한테 습격받는 것보단 낫지.”
나는 골목에서 나왔다. 따사로운 햇볕이 내 몸을 감싸 안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나른함이 온몸에 퍼지기 시작했다.
“좋은 햇살이로군. 오랜만에 늘어지게 낮잠이나 자 보실까.”
나는 햇살을 따라 뒷골목에서 멀어졌다.
버스가 급정거한다. 승객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창밖을 내다봤고 버스 기사는 욕설을 내뱉으며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가 급정거한 이유는 갑자기 차도로 뛰어든 오렌지빛 털의 고양이 때문이다. 구름도시 동부에서 운행하는 마을버스는 친환경 버스로 특수 제작된 버스로 일반 버스치고는 작고 가볍고 느린 것이 특징이다. 마을 주민으로선 불평이 나올 일이지만, 지금 버스에 치인 고양이한테는 행운이다.
“재수 옴 붙었네. 길가에 버려두고 갈 수도 없고 어떻게 한다냐.”
“기사님 잠깐만요. 아직 살아있는 거 같은데요?”
승객용 문을 열고 내린 남학생은 주저하지 않고 차에 치인 고양이를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배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걸 보니 숨이 아직 붙어 있었다. 남학생은 희미하게 뜬 고양이의 눈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 고양이는 남학생이 평소에 알고 지내던 ‘골드’라는 이름의 고양이었다.
“어째서 너 같은 녀석이 교통사고를 당한 거야? 아니 그 전에 왜 이런 시간에 뒷골목이 아니라 여기 있는 건데? 아!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분명히 이 근처에 동물병원이 있었을 텐데!”
남학생은 교복에 피가 묻는 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온 힘을 다해서 동물병원을 향해 달렸다. 다행히 구름도시의 의료기술은 초일류이기 때문에 골드의 치료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긴 수술이 끝나고 남학생은 인공호흡기를 하고 누워있는 고양이를 볼 수 있었다. 고양이는 가느다랗게 눈을 뜨고 남학생을 쳐다봤다. 남학생은 고양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 것을 알고 고양이의 몸에 손을 댔다. 고양이의 생각이 남학생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거인, 해 줬으면 하는 일이 있다.-
“고맙다고 말하는 게 순서 아니야? 아무튼, 뭔데?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해 줄게.”
-나를 놀라게 해서 인도에 뛰어들게 한 거인이 있었다. 그 거인을 보호해 줬으면 한다. 분명 조직에서 나를 위한다는 핑계로 복수하려 할 것이고 이를 이용해 조직이 나를 죽이려 했다는 소문을 잠재울 생각을 하겠지.-
“어려운 일이야. 너도 알듯이 내 얼굴은 주민들은 물론이고 일부 조직원에게도 알려졌어. 조직의 행동을 방해했다간 나도 어떤 꼴을 당할지 모른다고.”
-너라면 좋은 수를 생각해 낼 수 있겠지.-
“말은 쉽지. 하지만 네 말이 틀린 건 아니야. 조직의 표적이 되었다면 거인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건 비교적 쉬울 테고, 중요한 건 조직이 눈치채지 못하게 거인을 살려야 한다는 건데. 이게 좀 어렵겠네. 여기선 그래! 약간의 도박을 하는 게 좋겠어.”
-방법이 있는 건가?-
“한번 죽이고 다시 살리면 되지 뭐. 목숨만 어떻게든 붙어 있다면 네 능력으로 의식을 돌아오게 할 수 있잖아.”
-어처구니없는 방법이로군. 하지만 그 정도는 돼야 조직의 눈을 피할 수 있겠지 부탁한다. 거인.-
남학생은 대화를 마치고 병원비를 내기 위해 접수대로 이동했다. 그리고 구름도시의 시민이란 걸 증명하는 시민카드를 사용해 병원비를 대폭 할인받아 결제했다. 그리고 동물병원에서 나갔다. 접수대에 있던 간호사들은 남학생이 나가자 청구서를 보고 수군거렸다.
“뭐야 저 애? 교복 명찰에 있는 이름하고 시민카드에 있는 이름이 다르잖아?”
“그래? 뭐라고 되어 있었는데?”
“오타쿠. 명찰에 오타쿠라고 쓰여 있었어.”
“별명 같은 거겠지. 원래 저 나이 때에 애들은 별짓을 다 하고 다니잖아. 그런데 그건 뭐야?”
“학생이 쓴 고양이 이름표. 그리고 개다래 나무. 회복되면 이걸 넣어 달래.”
간호사는 이름표에 ‘골드’라고 적어서 고양이가 누워있는 투명한 상자에 끼워 넣었다. 수술 때문에 깨끗이 씻긴 고양이의 노란색 털은 햇빛에 닿자 눈부신 금빛처럼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