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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라비 Feb 12. 2016

Budapest, 그 이름만으로.

부다페스트, 헝가리



그곳에서는 매 순간 잠이 왔다.


‘부다페스트’라는 낯선 곳에대한 어떤 상상이라든가, 기대감은 없었다. ‘파리’하면 피카소, 툴르즈 로트렉, 마네, 모네가 그린 수많은 그림들이 생각나고, 물랑루즈, 테라스에서 맥주나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 센 강을 뛰어다니는 파리지앵, 몽마르뜨 언덕의 길거리 화가들이 생각나듯, 어떤 장소를 생각하면 주워들은 이야기, 어디선가 봄직한 이미지가 있게 마련인데, 부다페스트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도,

기대하는 바도 없었다.  


 ‘부다페스트’라는 이름만 보고 비행기표를 덜컥-

예매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너무나도 낯선 곳에 가고 싶었다. 기대가 있으면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애써 즐거워야 하고,

세상에 둘도 없을 시간인 것처럼 보내고 와야만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싫었다.


보통의 여행은 목적지를 정하고 나서 여행지에

대해 차근차근 알아봤지만, 지난 어떤 여행 때와는 달리 여행 준비도 게을렀다.


‘낯섦’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낯섦’ 그 자체를

여행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Szimpla Kert, 부다페스트에는 ruin pub이 많다. 루인펍은 허름한 빈 집을 개조한 클럽이나 펍이다.
Cafe Central

내가 가지고 간 것은 단 한 권의 시쿠 부아르키의 ‘부다페스트’라는 소설책이다.

부다페스트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5일간 머물렀던 낯선 집 안에서 이 책만을 읽어 내려갔고, 오롯이 혼자가 되었던 카페 첸트랄에서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화이트 와인에 탄산수를 섞은 프르츠를 마시며 아주 잠시 소설 속의 그가 있었던 부다페스트의 분위기와 일치하는 순간을 느꼈다. 소설 속의 그는 헝가리어를 배웠다. 헝가리어는 언어 중에서도 꽤 어려운 언어라고 하는데, 낯선 헝가리어를 배우는 그와 함께, 낯선 부다페스트에 있는 기분이었다.


부다페스트는 어두웠고, 축축했다.
내가 머물렀던 5일간 단 하루도밝은 햇살이 드리우지 않았다.

구름 한 점 없는 갈색의 하늘이었다. 어쩐지 계속해서 나른했고, 피곤했다. 무거운 기운이 나를 짓누르는 기분이었다. 동행했던 친구는 꽤 오랜 시간 잠을 잤다. 식사할 때만 조용한 집 안에 달그락 달그락- 수저와 그릇이 규칙적으로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적막을 어려워하는 나는 부다페스트가 불편했다.


여행이 이렇게 조용할 수 있나. 처음 느끼는 기분이라 매 순간 어색했다. 오랜 시간 함께 한 친한 친구와의 첫 여행임에도 달뜨지가 않았다. 계속해서 땅으로 꺼지는 느낌이었다. 그리 좋아하는 맥주를

마시는 순간에도 흥이 나지 않고 머리가 아팠다.

이틀 간은 두통약을 먹었다. 잠을 자고 또 자도 피곤하고 몸이 무거웠다.


세체니 온천에 간 날, 날씨가 반짝 좋아졌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 전체적으로 황금색을 띈

야외 온천이 실제가 아니라 세트장처럼 낯설었다. 서서히 쌀쌀해지기 시작하는 시월의 야외 온천의 물은 따뜻했고 바깥 공기는 시원했다. 따뜻한 물 속에 몸을 담근 사람들은 해맑게 웃고 있었는데, 그 기억마저도 실제가 아닌 것 같다.

세체니온천

지난 여행의 기억을 더듬다 보니 부다페스트는

어쩐지 거짓말 같다. 지어 낸 이야기 같다.

내가 정말 부다페스트에 갔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질 정도니까.

혼자 갔었더라면, 정말 꿈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같이 간 친구가 있고, 여권 사이에 끼워져 있는

부다페스트행 비행기 티켓만이 그 때 내가 그곳에 갔었노라고 증명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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